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첫 발견, 좋은 취향을 만난다는 것의 가치 - 모스크바서핑클럽 [저공비행]
한 장의 앨범을, 혹은 하나의 곡을 하나의 장르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진 건 벌써 한참의 일이다. 장르와 장르가 쌓여 새로운 이름이 붙고, 그 새로운 이름들이 만나 또 새로운 이름을 만든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러한 작업조차 이루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결의 음악이 하나의 작품에 공존한다. 그것을 얼마나 영리하게, 또는 얼마나 좋은 취향과 관점으로 구성하는지가 관건이다. 지금 소개할 이 밴드는 그러한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제 첫 작품이지만, 충분히 좋은 가능성을 보이고 있으며 음악을 좋아하는 이에게는 훌륭한 발견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러시아 여행 중 모스크바에서 만난 “Surf Coffee”라는 간판의 카페가 인상적이었다는 이야기에서 출발된 밴드의 이름 모스크바서핑클럽은 이들의 음악을 만나는 첫인상으로는 정말 좋은 이름이라 생각한다. 여기에는 “추운 모스크바에서 서핑하는 것도 개의치 않는, 무모하고 황당한 것을 즐기는 무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드럼에 정현진, 기타와 보컬에 정기훈, 베이스에 명진우, 건반에 김규리로 구성된 네 사람은 저마다 다른 음악적 취향을 기반으로 하며, 얼핏 곡을 들었을 때도 그 스타일이 다르다. 하지만 그것이 만나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네 사람이 함께 곡을 쓰고 연주를 했음에도 밴드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짜임새와 합주가 아닌, 재즈와 같은 연주자 간의 합이나 긴장을 먼저 만나게 된다. 재즈와 매스 록, 프로그레시브 음악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드럼과 블루스부터 다양한 인디 음악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기타, 디스코와 훵크 등을 기반으로 하는 베이스와 정적이며 공간감을 중시하는 키보드까지 이러한 부분은 실제로 각각의 곡에도 묻어나 있다.
캔 따는 소리와 한 모금 마시는 소리로 시작하는 첫 곡 “저공비행”의 도입부부터 보컬이 등장하기 전까지의 짧은 구간, 그리고 곡의 후반까지 이들은 짧은 곡이지만 연주에 더 많은 지분을 할애한다. 이는 아마 앨범 전체를 감상할 때 염두에 둘 좋은 지점이 아닐까 싶다. 이후 하나씩 곡을 들어보면, 과거 쟁글 팝이나 파워 팝과 같은 카테고리부터 00년대 영미권 인디 음악이 지녔던 다채로움과 재기발랄함, 기타를 기반으로 하지만 악기가 선보이는 연주 위아래로 얹히는 다양한 장르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앨범의 중간에 있으며 연주와 다양한 소리, 독특한 공간감으로 채워진 “Margarine”은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가사는 없지만, 어쩌면 이들이 선보인 곡 중 가장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으며 또 네 사람을 이해하기에 가장 좋은 곡이 아닐까 싶다. 여기에 마지막 곡 “여백”까지, 앨범은 차근차근 각자가, 또 밴드가 지닌 음악적 플롯을 꺼낸다. 그것은 때로는 동시다발적으로, 때로는 순서를 지켜가며 전달된다.
첫 시작을 정규 앨범으로 하는 경우는 아무래도 흔치 않다. 워낙 많은 싱글이 하루에도 세기 힘들 정도로 쏟아지고, 여건을 막론하고 정규라는 것 자체가 많은 공을 쏟아야 완성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빨리 잊혀질 수도 있다는 불안함도 존재한다. 하지만 음악을 하는 사람이 자신의 것을 제대로, 온전히 선보이려면 결국 정규 앨범만큼 좋은 것도 없다. 누군가는 이들의 첫 정규 앨범을 욕심과 같은 단어로 언급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용기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앨범이 충분히 재기발랄하고, 그러면서도 결코 어설프거나 서투르지 않다고 말한다. 여러 결이 실타래처럼 엉키며 재미있게 꾸려진 만큼 한 사람이라도 더 들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되었고, 작은 힘이지만 응원을 보태본다.
블럭(칼럼니스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