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흘렀죠. 더는 잊으려 애쓰지 않아도 될 만큼. 당신의 빈자리는 끝내 다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은 채, 내 속에 작은 일렁임으로 남았습니다.
우연히 당신을 마주하기만을 기대하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장소를 떠올리고는 그 속을 무작정 헤매곤 했어요. 그러다 보면 언뜻 흐릿한 그림자가 스치는 듯하기도, 어느 순간 불쑥 내 앞의 당신이 나를 손짓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영화에서나 보듯, 마치 기적처럼 말이죠.
그 속에서 나는 한동안 웃음 짓기도, 거듭 사과를 건네기도, 못내 그리워 눈물 흘리기도 했습니다. 이제 모두 지나간 일이지만요. 당신은 희미한 그림자로, 맑게 피어난 햇살 아래 한 송이 들꽃이, 사그라지는 파도의 마지막 음성이 되었다가, 끝내 작은 점 하나로 아스라이 멀어진 것입니다.
어느 늦은 가을날, 오랜만에 당신의 꿈을 꾸었습니다. 우리는 너른 거리를 두고 한없이 봄으로 걸어갑니다. 희미하게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며 각자의 세계를 나아가는 중입니다. 더 이상 가까워지거나 멀어지지 않고, 아주 잊혀지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서.
끝내 서로의 마음에 머무를 두 사람. 우리는 그렇게 남았으면 해요. 나란히 멀리서, 오래도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