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뛰어난 두 연주가가 만들어낸 대작(大作), 우리 시대를 대변하는 역사에 길이 남을 명음반!" - Hot Club de France
빌보드 클래식 챠트 11년 랭크 진기록의 주인공 클로드 볼링과 프랑스 재즈를 대표하는 재즈바이올린의 거장 스테판 그라펠리가 빚어낸 전무후무한 명품! <First Class>
프랑스의 재즈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인 클로드 볼링은 재즈의 산뜻하고 지적인 요소와 엄격한 클래식의 형식을 혼합, ‘클래시컬 크로스오버’라는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만들어내 크로스오버의 아버지로 불린다. 클로드 볼링이 파트너로 맞이한 재즈바이올린의 거장 스테판 그라펠리는 장고 라인하르트와 함께 '미국의 음악'으로 인식되어온 재즈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미국에 유럽 재즈를 역수출한 최초의 아티스트. 스윙과 빅밴드의 수호자였으며 바이올린을 재즈의 메인악기로 승격시켜 '재즈 바이올린=그라펠리'라는 등식을 만들어낸 재즈계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예후디 메뉴인이 가장 존경하는 바이올리니스트로도 잘 알려져 있다.
<First Class>는 이러한 프랑스 재즈의 두 거장의 기여로 탄생했다. 그라펠리는 제1세대 재즈거장이고 볼링은 그 다음 세대로 미들 재즈의 상징적인 인물. 새로운 유행을 정착시키는 걸출한 두 아티스트의 이 녹음은 방대한 디스코그래피의 엄청난 간격을 이어 붙이고 있다. 블루스, 재즈, 빅밴드, 부기우기를 바탕으로 역사적인 재즈 레파토리 14곡을 엄선했는데, 흥겨운 빅밴드 사운드로 되살아난 스테판 그라펠리와 장고 라인하르트의 즉흥곡 <Minor Swing>을 비롯해 빌리 홀리데이와 루이 암스트롱이 즐겨불렀던 <Do You Know What It Means To Miss New Orleans>, 스테판 그라펠리의 스탠더드곡 <Blue Skies>, 조지 거쉰의 <Nice Work If You Can Get It> 등 귀에 익은 재즈 명곡들을 16인조 빅밴드 구성으로 만날 수 있다.
재즈와 크로스오버 음악계의 ‘first class’로 손꼽히는 두 거장의 흥겨운 빅밴드 스윙을 듣고 있노라면 어깨를 들썩이지 않을 수 없다.
시인 랭스턴 휴즈(Langston Hughes)는 20년대 중반에 유명 음악 잡지인〈블랙 리바이벌>에 기고한 미국의 흑인 아티스트에 대한 기사에서 재치있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이국적인 기사를 다루지 않으면 곧바로 잡지의 판매량은 감소할 것이다.”재즈라는 장르는 프랑스에 소개되자마자 곧 대중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으며 이는 단순한 호기심 차원의 관심이 아니었다. 그러한 열광이 지속됨에 따라 이 아프로-아메리칸 뮤직(미국 흑인 음악)은 정당한 위치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한껏 날개를 단 창작의 물결이 뒤를 이었다. 매우 빠르게 이국성이라는 이 눈부신 양상은 미국문명의 언어(상징)인 문화적이고 미적인 내용의 우월함을 인정했다. 다시 말해서 재즈라는 변화무쌍한 예술의 한 쟝르가 유럽에서는 갖은 찬사와 경외의 대상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의 고향인 미국에서는 한낱 흥미의 대상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엄청난 숫자의 신흥 재즈 애호가들은 재즈라는 장르에 일종의 특혜를 부여했다. 몇몇 젊은 뮤지션들은 자신만의 길을 발견했다. 도심과는 멀리 떨어진 문화적 소외지역과 길거리 문화의 쟝르인 재즈가 그들의 표현 양식이자 언어 그리고 그들의 희망이 되어 갔다. 다양성과 뿌리깊은 현대성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프랑스 재즈는 바로 이런 접합점에서 탄생했다. 그후, 휴궤스 파나시(Hugues Panassie), 샤를 델라우나이(Charles Delaunay) 그리고 〈핫 클럽 드 프랑스(Hot Club de France)〉, <재즈 핫 매거진 (Jazz Hot magazine)〉을 선두로 끊임없이 그 세대의 흐름과 스타일이 교체되었다. 이들은 모두 할렘과 파리의 마이너 스윙을 서로 엮음에 있어 두드러진 이점을 지니고 있었다. 가론 강(Garonne), 루아르 강(Loire), 센 강(Seine) 그리고 론 강(Rhone)이 모두 미시시피 강의 지류로 합쳐졌다. 재즈는 곧 매콤한 마늘 향을, 블루스는 독특한 백리향을 더했으며 북서풍의 푸르름아래 시카고 스타일의 재즈는 프랑스에서 새롭게 태어났다. 프랑스는 세계 곳곳의 뮤지션들에게 문호를 열어 젖혔다.
이 앨범은 이러한 프랑스 재즈의 두 거장의 기여로 탄생되었다. 이들 두 인물은 세대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고전 재즈라는 하나의 시대 흐름에 정열을 쏟고 있다. 그라펠리는 제1세대에서 유명한 두 거장중 한명이고 볼링은 그 다음 세대로 미들 재즈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새로운 유행을 정착시키는 두 명의 걸출한 아티스트의 결합을 예증하는 이 녹음은, 생각하기조차 힘들 수도 있는 방대한 디스코그래피의 엄청난 간격을 이어 붙이고 있다. 젊은 뮤지션들이 엘링턴(Ellington)/스트레이혼(Strayhorn) 혹은 파커(Parker)/길레스피(Gillespie) 콤비의 예술적 전통을 체계적으로 탐색하고 있는 반면, 라인하르트(Reinhardt)/그라펠리(Grappelli) 콤비의 레퍼토리는 여전히 미개척의 분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이 얼마나 거대한 영감의 샘인가! 게다가 이러한 시도가 그라펠리 본인에 의해 이루어졌으니, 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재즈의 태동기를 함께한 인물 중 하나인 스테판 그라펠리(Stephane Grappelli)는 그레고어스 빅 밴드(Gregor’s big band)의 피아니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로 경력을 시작했다. 하지만 1934년 핫 클럽 드 프랑스 퀸텟(Hot Club de France Quintet)이 결성된 이래, 불행히도 그라펠리는 빅 밴드와 녹음할 기회를 전혀 가지지 못했다 마치 그라펠리 본인이 빅 밴드와의 녹음을 포기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의 열악한 경제 상황은 재즈계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앨범의 위험 부담이 적다는 이유로 소규모 앙상블이 선호되었기 때문이다.
1991년 12월 3일과 4일, 그라펠리는 마침내 불로뉴(Boulogne/s/Seine)에 있는 아티스틱 팰리스 스튜디오(Artistic Palace studio)에 들어가 빅밴드와 녹음을 하게된다. 클로드 볼링도 가세했다. 볼링은 자신이 선도자이자 거장이라고 인정한 인물과의 앨범 작업을 언제나 꿈꿔왔다고 한다. 그들이 서로에게 갖는 기대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이번 앨범에서 세 가지 역할(피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