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교과서에서 이런 구절을 본 기억이 있다. 육사의 시에 대한 해설이었던 것 같은데 대충 뉘앙스가 이랬다. '이런 작가들이 있음으로 해서 일제 치하에서도 우리 문학의 빛이 꺼지지 않고 지켜질 수 있었다. 아울러 친일 작가들의 (그 당시 그렇게 했던 것에 대한) 변명에 우리가 준엄하게 꾸짖을 수 있는 비판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음악을 들을 때도 이 문장이 환기시키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갖게 되는 순간들이 더러 있다. 80년대 중반부.....
1980년대 초반, 음악계의 기존 행로를 벗어나 새로운 음악을 꿈꾸던 젊은이들이 있었다. 조동진으로 대변되는 차세대 포크의 움직임과 맞물려 있었지만 이들은 소문으로만 전해지던 외국의 음악을 들으며 “우리도 뭔가 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다. 일부는 재즈가 대안일 것이라며 비행기에 올랐고, 다른 이들은 그 암울한 시대의 척박한 땅에 남아 꿈을 키웠다. 그러던 86년 말, ‘어떤날’이 등장했고, 역사가 됐다. 조동익이 없었다면 한국의 음악은, 지금 우리의 음악 듣기는 어땠을까. 앞만 보고 달려가다가 숨을 헐떡이며 자리에 주저앉아 저녁놀을 마주하고 싶어졌을 때, 그의 음악이 없었다면 저녁놀은 언제나 먹구름 일색이었을 게다.
단지 ‘어떤날’이나 그가 남긴 몇 안되는 앨범들이 아니더라도, 그의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