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령 [돌아온 귀가 세 개 달린 곤양이]
초심의 환승구간
"돌아온 귀가 세 개 달린 곤양이 (Cat With Three Ears “E-Punny” Returns)" 는 초심의 환승구간이라는 감각을 안겨 주는 앨범이다. 지난 24년간 황보령의 음악과 창작의 궤적이 그려낸 시간이 ‘지금 이 순간’으로 수렴된다.
1998년 황보령 1집 "귀가 세 개 달린 곤양이"는 혼란과 거짓이 창궐하던 시절에 날것으로서의 희망과 절망,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자기존재를 원초적 얼터너티브 펑크락의 형태로 터뜨려 담아낸 역작이었다. 2001년 황보령 2집 "태양륜"은 내용과 형태 모두를 넘나들며 변주한다. 락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포크, 테크노, 얼터너티브, 하드코어, 아방가르드, 팝 등을 망라하는 장르를 엮어가며, 태양의 기호인 ‘원’과 ‘수레바퀴’ 등의 원형심상을 연상시키는 영원성과 총체성을 풀어낸 작품이었다. 2009년 정규 3집 "Shines in the Dark"는 [SmackSoft: 따귀를 때리듯 강하게, 부드럽게 어루만지듯 작고 약하게]의 느낌이 담아내 주는, 어둠 속의 빛과도 같은 사운드를 구현했다. 2010년 4집 "Mana Wind", 2012년 5집 "Follow Your Heart", 2014년 6집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은 여러 음악적, 창작적, 개인적, 사회적 흐름들과 아픔들의 중첩지대에 있다. 때로는 공명하고, 때로는 분노를 발산하기도 하면서, 갈수록 독보적이고 다양한 레퍼런스를 버무린다. 그리고 그 안에 일관된 꾸준함이 있었다.
황보령의 모든 작품은 아주 뜨겁고 때로는 싸늘하지만, 언제나 진심 어린 심장이 막힘없이 뛰고 있는 맥박의 진맥이다. 이런 파장의 흐름 속에서 증폭되어 온 황보령의 창작세계는 이번 앨범에서 더욱 선명하게 영글었고 더욱 원초적으로 벼려졌지만, 그와 동시에 확연히 달라졌다. 나선형 계단을 타고 올라 좀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본 제자리의 느낌이다. 보다 천연한 따뜻함으로.
이번 앨범 "돌아온 귀가 세 개 달린 곤양이" 이전까지의 음악은, 절박함 속에서 사무치는 관조와 허망과 희망, 그 기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있었다. 불가능을 갈망하는, 불가능을 이루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도달한 느낌이다. 이번 앨범의 키워드는 기쁨이다. 이 초심의 환승구간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사랑이 이루어졌다는 기쁨에서. 오래간 찾아 헤매던 여정의 종착지에 도달했다는 순수한 희열에서. 마음의 밑바닥의 끝자락에서부터 솟아오르는, 자기 존재의 확인에서.
3번 트랙 ‘Sexy Song’은 놀랍게도 테크노 곡이다. Jim Rivers 나 Djrum 등 유로테크노를 방불케 하는 비트, 가상악기, 앰비언트 플로우가 테크니컬한 정합성을 갖추고 신나는 장르적 전형의 틀 속에서 반짝반짝 뛰논다. 갈수록 숨가빠지는 비트는 섹슈얼한 암시를 가볍고 즐겁게 탐구한다. 섹스의 기쁨만큼이나 밝고 즐거운 여느 클럽의 사운드다.
5번 트랙 ‘Right Here Right Now’는 담백한 포크송이다. 나긋나긋 제자리걸음으로 이리저리 서성이는 도돌이표의 기타코드 진행 위로 경쾌한 셰이커가 춤추고, 심플한 코러스는 사랑에 부풀어오르며 그곳에 머문다. 이렇게 간결하면서도 간곡하고 아름다운 곡은 너무 오랜만에 들어본다.
1번 트랙 ‘별의 기억’은 간단한 기타 아르페지오 위에 점차 쌓이는 코러스 보컬, 그리고 멀어져가는 잔향을 짙게 남긴다. 꾸밈도 가식도 거짓도 한오라기조차 걸치지 않은, 농도 짙은 황보령만의 목소리의 질감으로 말한다. 한 음절 한 음절씩 읊조리는 가사의 담담한 독백조의 진솔함은 모두를 향해, 자신을 향해, 타인을 향해, 그리고 또 하나의 자신만큼이나 소중한 누군가를 향해, 막힘없이 숨김없이 함께임을 말한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사랑을 한다고.
“아주 오래 전부터 저 별은 나를 보고 있었다
기억하고 있었나 아마도 이미 오래 전부터
기억하고 있는 별
너무 고마워
빛이 아름다워
지금 너가 보여
우리는 다시 사랑을 한다” 별의 기억_Star 가사 중
글쓴이: 초라초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