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결혼의, 그 가깝고도 먼 그대 사이를 오가는 대담한 멜로디, <결혼은, 미친 짓이다> 사운드트랙
과연 결혼이 미친 짓일까? 화두가 너무 단정적이라 순간 당혹스러워진다. 그렇다면 왜 우리 가운데 상당수는 그 미친 짓을 그토록 소망하며 열광하는 것일까? 성스럽다고 교육받아온 결혼.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 가운데 이런 환상으로 결혼하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이 영화는 바로 그런 젊은 세대들의 의식과 결혼제도의 위선, 허위를 가볍게 풍자하고 있다. 사랑의 완성이니, 영혼의 결합이니 하는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됐던 결혼을 살짝 비틀어보자는 것. 그럴 때 결혼제도에 관한 획일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다양한 공감대를 얻어낼 수 있지 않을까?
2000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이만교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작품. 귀에 착착 감겨드는 솔직하고 적나라한 대사, 경쾌한 장면 전환, 그리고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요리하는 작가의 솜씨 덕분인지 소설책 자체가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덕분에 소설에서 스크린으로 그토록 빨리 공간 이동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결혼에 대한 이 불온한 외침에 직접 뛰어든 감독은 바로 데뷔작인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 이후 거의 10년 동안 침묵했던 유하 감독. 그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일상적이면서 판타지로 포장돼 있는 결혼 제도를 색다른 시각으로 공론화시키고 싶다"고. 그래서 "우리시대 결혼에 대해 무겁게든 가볍게든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특히 이 영화가 화제를 모았던 점. 도발적인 느낌의 가수 엄정화가 주인공으로 내정됐다는 사실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아주 오랜만에 가수에서 영화배우로 설레이듯 복귀하고 있고, 느낌좋은 배우 감우성은 데뷔 11년만에 처음으로 스크린에 노크하며 이 특별한 사랑에 빛을 더해주고 있다. 여기서 엄정화는 결혼한 다음에 바람피워도 남편에겐 절대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당돌한 주인공 연희 역으로, 그리고 감우성은 결혼이란 제도에 회의를 갖고 있는 냉소적인 남자 준영 역으로 출연해 사회적 관습에서 일탈한 연인들의 풍경을 속도감 있게 펼쳐내고 있다. 과연 그들은 결혼이란 제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을까?
유하 감독은 데뷔작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에 가야한다>에서 역시 영화음악에 처음 도전하는 뮤지션 신해철과 파트너를 했었다. 그런 그가 이 두 번째 작품에서도 김준석이라는 작곡가와 만나 설레는 첫인사를 나누고 있다. 그만큼 이 영화의 음악은 작곡가 김준석에게 있어 스크린에의 첫 입맞춤이자 새로운 도전이 된다. 김준석은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의 영화음악 작곡가인 조성우와 함께 이미지와 음악의 함수관계를 고민했던 인물. 그래서일까? 그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일상의 풍경 속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의 그 미려한 체취를 읊었던 조성우의 음악과 참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전체적으로 사려깊고 따뜻한 그 느낌이.
사실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음악이 언제 스쳤을까 싶게 이미지 속에 깊게 머물러있다. 그리고 들릴락 말락 흩어지는 선율에서 문득 쓸쓸함이 묻어난다. 그만큼 사운드트랙만 들어서는 제목에서 풍기는 불온한 상상력도, 배우 엄정화에서 묻어나는 도발적인 느낌도 찾을 수 없다. 한없이 낮고 서정적인 톤으로 일상의 소소한 풍경들을 읊고 있다. 사랑, 그리고 결혼. 순간 겹쳐지다가도 한없이 소원해지는 이 두 말의 의미항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면서 문득 사색의 여백을 던져주는 것이다. 특히 근대 클래식 기타의 아버지로 명명되는 스페인 출신의 작곡가인 타레가의 Sueno, 그리고 영화의 예고편 필름에 쓰여 더욱 낯익은 라센(Larsen)의 Someone Like Me를 제외하고 모두 다 김준석이 펼쳐낸 빛깔고운 영화음악들. 그렇다면 사운드트랙은 어떻게 구성돼 있을까?
우선 앨범의 포문을 열고 있는 곡은 영화의 주제가로 만들어진 이주원의 '내 안의 너를 보며'. 김준석이 작곡과 편곡을, 그리고 "...널 보내는 내 아픔을 너는 아니/ 잊지못할 흔적만 남아/ 그냥 이대로 네 뒷모습/ 바라보며 웃을꺼야 잊을 수 없으니까..."처럼 문득 영화속 준영의 아픔이 묻어나는 노랫말은 가수 이주원이 직접 쓴 곡. 특유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중간에 들려오는 하모니카의 낮은 울림처럼 행복했던 순간의 아련한 추억이, 어쩔 수 없이 돌아서는 그리움이 진하게 베어 나오는 곡. 더불어 이 영화의 메인 테마가 되는 Shopping은 기타와 바이올린, 그리고 아코디온까지 더해져 더욱 익살스럽고 가볍게 사랑과 결혼에 관한 뿌리깊은 고정관념에 시비를 걸고 있고, 화창한 봄날의 자전거 풍경처럼 솔직하고 투명했던 두 사람의 데이트가 연상되는 Date, 이어 들리는 준영의 Theme에선 흔들리는 준영의 심정이 펼쳐진다. 평생 거짓말하는 게 두려워 결혼을 거부했던 준영, 하지만 확고했던 그의 신념에 문득 사랑이 깃들면서 모든 게 불확실해지고 만다. 그만큼 '준영의 테마'로 명명된 이 애틋한 속삭임에선 확고했던 신념이 무너지고 난 뒤의 쓸쓸함을 느낄 수 있다. 역시 같은 톤으로 사랑과 결혼의 갈림길을 읊은 기타연주 '선택', 마치 신혼부부처럼 옥탑방에서의 아기자기한 풍경과 함께 펼쳐지던 '주말부부', 그리고 이어지는 피아노의 맑은 공명인 '따뜻한 어느 오후'의 풍경과 '앨범', 그리고 엔딩 테마인 '면도'... 왜 이렇게 따뜻할까? 왜 이렇게 가슴 아릴까? 김준석의 음악은 영화와는 전혀 다른 톤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현악의 섬세하고도 미려한 울림에 이국적인 터치를 가미해 독특한 애수를 증폭시키고 있다. 그의 영화음악에서 들리는 아코디온 소리에 문득 세느 강변의 낭만이 떠오르지 않는가? 확실히 첫 작업에서부터 김준석은 자신의 향기를 드러낸다. 아직은 낯설지만 곧 친숙해질 것 같은 느낌. 안이하고 획일적인 영화음악을 거부한 그의 특별한 보폭을 더욱 기대해볼 따름이다.
[자료 : 드림비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