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ude Bolling
크로스오버의 아버지
프랑스의 그래미상이라고 할 수 있는 그랑프리 디스크를 여섯 차례나 수상했다. 미국의 그래미 상에도 여러번 노미네이트 되었다. 1930년, 프랑스 칸느에서 출생한 볼링은 14세 때 이미 재즈 피아노의 신동으로 알려졌고 곧 직업연주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화성이나 대위법에 관해서 정식으로 배우긴 했지만 대부분의 음악지식은 레코드 감상을 통해 스스로 습득했다. 18세 때에 자신의 딕시랜드 그룹과 첫 레코딩을 했으며, 이후 유럽의 유명한 재즈뮤지션으로 성장하였다. 1950년대와 60년대에 유럽으로 귀화한 많은 재즈 뮤지션들과의 만남을 통해 재즈의 깊이에 더욱 빠져들어 갔다. 듀크 엘링턴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이는 후에 그가 크로스오버 작곡가로서의 기틀을 제공하였다. 내한 공연시 어느 인터뷰에서 '크로스오버의 창시자'라는 말에 볼링은 자신이 아니라 듀크 엘링톤이라고 잘라 말하기도 했다. 그는 백편이 넘는 TV 및 영화음악을 썼는데, '볼사리노', '루이지아나' 등이 대표작이다. 팝, 재즈 그리고 클래식 스타일을 혼합시킨 독창적인 작품을 통해 널리 알려졌을 뿐더러, 랙타임, 부기우기, 블루스, 스탠다드 팝 분야의 레코드도 남겼다. 자신의 빅 밴드를 이끌고 재즈 스탠더드를 연주하기도 한다.
Stephane Grappelli 스테판 그라펠리
- 프랑스 재즈 전체를 대표하는 재즈 바이올린의 유일무이한 거장
- ‘재즈 바이올린 = 그라펠리’ 공식 만든 입지전적 인물
- 예후디 메뉴인이 가장 존경하는 바이올리니스트로도 알려져
1908년 1월 26일 파리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철학교수였다. 이사도라던컨예술학교와 파리예술원에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배웠으나 1920년대의 대공항으로 15세 때부터 생존을 위해 파리의 클럽과 극장을 전전했다. 19세 때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과 조 베누티(Joe Venuti)의 협연을 보고 감동받고, 그때부터 재즈와 바이올린을 자신이 나아갈 방향으로 선택했다. 벨기에 출신의 유명한 집시 기타리스트 장고 라인하르트(Django Reinhardt)와 함께 1934년 '유럽 재즈의 효시'라고 부르는 핫클럽5중주단(Quintette du Hot Club de France)을 조직했다. 클래식 현악3중주를 변형시킨 3대의 기타, 1대의 베이스와 바이올린이라는 이채로운 형식을 취한 이 그룹은 곧 프랑스와 유럽, 미국에 영향을 끼쳤고, 그의 우아하고 기교 많은 바이올린 연주와 장고 라인하르트의 드라마틱한 기타 연주는 유럽 전역을 재즈 열풍으로 몰아넣었다. 1969년에는 미국에 데뷔하여 새로운 그룹을 조직, 리코딩과 연주회를 가졌으며,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여 1970∼1980년대에 그의 명성은 절정에 달했다. 재즈 피아니스트 오스카 피터슨(Oscar Peterson), 클래식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인(Yehudi Menuhin) 등과 함께 꾸준히 리코딩 활동을 했으며, 1988년에는 카네기홀에서 줄리아드현악4중주단, 첼로 연주자 요요마와 함께 협연했다. 이후 건강이 나빠져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면서도 1990년대 중반까지 연주활동을 계속했다.
1997년 9월 엘리제궁에서 프랑스 대통령으로부터 프랑스 명예시민의 작위를 받았다. 그해 12월 탈장 수술 후유증으로 파리에서 사망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