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기다림 속에 성장하며, 기다림이 쌓이며 성숙되어진다. 우리 삶이 메마르지 않게 은연중 기능하는 놀라운 보습제가 있다. 바로 정서(emotion)이다. 기쁨(희), 분노(로), 애정(애), 즐거움(락)에 웃고 울게 만드는 이 정서는 서로 함께하며 나눌 때 증폭되거나 휘발되며 우리 삶이 무미건조해지지 않게 한다. 이 모든 정서 중에 단연 으뜸은, 사랑이다. 사랑만큼 극적 대비를 지닌 정서란 존재 하지 않는다. 배려와 집착, 몰입과 혐오, 이해와 오해, 화합과 갈등처럼 사랑의 양면성은 어떤 위치, 어떤 입장에 서 있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감정을 경험케 한다. 사랑의 양면성이 지닌 진폭은 이 세상 그 어떤 산의 높은 정상이나 바다 계곡의 심연마저 설명이 부족할 수 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부모가 자녀를, 연인이 서로를, 스승이 제자를 대할 때, 필연적으로 그 끝을 알 수 없는 기다림이란 긴 터널을 지나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긴 터널이라는 스위스의 고르하르트베이스나 두 번째로 길다는 일본의 세이칸 터널도 시작과 끝이 있는데, 사랑에 기인한 기다림이란 터널은 입구는 분명히 있지만 출구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 출구란 기대와 실망, 소망과 절망처럼, 이상과 현실을 끊임없이 오가는 자맥질과 같기 때문이다. 옛 속담에 목이 빠지게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린 다는 학수고대란 말이 있다. 사람 못지 않게 긴 세월을 사는 학이 목을 길게 빼고 고개를 기웃거리는 애처로운 모습을 이른 말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기다리게 된다. 기다릴 수 없다면 사랑이 아니다. 기다림은 반드시 좋은 결과가 올 것이란 믿음 속에 견디는 인내이며, 자신의 몸을 던져서라도 모든 것을 얻고자 하는 헌신이다. 그래서 사랑은 그 누구나 뿌려 키울 수 있는 한줌 작은 씨앗이지만, 기다림 이란 과정을 통해 성장, 성숙되며 결국 열매 맺게 된다. 또한 사랑은 그 누구나 가진 불씨 같아서 어두움을 밝히고 온기를 주지만, 부주의로 화인(火因)을 만나 애써 이룬 것을 재로 만들기도 한다.
싱어송라이터 '오은영'은 사랑이란 말을 단 한마디도 쓰지 않았음에도 그녀가 경험한 사랑의 의미를 눈사람이란 곡에 담아냈다. 사랑은 어떤 이에게는 설렘이겠지만, 다른 이에게는 짙은 그리움일 수 있다. 눈사람은 듣다 보면 후자의 의미가 그려진다. 밤새 내린 눈이 한 겹 두 겹 쌓여, 싸늘한 도시도 잠시나마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 길을 걷다 어느 낡은 아파트 정문 앞에 크기 다른 동그라미 두 개 이어진 눈사람이 정겹게 미소 짓고 있는 것을 보게 될 수도 있다. 그녀는 이 곡을 듣게 되는 사람이, 어설픈 사랑이 기다림 속에 의미라는 둥근 고리가 이어져 참된 사랑이 되어가는 경험이 시작되기를 바란다 며 전했다. 눈 사람 앨범 트랙에 프로 재즈 연주자로 구성된 탱고밴드 라벤타나 정태호의 아코디언 연주가 더해져 애틋한 서정성을 더했다. 자켓 이미지는, 글자로 그리는 예아가 참여해 의미를 더해주었다. 눈사람은 1월 1일 음원 사이트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