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은 ep [타임라인]
날 웃고 울렸던 모든 삶의 중요한 순간들은 내가 원했던 게 아니다.
어릴 적 아무 생각 없이 던진 주사위 몇 번에 승패가 정해지던 보드게임들과 다를 것 없이 흘러간 채로 박제되었을 뿐이다.
스물하나의 무수했던 새벽들도 스물셋의 지겨웠던 불행들도
그저 인생의 타임라인 위에 내가 던진 주사위, 그것의 결괏값일 뿐.
그 작은 정육면체 안에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랑과 슬픔을 넣었는지
이 앨범을 만들며 다시 한번 되짚어 보고 싶었다.
<섬머솔트>
가끔 사랑에 빠지는 행위가 참 귀엽다는 생각을 한다.
뭐 나야 아직은 어리지만, 동시에 사랑을 이미 적잖게 겪었는데.
그렇게 사랑과 상실을 겪어내고도 또다시 유치한 사랑을
듣고 부른다니… 어느 시점에선 이게 참 한심하다고 느껴지다가
그런 시기도 지나 이젠 유치하게 사랑에 계속해서 빠지는 행위가
우습게도 굉장히 낭만적이고 귀엽게 보인다는 것이다.
익숙한 처음들을 다시 서툴게, 간지러운 음절들을 되게 수줍게.
그래, 사랑은 참 엄청난 특권이지.
<시간이 어지러울 만큼 빠르게 지나가>
누군가를 마음 깊은 곳에 소중히 담게 된 새벽이 있었다.
그 애는 마치 내가 걔를 사랑하라고 설계되어 태어난 애 같았다.
그래서 그런 건지 우리는 10대 언저리라도 된 듯 사랑했다.
다음날 당장 죽어도 아쉽지 않을 만큼 먹고 마시고 웃고 울었고,
그 애와 함께하는 매 순간이 정말 어지러울 만큼 빠르게 지나갔다.
이렇게까지 내 모든 시간을 온통 사랑에 할애한 적이 있었던가?
의문을 던져놓고는 다시 돌아보지도 않고 사랑한다. 사랑만 한다.
그리고 그게 아쉽지 않다. 어지러이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만큼
앞으로 같이 겪게 될 무수히 많은 시간들에 대한 확신을
양손에 꽉 움켜쥐었다. 놓치지 않고 싶으니까.
이제 나는 현재에서 시간을 감아 더 예전으로 돌아가 본다.
<2017>
2017년.
처음 가본 엄청나게 시끄러운 술집과 새벽,
아침이 될 때까지 함께하는 게 당연했던 매일.
지금보다 훨씬 어리고 무모했던 친구들과 나의 사랑을
서로 참 많이 놀리기도 위로하기도 했던 그때.
가끔은 세상을 다 가진 애들처럼
또 가끔은 세상을 다 잃은 애들처럼 웃고 울고 그랬다.
조금 부끄러운 시간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후회는 없다.
그때의 치기 어리고 무모한 방황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거든.
<마취된 슬픔이 다시 고갤 들 때까지>
사랑을 하고 술에 취하고 허울뿐인 무언가에게 기대어
실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나의 슬픔은 그제야 마취가 됐다.
어떤 불행에도 어떤 대단한 운명적인 만남에도 감각이 없어진다.
무감각을 쫓으려 했다. 슬픔으로 또 다른 슬픔을 마취 시켰다.
취하는 시간이 있다면 깨어나는 시간도 따라온다는 것을 덮은 채
그렇게 나는 매일같이 끔찍한 오늘을 버티기 위해 내일을 버렸다.
아침이 오면 풀려버리는 마취, 구역질 나는 숙취 비슷한 자기혐오.
그것들을 끌어안고 다시 잠드는 악몽이 이어지던 날이 잦았다.
<2시 13분>
건강하지 못한 날들이 지겹게 정말 지겹게 이어졌다.
내가 좀 아프더라도 상대방에게 희생하려는 버릇이 있었다.
사실은 끝에 갔을 때에 난 최선을 다했다며 아무런 미련 없게,
마음 편히 관계를 끝내기 위한 방어기제였지만.
그리고 그런 태도는 사랑이 아니었단 걸 너무 늦게서야 알았다.
좀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좋았을 걸 그랬다.
<그런가>
야, 우리 엄마 아빠가 불행했어서 나도 사랑을 잘 못하는 것 같애.
툭 내뱉은 한마디에 내 친구 수은이는 그저 음, 음 했다.
별생각 없이 뱉은 말이었는데 막상 뱉으니 괜히 생각이 많아졌다.
사랑하는 이에게 주고 싶었던 건 매번 변함없는 사랑이었다.
그렇지만 잘 안됐다. 마음을 지켜내는 것도 받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내 유년을 탓하기 시작했다.
당신들이 영원한 사랑이라는 선택지를 내 눈앞에서 없앴잖아.
사랑을 가르쳐 준 어른들을 못 보고 자라서 내가 이렇게 된 거야.
그 생각이 쌓이면 쌓일수록 점점 사랑이 재미 없어졌다.
내게는 정말 중요했던 사랑이 볼품 없어지는 기분은 아팠다.
언제까지 아파야 할까, 아프지 않은 날이 온다면 좋을 텐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