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적 과도기의 성장통을 섬세한 가사로 표현한 명곡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수록!
1집은 펄시스터즈로 걸 팝씬의 아이콘 위치에 있었던 배인숙이 아이돌 스타의 명성을 뒤로 하고 뮤지션으로 첫걸음을 내딛었던 전환기의 음반이다. 앨범은 최헌, 윤수일 등을 히트시키며 당시 트렌드를 주도했던 독립기획사 안타 기획의 전폭적인 지원아래 녹음되었다. 김기표를 위시한 소위 안타사단의 세션맨들의 장르를 초월하는 사운드는 배인숙의 유니크한 목소리와 함께 당시 어느 가수의 앨범과도 다른 독특한 질감의 팝음악을 만들어 냈다. 배인숙은 단순히 보컬뿐 아니라 앨범 전체의 컨셉을 설정하여 주도적으로 선곡과 제작에 참여했으며 아트웍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진행됐다고 한다.
아티스트 본인의 개인사와 음악적 방향에 대한 고뇌의 산물인 '누구라도 그러하듯이'는 알려졌다시피 번안 곡이다. 그러나 배인숙의 유려한 우리말 가사로 인해 샹송인 원곡의 완성도를 뛰어 넘는 보기드믄 결과가 탄생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이경석의 "착한 고급 팝"적 감성이 물씬 베어 나오는 '아름다운 그대', 수준 높은 발라드 '그대 내 곁에 있어줘요'는 단연코 이 앨범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AOR 가요 스타일의 편곡을 시도한 것으로 보이는 '오동잎', '내 님아(이상 안치행 작곡)'와 스튜디오 54시절의 뉴욕 디스코風 넘버 '난 몰라(이경석 작곡)'에서는 당시 트렌드에 민감했던 편곡자 김기표의 왕성한 작업욕과 앞선 감각을 엿볼 수 있다. 역설적으로 당시 이 음반이 왜 타이틀 곡 외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가를 가늠할 수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처럼 배인숙의 앨범은 당시의 국내 대중음악계, 그 중에서도 독립 기획자들과 제작의 주역들이 어떠한 자세와 시스템으로 음악계의 유행과 대중적 요구 사이의 접점을 찾으려 했는지 확연히 보여준다. 그리고 이들이 락 음악의 쇠퇴와 고전 트로트의 재득세, 포크 붐에서 칼리지록 붐의 시대로 이어지는 변화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어떻게 생존할 수 있었는지 역시 확인 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는 셈이다.
[Trivia]
- 커버와 인서트에 실린 사진은 모두 김중만이 작업했으며 2집에서는 그가 전체 아트 디렉션을 맡기도 했다.
- 1집에 실린 두 곡의 연주 곡은 배인숙 본인의 의도나 앨범 전체의 맥락과는 상관없이 수록된 걸로 보인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이필원, 정민섭, 김희갑 등이 제작하여 유행시켰던 무드 오케스트라 풍의 연주로 미루어 일종의 파일럿 컨텐츠적 의도에서 실린 것이 아니었나 추정된다.
- 참고로 당시 일본에서는 6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던 엔카, 가요가수들이 7~80년대 등장한 젊은 작/편곡자들과 만들어 낸 크로스 오버 가요(또는 AOR 가요) 스타일 음반이 유행이었다. 기존의 엔카적 감성이나 멜로디는 그대로 가져가되 편곡이나 리듬에서 당대의 트렌드를 접목시킨 작품들이 그것들이며 이시다 마유미, 슈리 에이코와 히라야마 미키의 70년대 말 80년 초의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