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인의 세번째 소리걸음 전도양양, “아리랑, 역사를 부르다”
아리랑은 우리나라 각 지역에 다양하게 전해오고 있으며 2012년엔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으로 등재되어 한민족의 대표 노래로 자리 잡았다.
현재 전문 소리꾼들이 주로 연행하는 아리랑을 살펴보면 경서도 소리꾼이 경기 아리랑(본조아리랑) / 구 아리랑 / 밀양 아리랑 / 경기제 정선아리랑 /강원도 아리랑 / 해주 아리랑 등을, 남도 소리꾼이 진도아리랑 / 상주 아리랑 등을 연행하고 있다.
이 음반엔 경서도 소리꾼이 주로 부르는 아리랑과 아리랑의 역사 일면을 확인할 수 있는 옛 악보 및 음원 자료를 복원·재현한 아리랑이 함께 담겨있다.
1886년, 미국인 선교사였던 호머 헐버트가 한국에서 여동생에게 보낸 편지엔 손으로 그린 짧은 악보가 담겨있다. 이를 악보대로 부른 것이 <아이들 아리랑>이다.
1896년 2월, 호머 헐버트가 코리안 리포지토리 잡지에 ‘Korean Vocal Music’이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에 아리랑 악보가 실려있다. 이를 재현한 것이 <헐버트 아리랑>이다.
<정창관 아리랑>은 아리랑 자료 수집가이자 연구자인 청우 정창관 선생님이 1896년 유학생 아리랑과 1894년 5월 31일 유우빈 호우치(우편통지) 신문에 수록된 가사와 헐버트 아리랑의 가사를 참고하여 편사하였고, 필자가 1896년 유학생 아리랑의 음원을 채보하여 이를 기반으로 한 곡조를 붙였다.
1968년도에 처음 나타난 <해주 아리랑>은 사실은 1925년경 ‘란란타령’(광고에서는 강원도아리랑)으로 출반되었으며, <밀양 아리랑>은 나운규 영화 “아리랑”(1926년 10월 1일) 이전에 출반되었다.
7번 곡, <나운규 아리랑>은 나운규 감독의 영화 “아리랑”의 주제곡이다.
이 아리랑이 변화하여 현재의 <경기 아리랑>(본조 아리랑)이 되었다.
현행 경기 아리랑과 영화 개봉 당시 <나운규 아리랑>을 비교해보면 국악 반주, 양악 반주 간 차이점이 가장 도드라지고 창법, 노래 선율 및 가사에도 차이가 있다.
점차 경기 소리화 되며 경기 창자 특유의 시김새 및 기교가 더해지는 양상도 있다.
<나운규 아리랑>과 <경기 아리랑>의 연번 수록을 통해 이들의 변화 과정 및 차이점을 들을 수 있도록 하였다. <나운규 아리랑>은 본래 양악기 반주로 연주되었으나 아쉬운 대로 대금과 해금이 각각 플루트와 바이올린 등 양악기의 선율을 본 따 반주하였다.
그리고 1930년 조선민요의 연구에 근거해 2015년 창작된 <창녕 아리랑>을 마지막 곡으로 수록했다.
1번 곡 <아이들 아리랑>부터 11번 곡 <창녕 아리랑>까지 악보 및 음원 자료가 소개된 연도순으로 수록한 것이다. 이는 정창관 선생님의 자문에 따랐다.
1886년 편지 속 아리랑부터 2015년에 창작한 아리랑까지 이 음반을 통해 130년 동안의 아리랑 역사의 일면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사단법인 경기음악연구회 이사장
전병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