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안다영이 주조해낸 또 하나의 음악적 성취를
안다영 [BABEL]
안다영이 EP [Burning Letter] 이후 1년 만에 새 싱글 [BABEL]로 컴백한다. 매일 다종다양한 음악이 앞다투어 발매되는 현대의 음악시장에서 안다영의 활동은 꽤 느리고 긴 호흡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여러분의 생각과 달리 안다영은 솔로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한 이래 지난 2년간 부지런히 움직여 왔다. 2020년에는 세 건의 선공개 싱글과 이를 아우르는 첫 번째 풀렝스 [ANTIHERO]를 발표했고, 이듬해에는 갈증과 결핍을 기록한 EP [Burning Letter]를 발매했다. 2022년에는 외연을 넓히는 데에 포커스를 맞췄다. <서울체크인> 사운드트랙 참여를 비롯하여 빅나티, 아프로와 같은 음악가들의 앨범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또한, 앞서 언급한 두 장의 앨범이 바이닐로 발매되어 장르 팬과 콜렉터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기도 했다. [ANTIHERO] 발매 이후 첫 단독 공연을 개최한 것 역시 2022년의 일이다. 당시만 해도 미발표곡이었던 'BABEL'이 본 공연의 피날레로 첫선을 보였으니, 어쩌면 공연 타이틀인 <20 to 22 was a babel>은 안다영의 지난 발자취를 대변하는 하나의 문장일지도 모르겠다.
안다영은 많은 이들이 다루기 어려워하고 터부시하던 주제들을 작품화하는데 거침이 없는 뮤지션이다. 끝잔향의 일원이 아닌 제1의 안다영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ANTIHERO]로 인간의 이면성을 가감 없이 다룬 바 있는 그의 차기작 속 핵심 키워드는 다름 아닌 '야망'이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BABEL]은 성경 속 바벨탑 신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탄생된 작품이다. 무한히 솟은 탑을 향해 오르는 여정에서 화자는 온갖 야망을 마주한다. 성취를 위해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인간관계를 맺기도 하고, ('나 플라스틱 너머 불필요한 악수') 거기서 깊은 환멸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럴때에 난 곰팡이') 결국 탑에 오르기 위해 분투하는 이 모든 상황은 본인이 설정한 그야말로 '웃픈' 일임을 깨닫는다. ('I wanted everybody everything') 고결한 성공이란 어쩌면 허상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르지만, 더 이상 가난한 마음에 지배당하지 않고 자신의 야망이 건강하게 발휘되기를 고대하며 작품은 막을 내린다. ('실은 지겹게 우는 가난이 여기 / '원하는 것 만큼 빌어먹을 세상')
[BABEL]은 안다영의 작품 중 언어적으로 가장 솔직한 작품이지만, 사운드 적으로도 그러하다. 80년대의 정취를 머금은 순수하고 직관적인 팝의 에너지는 그간 안다영의 디스코그라피에서 쉽사리 볼 수 없던 형태지만, 이는 낯섦보단 반가움으로 다가온다. [BABEL]을 통해 안다영은 정갈하고 단단한 사운드스케이프를 지닌 자신의 음악적 색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완성도 높은 클래시컬한 팝을 만들어내는 실험에 성공했다.
안다영의 곁에는 늘 든든한 음악 동료가 함께했다. 물론 안다영의 역량이 솔로 활동을 이끌어나가기에 부족하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장점을 더 드러내고, 부족한 면을 채워줄 파트너를 채용하는 데에 거침이 없었다.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 활동 때에는 김하람을 비롯한 밴드 멤버들이 그러했고, 홀로서기에 돌입한 이후로는 두 프로듀서 글로잉독과 드레스가 곁을 지켰다. [BABEL]에 존재하는 이름은 오직 안다영뿐이다. 이는 타인의 소리를 빌리지 않고 오롯이 혼자서 모든 것을 말하고 싶다는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고, 음악가 자신이 하고 싶은 모든 것을 담아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른 이들의 기술과 도구 없이 안다영 자신이 직접 끌과 망치를 잡아들고 깎아 올린 단 하나의 마스터피스, [BABEL]을 여러분께 소개한다.
글 / 키치킴 (포크라노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