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다' [Anointed]
한때 MBC 뉴스데스크에서 아이돌 연습생 100만명 시대 라는 우스갯소리를 버젓이 걸어놓은 탓에 유사 언론의 허풍이라는 비웃음을 샀지만 실제로 한국의 연예 관련 소속사 연습생들을 추산해보면 해마다 수 천에서 만 단위로 쏟아져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는 연습생 생활 기간만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10년이 넘어가는 자들이 존재한다.
그 중에 소수점 단위로 걸러내고 또 걸러낸 다음에야 아이돌 그룹으로써 데뷔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흔한 설명인데, 여기서 성공한 아이돌 그룹으로만 다시 걸러내다 보면 말 그대로 로또 1위 당첨과 맘 먹는 확률이 나온다. 극소수만이 취하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위해 오늘도 수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젊음을 극한으로 소모시키는 것이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AOA'가 데뷔했던 2012년 8월에만 40팀의 신규 아이돌 그룹이 쏟아졌다고 하며, 그 당시에 데뷔한 그룹들은 'AOA'와 일부 1~2 그룹들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 3년도 못 가서 해체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최근에 있었던 '샤이니' 멤버 '종현'의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는데,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인 성공한 아이돌의 멤버이자 무엇 하나 부족할 것 없어 보였던 그의 우울증 병력, 남 모르게 겪고있던 음악적 고뇌와 더불어 충격적인 자살 소식은 오직 화려함만이 전부인 것으로 취급하며 아이돌 뮤지션으로서의 극도의 불안감과 고뇌, 공허함, 스트레스를 집중 조명한 적은 거의 없다시피 했던 아이돌 음악계에 대해 진지한 고찰을 요구하는 사건이었다. 프로듀스 101, 믹스나인 같은 프로그램들은 서바이벌이라는 모토에 맞게 철저히 기회 없던 자들의 절실함만을 강조할 뿐이었다. 그 절실함 끝에는 무엇이 남았는가?
'Kinda(킨다)'라는 예명을 사용하는 신윤철은 한 때 아이돌의 길을 걸었던 뮤지션이다. 그의 이름을 검색해보면 지금의 '킨다'라는 예명보다 아이돌 그룹 '탑독'의 '낙타(Nakta)'라는 예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비교적 최근인 2017년 9월까지 해당 그룹의 보컬 겸 작곡 담당으로써 활동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세부 이력을 보면 상당히 화려하다. 흔히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아는 소속사들의 연습생으로 긴 시간을 보낸 끝에 'VIXX'의 데뷔 전 오디션 프로그램 최종후보에 들었으나 끝내 고배를 마셨었지만 2013년쯤에는 '블락비'가 소속되어 있었던 스타덤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조PD'에 의해 스카웃되고 앞서 언급한 '탑독'으로 정식 데뷔하는 데에 성공한다.
허나 정식 데뷔 이후에도 모든 성공을 담보할 것 같았던 아이돌 데뷔는 그와 상관없는 곳에서 비롯된 스타덤 엔터테인먼트와 스타덤 소속 뮤지션들의 스캔들로 조금씩 빛바래어져갔고, 올해의 신인상까지 받으며 장래성을 인정받았던 그는 주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제자리를 잃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그룹의 탈퇴를 선언함과 동시에 '낙타'라는 예명 대신 '킨다'라는 예명으로써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게 된다.
이런 '킨다'의 가장 큰 장점은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과 그것을 본인만의 것으로 소화해낼 수 있는 능력에 있다. 그리고 본인의 이런 장점을 그의 첫 앨범 [Anointed]에서 여지 없이 증명해냈다.
9트랙으로 구성된 이번 앨범의 전체적인 모토는 '킨다' 본인의 R&B 보컬에 기반하고 있으나 그것을 받쳐주는 스타일과 텍스쳐가 상당히 다채롭다. 당장에 Flume을 위시한 퓨쳐 베이스, 글리치 팝을 시작으로("For Me", "Girl") 잡음이 끼어 칙칙한 감성을 내세우는 베이퍼-트랩("Trippin'","Moon"), 차분한 트로피컬 하우스("Deserve"), 베이스 뮤직과 리드미컬한 투스텝 개러지 패턴을 혼합하는 등("All Around") 하나의 앨범 내에서 여러 시도를 하고 있으며, 마지막은 앞서 언급된 트랙들과 달리 짧고 재지한 R&B("RYM")로 깔끔하게 마무리 짓는다.
전반적으로 팝의 확고한 기승전결을 따르고 있는 트랙들이기에 상당히 간결한 구조가 귀에 들어오며, 또한 그가 아이돌 그룹 시절 틈틈히 작업했던 자극적인 힙합을 철저히 배제하고 R&B 중심의 길을 선택한 것은 기획사, A&R의 뜻에 맞춰 음악을 찍어냈던 과거를 청산한 뒤 프로듀서 중심의 앨범을 작업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생각된다. [Anointed]가 작사, 작곡, 편곡, 보컬까지 모두 '킨다' 홀로(예외적으로 "Don't Hide", "Deserve"는 여성 랩퍼 '용용'이 일부 구간 피쳐링을 담당했다.) 작업했다는 사실은 그가 가진 야심을 더욱 빛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Anointed]라는 타이틀은 조금 자조적이면서도 적극적인 자기PR에 가깝다. 보통은 (종교 의식에서)머리에 성유를 바르다 라는 뜻으로 쓰이는데, 이런 행위는 주로 유대교의 제사장들이 새로운 제사장의 취임을 위한 대관식을 치를 때 행하는 필수 과정이라고 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이번 [Anointed] 앨범은 아이돌 '낙타'로써의 음악 인생을 뒤로 하고 R&B 뮤지션 '킨다'로써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한 하나의 대관식이라고 간주해도 무방할 듯 하다..
향후 그의 음악 커리어를 되돌아 보게 된다면, 이번 1집 [Anointed]는 힙합 아이돌 그룹 멤버로 지내면서 느꼈던 회의감과 좌절감을 뒤로한 채 R&B의 길을 택한 입지전적인 앨범으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좌절감이 사나이를 키우는 것이다. 라는 명언은 '킨다'에게는 약간 부족한 명언이라 생각한다. 좌절감은 감미로운 사나이를 키우는 것이다.
조대협(Gigguide.Korea 부편집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