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의 추억을 오늘의 한 잔으로 플라잉 독 [Hommage]
플라잉독의 새 앨범 제목은 [Hommage]다. 오마주(hommage)는 경의, 존경 등을 의미하는 프랑스어다. 문학, 미술, 음악 등 예술 전반에서 행해지지만, 한국에서 ‘오마주’라는 단어를 정착시킨 대표적인 장르는 영화다. 보통 존경하는 선배 감독이나 작품의 영향을 자신의 영화 안에 녹여내는 일을 가리킨다. 특정 씬(scene)의 흐름을 가져와 존경을 표할 수도 있고, 컷(cut) 단위로 영향받은 작품의 대사나 미장센을 가져오기도 한다.
원작을 조롱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패러디와 다르며, 몰래 훔쳐 오는 표절과는 질적인 차원에 서 구분된다. 원작을 통째로 재연하며 존경을 드러내는 트리뷰트와 결이 다르다. 좋은 오마주는 아는 사람 눈에만, 귀에만 포착된다는 점에서 단순하지만 까다롭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킬 빌]이 오마주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까닭이 여기 있다. 홍콩과 일본의 무협영화 작 품과 역사적 변천을 몰라도 영화를 즐기는 데 지장이 없지만, 알면 대사 하나에, 조명 하나에, 소품 하나에 보는 재미가 배가되기 때문이다.
플라잉독의 2집 안에는 헤비메탈 영웅들에 대한 오마주로 가득하다. 오마주를 표현하는 방식 도 매력적이다. 음악에 앞서 우정훈이 담당한 커버 아트부터 헤비메탈 전성기의 위대한 작품들 이 연상되는 위트 넘치는 LP 이미지다. 사실 헤비메탈 팬이 아니라면 이 커버의 의미는 눈에 들어오지 않을 거다. 헤비메탈에 대한 존경과 존중을 플라잉독의 음악 안에 마치 단서처럼 녹여냈다. 동시에 헤비메탈 역사에 크게 관심이 없다면, 그 자체로 즐겨도 전혀 무방한 유쾌하 고 매력적인 하드록이다. 이 지점이 이 앨범을 우량 오마주 사례로 꼽는 이유다.
Mr. Big, AC/DC, Whitesnake, Deep Purple, Motorhead의 음악을 몰라도 이 앨범은 충분 히 흥겹고, 충분히 록킹하다. 이교형(기타, 보컬)과 권함(베이스, 보컬) 두 사람은 1집 [입문자 용 하드로크](2017)에서 들을 수 있었던 재기 가득한 정서를 더 정교한 연주로 키워냈다. 여 기서 강조하는 정교함의 핵심은 기술적 완성도와 함께 오마주에 있다. 기타 솔로 중간에 오마주가 등장하기도 하고, 리프 구조 일부를, 프리 코러스의 브릿지에서 오마주 하기도 한다. 때론 곡 전체의 분위기로 드러나기도 한다. 하지만 오마주를 대놓고 드러내진 않는다.
원곡과 다른 톤으로 연주되기도 하고, 전혀 다른 분위기의 솔로 흐름 속에 슬그머니 녹여내기 도 하기 때문이다. Deep Purple 마크II 초기 곡들을 듣다가 이 리프는 (펜타토닉의 변용이기에 자연스러울 수도 있지만) 국악처럼 들린다고 느꼈던 기억이 있다면, Mr. Big의 베이스와 기타 솔로가 얽혀 들어가는 대목이 헤비메탈 스타일 전개가 아닌 곳에 붙인다면 상상해 봤다면, AC/DC의 별안간 터져 나오는 양손 태핑을 팝록 사이에 흘려보내 보면 어떤 음악이 될까 공상을 해 본 사람이라면, 이 앨범에 담긴 오마주를 만날 때마다 미소가 번질 것이다.
연주만 따스한 게 아니다. 가사에서 느껴지는 추억과 진심은 앨범에 감칠맛을 준다. 이교형의 걸걸한 목소리와 권함의 날카로운 보컬로 전해지는 가사는 록 음악이 담긴 잡지를 구해 친구들 과 읽으며 소개된 음반 이야기로 꽃을 피우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고, 술 마신 다음 날 얼굴 붉어지는 기억에 해장술을 찾던 날을 소환하며, 록밴드를 유지하는 삶을 반추하는 내용에선
울럭불럭 청자의 공감을 끌어낸다.
연주의 완성도와 별개로 플라잉독은 이 모든 것을 심각하지 않은 얼굴로 전하려고 노력한다. 긍정의 에너지가 어떤 설득의 힘을 가지는지는 앨범에 참여한 다양한 동료의 면면에서 확인 가능하다. 드럼 연주를 위해 정현규(아프리카), 이성산(ex) 브로큰발렌타인), 에스더(동이혼), 왕명호(포멀 에이퍼시)가 HRC 스튜디오를 찾았다. 여기에 이교형과 데디오 레디오를 함께 하 고 있는 김인수, 이상혁(크라잉 넛), 1집에 이어 가야금 연주를 더해준 박연희, 기타 솔로로 듣는 재미를 더해준 김진이(에이-퍼즈), 황린(ABTB, 카디), 윤세나(동이혼), 코러스로 참여한 김경준(브로큰발렌타인, 허니페퍼), 김상우(신촌블루스, 헤드라이너), 영화배우 이원종까지 화려 하고 다양한 선후배 동료를 불러 모은 힘은 플라잉독이 가진 태도다.
물러서거나 회피하지 않으며 꾸준히 그러나 음악을 즐기는 자세를 버리지 않는 이들이 만들어 낸 에너지가 앨범 전체에 쏟아진다. 이 에너지는 평생을 끼고 들었던 음악에서 시작해서 함께 음악을 듣고 즐기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더 커진다. 관계를 지속시키는 원동력은 음 악에 대한 애정과 말로 퉁 칠 수 없는 진지한 연주 실력에 있다. (플라잉독이 주변 아티스트 들과 협업으로 HRC TV에서 선보였던 커버 동영상을 한 번 찾아보라)
괜히 어깨엔 들어갔던 힘은 빼고, 악기를 잡은 손과 발엔 더 힘을 실은 하드록의 즐거움과 열 기가 귀에 쏙쏙 박히는 리프와 유쾌한 가사로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어쩌면 그래서 이 앨범은 고단한 일상을 버티게 해준 카세트테이프 속 헤비메탈이 전해줬던 달뜬 마음을 오마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조일동 (음악취향Y 편집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