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희망'을 향한, 가슴 벅찬 진군가
'플래툰' '7월 4일생' 'JFK' 등으로 유명한 올리버 스톤 감독이 알렉산더 대왕의 일대기를 바탕으로 자신의 대작 영화 '알렉산더'를 만들기로 결심했을 때, 스톤에겐 그 음악을 맡길 사람으로 오직 한 명의 작곡가만이 떠올랐다. 다름아닌 그리스의 영화음악작곡가 반젤리스다. 자신이 맡는 영화음악 작업에 대해 몹시도 까다로운 선택 기준을 갖고 있는 반젤리스였지만, 그 또한 올리버 스톤의 '알렉산더'라면 자연스럽게 맡을 수 있다고 화답했다. 이리하여 아카데미 수상에 빛나는 반젤리스가, 마치 명검을 벼려 내듯 그리스의 영웅 알렉산더 대왕의 전설적인 이야기를 영화화한 '알렉산더'의 음악을 만들게 됐다.
영화 '알렉산더'는 역사상 가장 빛나고 영향력있는 지도자 중 하나인 알렉산더 대왕콜린 파렐 분의 실화에 근거하고 있다. 25세의 나이에 당시 '세계'라고 알려진 영토의 90퍼센트를 정복한 사람. 알렉산더는 그의 무적의 군대를 이끌고 2만2천마일에 달하는 땅덩이를 단지 8년 만에 정복한다. 32세의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을 때 즈음에는 이전에는 누구도 보지 못했던 세계를 이룩했다.
제작비 2억 4000만 달러를 들이고 1만여 명의 엑스트라, 3년간의 제작기간을 들여 만든 이 영화는 바빌론을 비롯해 알렉산더가 거쳐간 각 도시들을 웅장하고도 세밀하게 묘사했다. 이 영화는 그의 어머니 올림피아스안젤리나 졸리, 아버지 필립발 킬머, 그의 평생 친구이자 전장의 지휘자 헤파이스티온자레드 레토, 야심 많고 아름다운 페르시아인 아내 록사네로자리오 도슨, 그리고 신뢰해 마지않는 프톨레마이우스앤소니 홉킨스, 엘리엇 코원 등 여러 인물들과의 관계를 통해 알렉산더의 일생을 대담하고 솔직하게 들여다본다. 오늘날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크리스트교 시대 이전B.C의 사회적 관습과 도덕이 모습을 드러낸다. 영화는 알렉산더 당대의 비견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믿어지지 않는 잔인성, 원대한 이상과 치명적인 배신이 2시간 30분의 러닝타임을 빼곡이 채운다.
대작을 위해, 준비된 음악가 반젤리스
반젤리스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음악인으로서의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다. 나중에 파리와 런던으로 이주해 40편이 넘는 음반을 발매할 때마다 찬사를 받았다.
1981년 휴 허드슨 감독의 영화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에서 선보였던 반젤리스의 음악은 현대에서 가장 영향력있고 가장 널리 언급되는 필름 스코어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국제적인 성공이랄 수 있는 이 수상은 그의 입지를 바꾸었다. 저예산 독립영화에서 블록버스터의 OST를 담당하게 된 것. 이후 '블레이드 러너' '미싱' '1492 콜럼버스' 영화음악들은 그의 수많은 컨셉트 앨범들 및 다양한 음악 프로젝트들과 더불어 계속해서 세계적인 컬트 애호가들의 올타임 클래식이자 수집 대상이 되어 왔다. 반젤리스트 또한 코스타 가브라스의 '미싱' 로저 도날드슨의 '바운티' 로만 폴란스키의 '비터 문', 그리고 야니스 스마라그디스의 'CAVAFY' 등의 영화음악을 담당했다.
한편, 언더그라운드 록 애호가들에게 반젤리스는 명반 'HEAVEN AND HELL'의 심오한 음악성을 필두로 1970년대 중반 이후를 장식했던 'SPIRAL' 'OPERA SAUVAGE' 'CHINA' 등 일련의 작품들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영화음악 역시 그는 세계적으로 각광받기 이전부터 영화팬들이 존경하는 감독들 프레데릭 로시프의 '동물의 묵시록L'APOCALYPSE DES ANIMAUX, 구라하라 코레요시의 '남극ANTARCTICA', 자크 쿠스토 감독의 'WE CANNOT PERMIT', 그리고 칼 세이건 감독의 TV 시리즈 '코스모스' 등에서 OST 작업도 담당했다.
반젤리스는 런던 코벤트가든의 로열 발레단을 위해 두 편의 발레음악과 이레네 파파스가 출연한 4편의 고대 그리스 연극을 위한 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다. 시드니 올림픽과 아테네 올림픽의 공식음악을 작곡했던 그는 지난 2002년에는 동양적인 색채를 가미해 특유의 신비롭고 웅장함을 내세운 한일 월드컵 공식 앨범도 내놓았는데, 이 앨범은 일본음반산업협회로부터 'SONG OF THE YEAR' 상을 수상했다.
2001년 반젤리스는 소니 클래시컬과 합작으로 'MYTHODEA'라는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NASA의 화성 탐사를 기념해, 그곳에 함께 가져가기 위한 음악을 연주하는 뜻깊은 행사. 이 프로젝트에서 반젤리스는 직접 아테네에서 자신이 작곡한 합창 교향곡 'MYTHODEA'를 연주했다. 120명의 합창단과 풀 편성의 오케스트라가 포진한 무대 위에는 소프라노 캐슬린 배틀과 제시 노먼이 올라 반젤리스의 거대한 우주적 스케일에 아름답고 엄숙한 인성을 보탰다. 이 실황은 음반과 DVD로 나와 있다.
클래시컬한 웅장함과 휴머니즘의 조화
"나는 언제나 올리버 스톤의 영화에 경의를 표해 왔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리스인으로서 당연히 알렉산더 대왕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있죠. 그와 무엇인가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생각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동서양의 음악을 아울러 온 음악적 내공의 소유자 반젤리스는 이번 '알렉산더' 사운드트랙에서는 그야말로 자신의 DNA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가장 그리스다우면서도 가장 반젤리스다운 OST 걸작이 탄생한 것이다.
반젤리스는 이번 OST에서 천군 만마가 진격하는 듯한 웅장한 스케일의 음악에서 한 인간의 러브스토리에 울렁이는 가슴까지를 포함한 멜로디를 구사하고 있다. 스펙터클한 영화에서 서사시적인 스케일과 휴머니즘 넘치는 드라마 모두를 포착한, 원근법 있는 음악적 장치를 그는 창조해 냈다. 격찬을 받았던 전작인 '1492 콜럼버스'를 거뜬히 능가한다.
신시사이저 스트링과 브라스 섹션이 그려내는 반젤리스 특유의, 끝이 둥글게 다가오는 전자 음악은 웅장무쌍하다. 거기에 첨가되는 아련한 합창부는 텅스텐 빛 신시사이저 음에 인간적인 부드러움을 부여한다. 음악만 들어도 눈앞이 탁 트인다. 반젤리스 음악 특유의 너른 조망은, 마치 '무적의 부대' 마케도니아 군이 지축을 뒤흔들며 행진하는 모습을 비행기에서 바라본 장면인 양 생생하게 그려낸다.
올리버 스톤 감독은 자신의 이번 영화에 대해 "희망이 없는 시대에 보내는 메시지"라고 말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