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와 의미 모두 가진 앨범, 까데호 [FREEVERSE]
노자가 한 말 중에 ‘도가도비상도’라는 말이 있다. 도를 도라고 부르는 순간 그것은 이미 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언어화하는 것조차 결국은 설명이나 표현이 아닌, 특정한 형태 안에 가두는 제약일 뿐이다. 사실 자유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자유를 길게 설명하고, 누군가는 온몸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결국 자유라는 말 자체도 자유를 제한하는 형태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유라는 단어, 자유를 부르는 노래를 통해 간접적으로 자유를 느낀다. 그래서 까데호의 음악은 소중하다. 현대사회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몇이나 될까. 특히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서는 더욱 없을 것 같다. 우리는 까데호의 음악을 들으며, 공연을 보며 그들과 함께 자유에 가까운 무언가를 공유하고 또 느낀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자유에 근접해지고, 거기서 재미를 찾으면서 의미도 획득한다.
누군가는 까데호가 하는 음악을 두고 텍스트로 전달하기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오히려 텍스처를 설명하고, 어떤 프레이즈를 짰고, 어떤 연주 방식을 택했고 듣는 입장에서 그런 부분을 통해 어떤 장르가 느껴졌는지를 쓰면 된다. 어떤 부분에서는 레게가, 어떤 부분에서는 재즈가, 어떤 부분에서는 록이 보이는 듯하다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각자의 감상이 완성된다. 그리고 그 감상이 모이다 보면 또 다른 감상이 나온다. 누군가는 까데호의 음악이 예측 가능하다고 하지만, 이들은 오히려 더욱 예측 불가능한 음악을 들고 찾아왔다. 2년 8개월만에 나오는 까데호의 정규 3집 앨범은 2집만큼이나 많은 볼륨을 자랑하고, 누군가는 이 앨범이 지닌 트랙 수에 행복해하고 누군가는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가뜩이나 3분도 안 되는 곡의 속도를 높여 더 짧게 듣는 시대에 8분이 넘는 곡들을 만나고 있으면 완전히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기분도 든다. 하지만 까데호는 그런 식으로 경험을 전달한다. 공연을 자주 찾아온 이들이라면 앨범을 통해 그 곡의 또 다른 버전을 느낄 수 있다. 총 스물 세 곡, 두 시간에 가까운 앨범 전체는 그냥 하나의 플레이리스트와 맞먹는다. 그래서 앨범의 양은 자연스럽게 깊이가 된다. 여러분은 기분 좋게 빠져들면 된다.
까데호의 세 번째 정규 앨범은 김다빈, 김재호, 이태훈 세 사람이 곡을 썼고 연주했으며 이승준이 전체를 총괄했다. 미리 들어보면서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경험을 했다. 여러분도 나와 같은 경험을 공유했으면 한다.
블럭 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