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드러머가 리드하는 앨범이라고 하면 상대적으로 전통적인 장르 문법을 선보이는 앨범을 떠올릴 것이다. 록 밴드에서 드러머가 리더 역할을 하고 작곡을 하거나, 재즈의 경우 드러머가 중심이 되어 나머지 사이드맨을 꾸려 자신의 곡이나 스탠다드를 연주하는 식이다. 하지만 OoOoot(최규철)의 이 앨범은 사이드맨을 구성하는 방식부터 음악 안에 담은 장르까지 다양함을 넘어 예측 불가능한 수준이다. 사실 이 앨범은 프로듀서가 리드하는 앨범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결과가 많지는 않지만 가능성을 보여줬고, 이번 앨범을 들으면 그가 좋은 프로듀서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이미 10대에 전설의 밴드 쟈니로얄의 멤버로 활동하며 음악 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여러 음악가의 세션을 최근 까데호의 결성 멤버로 활동하기까지 긴 시간을 거쳐 왔다. 메탈부터 재즈까지, 다양한 음악을 소화해 온 그는 이번 앨범에서 자신의 긴 음악 생활 동안 얻고 경험한 걸 자양분 삼아 처음으로 자신만의 것을 만들었다. 엠비언트부터 힙합, 재즈까지 다양한 것이 섞여 있는데, 같은 재즈 카테고리 안에서도 어떤 곡은 모던 재즈에 가깝고(Consider) 어떤 곡은 퓨전 재즈에 가깝다(Appointed). 그리고 어떤 곡은 공간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최근 재즈 음악 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일어나는 실험을 닮았고(Day and Night), 올드스쿨 브레이크와 재즈의 결합을 혁신적으로 이루어낸 장면도 있다(Soil). 그런가 하면 드럼 프로그래밍을 바탕으로, 힙합을 기반으로 한 음악이 나오기도 하고(Adullam), 까데호 멤버들과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춘 곡도 있다(Norankang). 앨범은 첫 문을 여는 곡의 짧은 호흡부터 가장 긴 호흡의 곡이 배치된 마지막 곡까지 어느 하나도 다음을 예측할 수 없다. 곡 안에서의 전개도 한 치 앞을 짐작할 수 없지만, 다음 곡의 생김새 또한 쉽게 맞추기 어렵다. Hukky Shibaseki, 진수영, 김오키, 허아민부터 이규재, 강상훈, 이승규와 같은 뛰어난 연주자들은 물론 탭댄서 신일선까지 참여진의 면면만 봐도 화려하다. 이 모든 걸 조율하는 동시에 예측 불허의 전개를 자연스럽게 이어간 건 오로지 최규철의 몫이다.
한 명의 음악가가 하나의 세계라는 식상한 표현은 이 앨범 앞에서 설득력을 얻을 수밖에 없다. [Soil]은 한 사람의 음악 세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장르를 아무렇지도 않게 넘나들면서 그것이 충분히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증명했고, 아마 최신의 유행에 민감하거나 음악적인 측면에서 갈증을 느끼는 이들은 충분히 재미있게 느낄 것이다. 동시에 음악적 상상력을 넓힐 수 있는 훌륭한 교재라고도 생각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