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록의 명곡 ‘아름다운 강산’의 오리지널 버전이 수록된 명반
신중현이 결성한 많은 밴드 중 가장 음악적으로나 대중적으로 최고의 성과를 이뤄낸 밴드는 ‘한국적 록 음악의 완성을 이뤘다’고 평가받는 ‘신중현과 엽전들’이다. 하지만, 더 맨을 신중현 음악의 정점이라 평가하는 음악전문가들과 록 애호가들도 상당하다. 이는 더 맨이 더 없이 풍성하고 세련된 한국적 록 사운드를 구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신중현 사단의 전설적인 싸이키델릭 여성보컬리스트 김정미의 발굴과 무엇보다 한국 록의 명곡 <아름다운 강산>이 더 맨 시절에 탄생했음도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신중현이 리드했던 더 맨은 리드 기타 신중현, 베이스 기타 이태현, 드럼 문영배, 오르간 김기표, 오보에와 색소폰 손학래, 리드 보컬리스트 박광수의 6인조 라인업으로 구성된 록밴드였다. 더 맨의 첫 앨범 제작이 끝나가던 1972년 10월 17일에 군사정권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며 유신정권을 출범했다. 이는 전성기를 내달리던 신중현에게 좌절의 시간이 다가왔음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1972년 10월 29일 유니버샬레코드는 총 7곡을 수록한 더 맨의 첫 독집「장현 and THE Men」을 발매했다.
타이틀곡은 석양을 배경으로 한 앨범 재킷과 어울리는 장현의 히트곡 <석양>이다. 느리게 흐르는 이 노래에서 저음 가수 장현(본명 장준기)이 가성으로 부른 음색은 매력적이다. 1970년 신중현의 창작곡 <기다리겠소>로 데뷔한 장현은 이 앨범 발표 당시 신중현 사단의 가장 인기 있는 남자가수였다. 그는 1975년 활동 금지된 이후에도 베스트 앨범을 양산할 만큼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았다.
앨범 타이틀「장현 And The Men」을 보면 1면에 수록한 <석양>, <안개속의 여인>, <미련> 등 전곡을 노래한 장현을 더 맨의 리더나 리드보컬로 오해할 수 있다. 앨범 타이틀은 장현의 인지도를 이용한 음반사의 판매 전략이었을 뿐, 당시 더 맨의 리드보컬은 한국 블루스 보컬의 선구자인 박광수였다. 인기가수 장현을 앞세운 판매 전략 덕분에 이 앨범은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상업적 성공여부와 상관없이 이 음반이 한국 록의 명반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2면을 꽉 채운 더 맨의 <아름다운 강산> 오리지널 버전과 금지곡 <잔디>가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강산>의 오리지널 버전
유신정권이 가동되었던 1972년에 신중현은 “박정희 대통령의 노래를 만들라”는 청와대의 전화 청탁을 거절한 후 온갖 통제에 시달렸다고 전해진다. 그로 인해 유신정권에 강한 거부감을 갖게 된 신중현은 자신이 생각하는 애국가를 만들어보았다. 그 노래가 바로 러닝타임 10분의 대곡 <아름다운 강산>이다. 이 음반을 통해 발표된 <아름다운 강산>의 오리지널 버전은 박광수의 저음 보컬에 신중현 등 멤버들의 코러스가 가미되어 구성했다.
앨범발매 후 박광수는 당시 정부의 장발 단속에 대한 항의 표시로 삭발을 단행했고, 나머지 멤버들은 장발에 머리핀을 꽂아 귀만 드러낸 모습으로 한 지상파 TV 쇼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도발을 감행했다. 이들은 태극기가 휘날리는 엄숙한 장면에서 현란한 사이키 조명으로 정권을 조롱하며, 앨범에 수록한 버전보다 훨씬 긴 18분 동안 <아름다운 강산>을 연주했다. 일종의 음악적 시위였다. 방송 출연 이후 더 맨의 멤버들은 요주의 대상으로 낙인찍혔다. 리드 보컬 박광수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아름다운 강산>은 원래 신중현씨가 통기타로 만든 곡입니다. 처음 이 노래를 선보였던 무대는 청평 페스티벌이었는데 관객들의 반응이 대단했죠.”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아름다운 강산>과 함께 이 앨범의 대표적인 금지곡인 <잔디>의 제목은 대마초를 상징하는 경상도 지방의 은어이다. 이 곡은 묵직한 박광수의 보컬, 가성으로 부른 신중현의 코러스, 더 맨의 사이키델릭 사운드 연주가 어우러진 한국 록의 숨은 명곡이다. 박광수는 인터뷰에서 “솔직히 저는 <아름다운 강산>보다 <잔디>에 더 애착이 갑니다. 그 노래 때문에 대마초 사건 때 기관에 끌려가 호되게 당했지만요.”라며 노래에 대한 강력한 애정을 드러냈다.
한국 록 음악 최고의 명곡 <아름다운 강산>
<아름다운 강산>은 이후 김정미, 신중현과 엽전들 등 많은 신중현사단 가수의 음반에 재 수록되며 대중 속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1975년 대마초 파동으로 활동이 금지된 신중현과 운명을 함께했다. 이 앨범은 1972년 10월 발매한 초반이 조기 매진되면서 이듬해인 1973년에 여러 차례 추가 제작되었을 정도의 히트앨범이다. 하지만 판매금지처분이 내려지면서 상당량이 폐기되었고 공개적으로 들을 수 없는 불온(?)한 음반으로 낙인찍히면서 이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희귀 고가음반으로 둔갑했다.
해금 조치 후 컴백한 신중현은 1980년 신중현과 뮤직파워를 결성해 <아름다운 강산>을 다시 불렀다. 이후 이 노래는 이문세, 노브레인 등 수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했다. 특히 1988년 이선희가 부른 버전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국민가요로 사랑받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동안 신중현 음반들이 무수하게 재 발매된 점을 생각하면 신중현 음악의 정점인 이 앨범의 재발매는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소량의 한정반이긴 해도 180g 중량반으로 제작된 LP와 CD까지 동시에 이뤄진 이 앨범의 재발매는 그 자체만으로 큰 의미가 있다.
글 /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