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요계의 진정한 뮤지션 김수철, 그는 1978년 광운대학교 재학시절 '작은 거인'을 결성하면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한다.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파워플한 목소리와 시대의 조류를 읽는 그의 눈은 보컬은 물론이거니와 작곡, 작사에서도 그 빛을 발하면서 자신 스스로를 국내 가요계의 당당한 샛별로 등장한다.
대학시절 발표한 ‘작은 거인’의 음반은 특별한 홍보도 없이 조용히 대학가와 당시 문화의 한 부분을 차지했던 다운타운 음악다방으로 조용히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일곱 빛깔 무지개”는 그 당시의 상당한 히트곡. 이후 솔로로 전향한 그는 “못 다 핀 꽃 한송이”, “내일”, “별리” 등을 발표하면서 싱어 송 라이터로서의 인기는 물론이거니와 음악적으로도 서서히 인정 받기 시작한다. 이런 1984년부터 86년까지 그의 작품 활동은 각종 방송국의 챠트를 휩쓰는 최고의 인기를 보여줌은 물론이고 음악적 성과 역시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물론 그 사이에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영화 <고래사냥> 작업은 김수철에게 있어 빼 놓을 수 없는 작업 중 하나. 영화 음악 데뷔작인 <고래사냥>은 준비기간이 겨우 3일 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15곡을 만들어야 하는 여건이었지만 그 속에서도 발표된 음악은 당시 영화의 인기만큼이나 각광 받는 음악으로 남았으며 그의 천재성에 대한 또 하나의 증거로 남아있다. <고래사냥>은 음악을 맡음과 동시에 함께 출연까지 해, 연기자로서의 능력을 인정받는 계기를 주기도 했다. 영화 <고래사냥>의 음악작업은 그에게 있어 김수철 개인의 영화음악사를 따로 쓰게 할 만큼 많은 영화음악 활동의 시작임을 알리는 작업의 시작이 된다. 이런 영화 속의 음악 역시 그의 개성을 아낌없이 보여주며. '국악을 중심으로 한 양악의 조화'라는 그의 장기는 영화와 맞물려 그 진가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이련 일련의 음악활동과 함께 1986년 아시안 게임 휘날레 음악, 1988년 올림픽 게임 전야제 음악 등 행사를 위한 창작곡을 맡아 세계속에 우리 음악을 담는데 주력했으며, 방송 타이틀 음악, 시그널 음악 등, 음악에 관한 장르를 나누기가 힘들 정도로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각종 KBS 미니시리즈 '형'의 타이틀 음악, 영화 <서편제> <태백산맥> 등의 음악을 통해 그의 깊이를 표현하는 우리 음악의 진수는 영화를 더욱 빛내면서 그의 이름을 우리 문화 전반에 침투시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런 우리 음악의 세계화를 느낄 수 있는 일련의 과정은 급기야 1997년에는 이런 그의 진가를 대내외적으로 평가를 받는 결실이라도 되는 듯 그만의 체취가 느껴지는 앨범 ‘팔만대장경’을 발표하기에 이르게 된다. 이 시기 김수철의 활동은 장르파괴에 음악적 자기정신의 확립이라는 놀라운 음악적 성숙과 함께 많은 음악인들과 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된다. 이는 가요 속에서 우리 음률을 느끼게 한다는 것인데 그가 보여준 이러한 노력과 성과는 여느 국악을 연구하는 학자보다 못하다 할 수 없는 최고의 경지임을 알게한다.
결혼 이후 더욱 안정된 음악적 성숙을 보여주며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김수철은 어느 부분에 국한된 음악활동을 뛰어 넘어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활동하고 있으며, 이런 그의 끊임없는 도전과 실험은 한국가요계에 찾아보기 힘든 독자성과 힘을 느끼게 한다. 손에 꼽기가 힘이 드는 다작 속에서도 새로운 모습을 찾기 위해 고뇌하고 노력하는 그의 음악은 가수라는 칭호보다 뮤지션이라는 칭호를 자연스럽게 불러올 만큼 위대하다.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김수철은 진정 우리 가요계의 거인으로 불릴만한 가수이자 음악인 임에 틀림이 없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