HAPPY 25th JAURIM
25년. 사람으로 치면 갓난아기가 청년이 되기까지의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변하지 않는 건 그리 많지 않다. 주변을 둘러보라. 우리가 쓰는 휴대폰, 타는 자동차, 보는 텔레비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구석구석 정말 많이도 바뀌었다. 그대로인 것도 있다. 이선규, 김진만, 김윤아의 자우림. 이들은 25년이라는 긴 시간을 지나 변함없이 우리 곁에 있다. 그것도 흘러간 추억 조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함께하고 있다는 게 핵심이다.
처음부터 이와 같은 롱런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멤버들은 지금도 ‘그저 우리 이름으로 된 앨범 한 장을 갖고 싶었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소박했던 꿈과 달리, 이들은 운명 같은 계기로 작업한 영화 [꽃을 든 남자](1997)의 주제곡 ‘헤이헤이헤이’를 시작으로 수많은 곡을 대중에 각인했다. 탄탄한 연주력과 매력적인 멜로디, 탁월한 보컬로 독보적 음악 세계를 구축했고, 당대의 청춘과 노래로 호흡하며 오늘날까지 왔다. 이렇게 오랫동안 꾸준히 작품을 내면서 인기 차트에 이름을 올린 밴드는 극히 드물다.
[HAPPY 25th JAURIM]은 밴드의 데뷔 25주년을 기념하는 앨범이다. 대중이 사랑한 자우림의 대표곡 중 11곡을 추려 한 장에 모았다. 물론 단순한 히트곡 모음집은 아니다. 곡마다 제목 뒤에 ‘25th’가 붙은 건, 앨범을 위해 각 노래를 새로 녹음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특별한 게스트가 함께해 의미를 더했다.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을 통해 진행한 ‘떼창 오디션’에서 6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117명의 팬이 코러스로 함께한 것이다. 그러니 이건 자우림만의 앨범이 아니다. 지난 25년 동안 이들의 음악을 사랑한 모든 사람과 함께 맺은 결과물이다.
앨범과 같은 제목의 첫 곡 ‘HAPPY 25th, JAURIM!!’부터 감동이 밀려온다. 이선규의 이글대는 기타 반주에 맞춰 팬들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자우림을 사랑하는 이라면 일단 소리 높여 따라 부르면서 감상을 시작해야 마땅하다.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끝나면 ‘매직카펫라이드’가 이어진다. 2000년 3집 앨범의 히트곡으로 밴드의 명실상부 대표곡이자 공연 필수 레퍼토리다. 원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진행에 팬들의 힘찬 떼창이 더해져 듣다 보면 마치 공연장에 함께 있는 기분이 든다. 파티에 걸맞은 신선하고도 영리한 기획이다.
‘헤이헤이헤이’는 팬들에게 특히 선물처럼 느껴질 선곡이다. 1997년 팀의 시작을 알린 역사적인 노래지만, 음원 서비스가 이루어지지 않아 2001년 라이브 앨범 버전에 만족해야 했다. 충실히 재현한 25년 전 오리지널의 경쾌한 매력이 후반부 코러스 군단의 손뼉과 합창을 만나 현재 시제로 근사하게 되살아났다. 앞선 두 곡의 축제 분위기는 또 다른 시그니처 ‘하하하쏭’이 이어간다. 컴필레이션 성격의 앨범이지만, 감상의 흐름을 고려한 유기적인 트랙 배치가 눈에 띈다. 과연 앨범 아티스트 자우림답다. 2004년 5집 타이틀곡으로 인기를 끈 노래는 노련한 보컬 플레이와 든든한 코러스로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17171771’은 [HAPPY 25th JAURIM]에 실린 곡 중 역대 타이틀곡이 아닌 유일한 노래다. 순수하게 사랑을 고백한 5집 수록곡으로 발표 당시부터 마니아가 많았는데, 여기서 들으니 오랫동안 밴드를 지켜준 팬들을 향한 멤버들의 사랑 노래처럼 들려 흥미롭다. 이어지는 곡이 ‘팬이야’라는 점에서 아주 억측은 아닐 테다. 2002년 4집 타이틀곡인 이 노래는 자기 자신을 치유하는 힐링의 노래면서, 제목 때문에 팬들이 더욱 각별히 여기는 노래 아닌가. 특히 이번 앨범에는 그동안 라이브 무대에서만 들을 수 있었던 마지막 후렴이 바뀐 버전이 수록돼 많은 이들의 호응이 예상된다. 한결 깔끔하고 능숙하게 소화한 1997년 1집의 ‘밀랍천사’, 이듬해 2집의 ‘미안해 널 미워해’도 인상적이다. 편안하면서도 깊이 있는, 25년의 관록이 여실히 드러난다.
앨범 정보가 공개되고 가장 눈길을 끈 노래는 ‘our song’이었다. 첫 곡을 제외한 모든 곡이 원래 제목 그대로 실린 것과 달리, 이 곡만은 새로운 제목이 붙었다. ‘25th’라는 수식도 빠졌다. ‘our song’은 2013년 9집의 ‘이카루스’와 2011년 8집의 ‘피터의 노래’를 다이내믹한 편곡으로 이어 붙인 곡이다. 밴드는 이미 공연에서 두 곡을 이어서 부른 적이 있을 만큼 두 노래의 메시지는 상통한다. 젊은 날의 막연한 환상과 치기는 결국 세상과 현실에 꺾이지만, 여전히 살아갈 날이 많으니 끝까지 나아가자는 얘기다. 자우림은 이를 곧 ‘우리의 노래’라고 정의하며 현재 시점에서 굳은 의지를 되새긴다.
마지막 세 곡은 명백히 청춘의 노래다. 9집 타이틀곡 ‘스물다섯, 스물하나’, 2006년 6집 타이틀곡 ‘샤이닝’은 발표 이래 공감과 위로의 송가로 회자되며 당대의 청년들을 어루만졌다. 별다른 장치 없이 원곡이 가진 힘을 충분히 살린 25주년 버전은 앞선 ‘our song’에 이어 많은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을 북돋을 것이다. 앨범의 대미를 장식한 1집 타이틀곡 ‘일탈’은 당시 지루한 일상 속 도피처를 갈구하던 젊은이들에게 대리만족과 통쾌감을 선사했던 노래다. 본 앨범에선 코러스와 함께 극적으로 완급을 조절하며 듣는 재미를 극대화했다. 흡사 록 페스티벌의 마지막 무대를 본 기분이랄까.
감히 자우림이기에 가능한 기획이자 결과물이다. 동시대를 살았다면 누구나 알만 한 히트곡만으로 컴필레이션 앨범을 꾸리는 건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 영예다. 심지어 이들은 미처 싣지 못한 히트곡도 남아 있다. 이를 새롭게 녹음하는 것만으로 모자라, 기꺼이 지원한 수백 명의 팬 중 일부와 하모니까지 맞췄으니, 이보다 값진 기념 앨범이 있을까. 인생의 한 시절을 자우림의 음악과 함께한 모든 ‘자우림 세대’여 이곳에 모여라. 여기에 우리의 아름다웠던, 때로는 처절했던 한때가 찬란히 빛나는 현재의 모습으로 살아있다.
정민재(대중음악 평론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