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UYA [스무우울넷]
그녀의 노래들을 듣다 보면 터벅터벅 걷고 있는 덜 야무진 소녀가 떠올랐다. 소녀는 해가 저물고 있는데 갈 곳도 정하지 않은 채로,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와 달궈진 마음을 의지한 채 걸었다. 언뜻 초점이 흐린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모든 것을 관찰하고 있는 소녀. 아직 아무것도 되지 않은 자신이 불만이었다. 소녀는 분명 존재하고 있었지만 더 존재하고 싶었다. 자기가 제대로 웃거나 울거나, 혹은 많이 다치거나 티셔츠가 땀에 축축해질 정도로 몰두할 때 어른이 되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소녀는 좋아하는 카프카의 문장을 다시 한번 읊조려보았다. ‘아무 조건 없이 나 자신이 되고 싶다.’
슈야의 목소리는 어딘가를 통과하고 있는 소녀를 닮았다. 쨍한 여름도 시리게 추운 겨울의 것도 아니었고 사이에 끼어있으면서도 엄연히 이름을 획득한 계절의 색을 띠고 있다. 결심과 확신, 그 사이의 혼잣말이었다. 웃어넘길 수 없는 고민, 너무 쉽게 던져졌던 말들. 질투. 딱히 나쁘지도 만족스럽지도 않은 현실과 그 속에서 신중하게 반발짝 내딛는 걸음. 조용하지만 치열하게 생각 위를 걷고 있는 그녀가 보였다. 그녀는 투박한 목소리로 염려하고, 고백하고, 약속하고, 무너진다. 그녀의 말들은 검열되지 않은 순수함으로 우리 모두의 고민을 세상에 제시한다.
자, 무엇이라도 되어보자, 혹은 나 자신이 되어보자. 라고 그녀는 그녀 자신에게 말한다. 그녀는 자기 자신으로 도망친다. 그 속에 그녀만의 세상이 있다. 불쾌하지 않은 솔직함으로 내면의 이야기를 꺼내어 먼지를 털고 모양새를 바로잡고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것은 순전히 그녀의 이야기지만 듣는 이의 마음속을 스스로 산책하게 한다. 그녀의 노래를 듣는 이가 열 명이라면, 그것은 열 개의 세계가 향유되고 있다는 의미였다. 벌컥 문을 여는 무례함 없이 깜찍하게 노크를 해 오고 두세 번 반복해서 듣다 보면 어느새 그녀가 들어주고 있었다. 좋고 나쁜 것이 없는, 그저 삶에 끼어들어 존재를 증명하는 계절들처럼 귓가에 맴도는 그녀의 이야기가 내 것이 되었다.
자꾸만 말을 걸어오는 끈질기게 다정한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너는 이미 완벽하게 존재하고 있다고. 앞으로도 그대의 일기는 시가 될 것이라고. 어떤 시절을 잊히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단점들은 앳된 얼굴의 장점들일 거라고. 계속 도망쳐달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지워질 줄 알면서도 구태여 발자국을 남기고 즐거워하는 눈 속의 우리들처럼, 이별할 줄 알면서도 구태여 사랑에 빠지는 연인들처럼, 슬픔도 기쁨도 똑같은 크기의 노력으로 견뎌내야만 하는 삶처럼, 불안을 사랑으로 바꾸는 노래처럼.
글, 유지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