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고도 - [Knife(나이프)]
꿈은 자주 흔들리며 미끄러질 뿐이다. 바짝 엎드린 낮과 밤 앞에 낮은 포복으로 나아가려는 노래가 있다. 불행에 저항하는 꿈을 꾼다. 그저 눈을 질끈 감고 있는 것이다. 의지는 꿈의 어디까지 손을 뻗을 수 있나요. 하루의 꿈이 타올랐다. 빠르게 저문다.
가끔은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노래처럼 들렸다. 유리벽을 모르고 날아드는 날벌레처럼 아는지 모르는지 마음들이 하루 살고 죽어 수북이 시체처럼 쌓였다. 내일 우리는 다른 마음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어제 죽었던 마음 위에 다시 놓일 것이다. 눈 밑의 점에서 알 수 없는 노래가 새어 나오고 맥박이 뛰지 않는 글자에서도 노래가 들린다. 커서가 깜빡이는 간격 사이에 묶이지 않는 울음이 뛰어다닌다.
1. 나이프(knife)
마치 사랑인 양하는 것들. 믿고 있던 사람의 입에서 폐부를 찌르는 말들이 우루루 쏟아져 나오던 그 순간, 나는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이 썰어먹는 것이 내 몸의 조각조각인듯 했다. 입가에 미소가 테이블에 놓인 컵 눈금에 넘칠 만큼 찰랑거려 웃을 일인가 하며 따라 웃다가. 뒤통수라도 때려맞아 멈춘 딸꾹질처럼 어색하게 멎는다. 그럼에도 나는 너덜너덜해진 마음인 줄도 모르고-그 사람을-이어오던 관계를 소중한 것이라 여겼다. 꿈속에서는 울며 나이프를 쥐고 달렸다. 사랑의 흉내를 내는 무언가가 쫓아오고 있음이 확실했다. 축축한 땅을 딛고 달린다. 사랑을 하는 일은 아름다운 일이 아니었던가. 따뜻한 마음을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차갑게 식은 채로 반송되어 도착한 마음을 본 것이다. 섞이는 듯하다가도 성질이 다른 낮과 밤처럼 사랑하는 일과 좋은 꿈은 가끔 잘 어울리지 못했다. 악몽은 마치 시리즈물처럼 며칠을 건너 이어지기도 했다. 그럼 오늘은 나를 해하기 전에 내가 먼저라는 생각과 함께 다시.
2. Mole(my room)
어느 날 갑자기 점이 생긴 줄도 모르고 손톱깎이로 그 점을 떼어내려 한 적이 있다. 살점을 파고 내려가 떼어내려 해도 안됐다. 뿌리가 어디까지인지 모르는 마음도 깊이 박힌 사람도 사실은 점일지도 모른다. 아주 사소한 점. 나조차도 이 세상에 아주 사소한 점인데 내가 사랑했던 마음들은 얼마나 작은 점일까. 어느 날 눈에 띄어 며칠 마음에 밟히다, 또 잊고 살기도 하는 내 몸에 붙어사는 점. 가끔은 그 점이 느닷없이 열리고 닫히는, 내 안으로 통하는 세계인 것만 같다는 상상을 한다. 점은 깊이 이어진 바닥을 알 수 없는 방과 같아서. 내 몸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으나 사실은 비어있는. 그곳엔 여전히 누군가 살고 있을지도.
'이 작은 방에 쌓인 마음을 다른 누구와 함께하진 못할 거야. 이 작은 마음을 빌렸던 우리 사랑도 이 작은 점도 결국 영원하진 못할 거야'
어쩌면 불행을 안고 달리는 우리에게 눈부신 것은 가까이에. 사소하게 사랑하는 것들( )을 사랑해서 우리는 사는 것 같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