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높디높던 담벼락 이제 다시 돌아보니 가슴 채 오지 못하더라.
담벼락 아래 꿈꿨던 어른의 풍경 이제 커서 살아보니 어릴 적 꿈보다 못하더라.
“저 밀키스 16번 먹어 봤어요” 이제 아홉 살이 되는 지인의 아들이 밀키스를 벌컥벌컥 마신 뒤 엄청 대단한 자랑거리인 듯 외친 말이다.
밀키스 한 병에 저렇게 벅차 할 수 있다는 게 귀여웠고 아직 행복의 기준이 밀키스 한 병 정도인 이친구의 세상이 부러웠다.
생각해 보면 나도 그 시절에는 세상에 치열함보다 새로운 설렘과 즐거움이 더 컸던 거 같다.
사루비아 꽃잎에 있는 꿀 빨아먹기, 동네 강아지 놀리고 쫓아오면 도망가기.
못난이 만두 한 개 계란 한 개 야끼만두 한 개 그리고 떡볶이 500원어치.
석현아 놀자라고 외치는 대문 밖 친구의 목소리.
웅장한 음악과 함께 시작되는 토요명화.
아버지 양손에 들려있는 군것질거리.
어른들이 피던 담배를 흉내 삼아 빨아대던 아폴로.
그 시절 나를 설레게 했던 대단하지 않은 행복들이다. 잠시 생각했는데도 이렇게나 많다니.
그때보다 세상은 더 풍요로워졌고 이제는 떡꼬치 100개도 사 먹을 수 있는 어른이지만 그때의 한 개보다 더 맛있을진 모르겠다.
환절기에는 계절의 냄새가 느껴진다. 거기엔 행복했던 지난 시절들의 향수도 같이 섞여있다.
어릴 적 살던 동네, 초등학교, 그리고 맘껏 뛰놀던 놀이터와 골목 사이사이
겨울에서 봄이 되던 화창한 하늘 아래 꽤 많이 걸었던 날.
그날에 이번 곡 아폴로88을 준비하게 됐다.
공 하나에 모인 친구들은 자기 삶에 공하나 더 붙이려 떠나갔고 양손 가득 군것질 거릴 사 오시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시다.
내가 놀던 동네는 이제는 너무 많이 변해 옛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고 이제 나도 서른 중반이다.
어릴 적 그때보다 몸은 컸지만 행복의 시야는 좁아졌고 세상에 대해 더 알지만 사고는 둔해졌다. 웬만한 일엔 웃음도 잘나지 않는 요즘.
그래서 그런지 지난날을 추억하며 나의 행복의 시야를 넓혀 보려 하고 있다.
밀키스 한 병에 신나하던 지인의 아들처럼
계절이 바뀌던 그날, 옛 동네를 걸었던 그때, 딱히 좋은 일도 없는데 하루 종일 설레고 행복한 하루였다.
이 노랠 듣는 이에게도그날의 내가 느꼈던 향수와 설렘이 조금이라도 전해졌으면 좋겠다.
이번 곡 아폴로88은 마치 꿈의 문이 열리듯 웅장한 팀파니 소리로 시작된다.
도입 부분 기타와 베이스는 화창한 봄날 산책을 하는 듯한 느낌으로 감미롭게 채워졌고 리드미컬하게 쪼갠 드럼은 가벼운 발걸음이 떠오르게 한다.
오락기를 연상케하는 소스들과 코러스들은 어린 시절을 상상하는 효과를 주었고 파워풀한 밴드 사운드와 대비되는 서정적인 후렴 멜로디는 돌아갈 수 없는 그때의 쓸쓸함과 그때를 추억하며 느껴지는 설렘을 표현하고 있다.
말하듯이 어릴 적 동네를 여행하는 가사는 함께 눈을 감고 들으면 각자의 유년 시절 자신의 동네를 여행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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