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經)은 부처님의 말씀이며, 율(律)이란 불교도의 생활규범이며, 논(論)은 경과 율에 대한 조사들의 논문입니다.
대장경은 고려시대에 두 차례에 걸쳐 국가 사업으로 간행되었습니다. 먼저 간행된 구판(舊版) 대장경은 1011년에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거란의 침공을 물리치려는 발원에서 비롯된 것으로써 1087년까지 무려 칠십육년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중국의 정경에 견주어 그 무렵으로서는 내용이 가장 완벽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팔공산(八公山) 부인사(符仁寺)에 봉인된 이 구판 대장경은 고종 19년인 1232년에 몽고군의 방화로 그만 불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오년 뒤인 1236년에 다시 본격적으로 대장경 간행 불사를 추진하여 1251년에 그 완성을 보게 되니, 십육년에 걸친 이 큰 불사의 결실이 바로 지금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는 고려대장경입니다.
완성된 고려대장경은 처음에는 강화도에 모셨으나 왜구의 노략질이 심해져서 서울의 지천사(支天寺)에 옮겼다가 그 뒤 조선시대 태조임금 떄인 1398년에 해인사로 다시 옮겨 모신 것입니다.
고려대장경을 흔히 팔만대장경이라고 하는 까닭은, 대장경의 장경판수가 팔만여장에 이르는 데에서 비롯되기도 했을 터이지만 한편으로는 불교에서 아주 많은 것을 가르킬 때 팔만사천이라는 숫자를 쓰는 용례대로, 가없이 많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팔만사천 법문이라고 하는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팔만대장경의 첫번째 음악은 팔만대장경이 하나의 종교적 의미를 초월한 세계인류의 문화유산이라는 점에 기인하여 서양의 소리와 우리의 소리가 함께 어우러지는 음악을 작곡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각 장의 영문 제목번역은 서양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서구의 기독교 신앙과 북구신화에서 나오는 상징어를 사용했습니다.
98년4월 김수철
세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 가없이 많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국난극복이라는 민족의 염원과 의지로 만들어진 팔만대장경이 음악 으로 표현되었다. 팔만대장경의 첫 번째 음악은 팔만대장경이 하나의 종교적 의미를 초월한 세계인 류의 문화유산으로 전 세계인이 함께 들을 수 있도록 우리의 소리와 서양의 소리가 함께 어우러지 는 음악으로 작곡되었다. 전체적으로 신시사이저를 이용한 서양의 소리와 교회음악 연주 때 사용되는 합시코드, 중국악기 '얼후', 그리고 우리 전통악기 피리, 아쟁, 태평소, 아쟁, 대금 등의 소리를 조화시켰다. - 김수철 공식 홈페이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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