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피아노 음악 사상 가장 독창적인 피아니스트인 글렌 굴드의 미공개 라이브 . 국립 캐나다 라디오 방송(CBC)이 전격 공개하는 글렌 굴드 개인 소장 콜렉션으로 골드베르크 전곡, 파르티타 5번을 포함한 바흐 연주만 2장으로 모았다. 굴드의 1950년대에서 1960년의 청년기를 관통하는 연주를 담은 이 음원은 캐나다CBC 방송국을 통해 모두 공중파로 방송됐던 것들로, 캐나다 국립 도서관(National Library of Canada)에 보관되어 있던 것을 최신 복각 기술로 리마스터링해 음반으로 처음 공개된다. 그 자료적 희귀성 뿐만아니라 청년 굴드의 예술에 대한 격정등 그의 생생한 참모습을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다.
글렌 굴드 <골드베르크 변주곡> - 윌리엄 에이드(William Aide)
무덤에서, 죽은 영혼을
연주하고 있는 것은 바흐가 아니다.
그 속에 얇은 뼈껍질만 담은 날개달린 씨앗처럼
마음이 부풀어 중력에서 자유로워진
최소한의 인간적 모습으로 다가오기전에
이미 바흐도 아니었고 단지 음악이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 중에서
로나 크로지어(Lorna Crozier)
글렌 굴드는 자신의 신화를 확대해 나가는 일을 그만 둬야한다. 그러나 오늘날 대중앞에 공개된 굴드의 네 번째 완결판이 될 이 1954년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가 최근에야 비로소 캐나다 오타와에 있는 캐나다 국립 도서관에서 선보였다. 이는 또다시 관심의 집중이 될 것이다.
굴드의 골드베르크는 물론 스스로 우상화 될 수 있는 어떤 실체를 안고 있다. 헨델의 메시아가 하나의 ‘작품’으로, 서구세계에서 모든 대중들의 집단의식을 관통하는 음악이었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면 골드베르크는 하나의 ‘연주’라는데 차이가 있다. 여러 다른 건반 연주자들도 이 곡을 탁월하게 연주, 녹음했지만 누구도 글렌 굴드만큼 대중적 상상력을 자극하지 못했고, 전자시대인 오늘날까지도 의사소통의 역할을 넘어 가장 먼 곳까지 전염시키며, 열정에 넘치던 1955년 데뷔 레코딩부터 1959년 잘즈부르크 라이브연주, 그리고 1981년의 기념비적인 마지막 연주까지, 연주자의 인생에 그 음악 자체를 정의했던 이는 아무도 없었다. 굴드의 골드베르크 첫 연주부터 마지막 연주는 굴드가 신화를 만들어가는 재료가 되었던 것이다. 자켓 커버의 구부정한 모습처럼 모든 굴드의 골드베르크 연주는 자신과 자신밖의 외부 세계의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결합시킨다. 많은 시와 소설과 연극과 영화들이 이 연주에서 비롯될 것이다. 많은 도시와 연주가들이 토론토의 신(神)의 아들이 연주한 바흐의 이 기념비적인 바흐 건반작품의 퓨전화를 비난할 수 도 있겠지만 굴드가 이 모든 연주를 계획한 이래, 글렌 굴드의 영혼은 그들 모두를 내려다 보며 기꺼이 잡변으로 일축할 것이다.
이 연주는 1954년 6월 21일, ‘저명한 연주가의 리사이틀’ 이란 프로그램으로, 국립 캐나다 방송국(Canadian Broadcasting Corporation)의 전국 네트워크를 통해서 방송된 부분을 음반으로 담았다. 역사적인 콜럼비아 마스터워크스 데뷔 녹음일로부터 불과 12개월 전으로, 굴드가 이 전곡에대한 끈기있는 집착의 시작으로 그의 음악경력을 쌓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굴드의 선생이었던 알베르토 게레로(Alberto Guerrero)의 “손은 마음의 확장이다”라는 말처럼 굴드의 손가락은 절대 실수가 없는 충실한 하인이다.(라이브 방송의 증거로 대수롭지 않은 삑소리가 있기 하지만) 찬연한 대위법적 명쾌함, 심장을 멈추게 하는 속도감등 레가토없는 그 유명한 빠른 터치가 모두 여기 담겨있다. 그렇다면 두 연주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많은 피아노 연주가 그 안에 흐릅니다”, 중년의 굴드는 1955년 판의 변주곡 25번을 언급했다. 이 똑같은 재치있는 언사가 굴드의 1954년 골드베르크 아리아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 칸타빌레 호버링, 음정팽창 그리고 카덴셜연장은 굴드가 실제로 완다 란도프스카의 연주를 듣고 오히려 그녀방식대로의 바흐 해석 지점까지 도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확실히, 마지막의 6개 마디는 ‘휴일의 시작’을 선언하듯 일부러 강음 처리되고 있다. 1955년 버전은 모든 것이 거꾸로다. 아리아는 경쾌하고, 끝가지 망성임이 없이, 단아한 장식과 마치 덤비듯 6마디를 해치운다. 굴드의 아리아 전략들은 결코 음악에 속박될 수 없을 것이다. 왜냐면 굴드는 주요 흐름의 어느 표기하나도 조소하지 않으며, 확연한 연주를 펼친다. 만약 굴드가 실험적이 아니었다면 그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을 것이다.
골드베르크 30개의 변주곡은 3개씩 10개의 그룹으로 구성됐다: 각 그룹의 세 번째가 거의 항상 캐논이며, 다른 두 변주는 상대적으로 화려한 변주이며 다른 하나는 성격변주다. 손에 제트 추진날개를 단듯한 기교를 만끽하며, 굴드는 두 버전 모두에서 성격변주들을 빛 보다 더 빠른 속주로, 까다롭지만 명료한 해석을 하고 있다. 변주곡 5번과 20번의 1955년판 연주는 또 다른 속도의 한계를 느끼게 해준다 (토론토보다 뉴욕에서 건번 동작이 더 가벼웠나?). 캐논중에서는 변주곡 12번이 아주 강한 대조를 보여준다. 데뷔버전은 춤 출때의 발동작처럼 경쾌함으로 연주하고 있으며(음악에 귀기울이지 않고-저음에 맞춰 움직이는), 반면 1954년 연주는 좀더 느리고 부드럽다. 사실 1954년 연주의 6개의 변주곡들 각각의 우아한 양상은 보다 중용적 템포감을 띤다. 반면 1955년작에는 시적이며 빠른 외향적 손놀림처리가 명확하다.
골드베르크의 성격변주곡들은 아리아, 푸게타, 무곡 형식으로 채워져 있다. 이곡의 해석자들은 복합적 선택을 놓고 고민한다: 7번이 무곡인지, 살타렐로풍인지 아니면 시실리아노풍인지? 19번이 뮤젯인지, 코렌테인지 란도프스카가 해석한 것처럼 바칼롤레 인지? 그런데 굴드가 말한 것처럼 그는 고민하지 않았다. 여기 음반은 편집된 상태가 아닌 연주 그대로를 담아놓은 앨범이기 때문에, 스튜디오내의 콘트롤 부스속으로 몇 음정이 사라져갈 정도의 신랄함을 띠고 있다. 예를 들어 굴드가 여기 연주한 변주곡 13은 대 성악가처럼 숨이 차오를 정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