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은 레모니 스니켓이라는 필명을 가진 어린이용 판타지 소설 작가인 다니엘 핸들러의 동명의 시리즈를 영화로 옮긴 것이다. 모두 13권으로 완성될 이 시리즈는 현재 11권까지 출판된 상태인데, 1권부터 3권까지인 <The Bad Beginning>, <The Reptile Room>, <The Wide Window>의 내용이 이번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작가인 다니엘 핸들러는 무척 괴짜인데다 비밀에 가려진 인물로 그의 소설만큼이나 신비스러운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이 시리즈는 미국에서만 360만부가 판매됐고, 전 세계적으로는 2,700만부 이상 판매된 슈퍼 베스트셀러이다. 때문에 그의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이 있은 뒤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관심을 보였다. 또한 짐 캐리가 올라프 백작 역할을 맡아 1인 3역의 놀라운 변신을 보여줄 거라는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더욱 큰 기대를 얻고 있다.
이 이야기는 화재로 하루아침에 부모를 읽고 고아가 된 보들레르 가의 세 남매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들은 성인이 되기 전까지 유산을 한 푼도 사용할 수 없는데다, 변호사는 세 남매를 먼 친척인 올라프 백작에게 맡긴다. 세 아이의 후견인이 된 올라프 백작은 하지만 아이들보다는 그들의 돈에 더 관심이 많은 악당이다. 그는 아이들을 없애고 자신이 그 재산을 챙기려고 하지만 이를 눈치 챈 아이들은 올라프 백작의 음모에서 벗어나 다른 후견인들을 찾아간다. 그런데 이 끈질긴 악당은 매번 다른 모습으로 변장을 하고는 아이들이 있는 곳을 찾아간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그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채고는 자신들의 재능을 발휘에 위기를 극복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다른 어린이용 판타지 소설과 달리 그리 밝은 분위기의 동화나 해피엔딩이 기대되는 그런 이야기는 아니다. 레모니 스니켓 자신이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다’로 끝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펴 들지 않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이 책은 불행한 사건으로 시작될뿐더러, 결말 역시 해피엔딩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하지만 ‘어두운 매력’이 넘쳐나는 그의 이야기 속에는 독특한 유머와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이 담겨있다.
토마스 뉴만
헐리우드 영화의 오랜 법칙 가운데 하나는 관객이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영화가 만들어내는 세상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것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허구의 세계에 대해 관객이 거리낌 없이 동화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일관된 내러티브와 치밀한 편집 기술, 그리고 여러 효과들이 요구된다. 그 가운데 가장 좋은 효과를 얻는 장치가 바로 영화음악이다. 이를 위해 헐리우드의 영화제작사들은 많은 돈을 들여가면서 매번 영화를 만들 때마다 새로운 음악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영화음악(스코어)에 대한 이런 투자는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돈 낭비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헐리우드가 고전 영화시대부터 지금까지 역사를 거듭하면서 체험한 경험을 통해 확신한 것은 영화음악(스코어)만큼 관객들을 영화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장치가 없다는 사실이다.
헐리우드에는 영화음악만을 작곡하는 전문적인 음악가들이 많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인 토마스 뉴만이 우리의 관심을 끈다. 그의 이름을 들어 본적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토마스 뉴만은 <아메리칸 뷰티>로 그래미상을 수상했으며 6차례나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모두 9번의 오스카상 수상과 20세기 폭스의 로고 음악을 작곡한 인물로 유명한 알프레드 뉴만의 아들이자, <토이 스토리> 시리즈에서 음악을 맡았던 랜디 뉴만의 사촌이며, <너티 프로페서> 시리즈와 <닥터 두리틀> 시리즈에서 음악을 맡은 데이빗 뉴만의 형이다. 이 외에도 그의 가족들 중에는 영화음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토마스 뉴만은 예일대에서 작곡을 전공했으며, 한때 <The Innocents>라는 록 밴드에서 키보드를 연주하기도 했다. 피아노 연주 실력이 뛰어난 그는 자신의 영화음악 속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하고, 때로는 타악기를 맡아 직접 연주하기도 한다.
사실 토마스 뉴만은 한스 짐머나 제임스 호너 같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영화음악가도, 또 대니 엘프만이나 그렘 레벨 같이 매니아들을 형성하고 있는 영화음악가도 아니다. 어쩌면 그의 이름은 그가 참여했던 영화들의 명성에 묻혀 전혀 빛을 발하지 못하는 음악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스코어를 작곡한 영화들을 살펴보면 깜짝 놀라게 된다. <니모를 찾아서>, <로드 투 퍼디션>, <에린 브로코비치>, <그린마일>, <아메리칸 뷰티>, <조 블랙의 사랑>, <래리 프린트>, <페노메논>, <업 클로즈 앤 퍼스널>, <작은 전쟁>, <쇼생크 탈출>, <여인의 향기>, <더 플레이어> 등 하나같이 우리가 잘 아는 흥행작들이다.
영화음악가로서 그는 주로 멜로드라마와 코미디 장르의 영화들에서 음악을 맡아왔으며, 잔잔하면서도 감성적인 분위기의 곡들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예를 들어, <업 클로즈 앤 퍼스널>에서 라틴 리듬을 바탕으로 들려준 로맨틱한 음악들이라든지, <여인의 향기>와 <조 블랙의 사랑>에서 들려준 감미로운 향기가 넘처나는 음악들, 그리고 <작은 아씨들>과 <쇼생크 탈출>,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작은 전쟁>에서처럼 따뜻한 인간애를 담고 있는 감동적인 음악을 만들어냈다. 이 영화들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음악은 언제나 따뜻한 감동이 넘치는 곳에 함께 한다. 그의 음악에서는 낯선 면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언제나 편안하고 친근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그의 음악과 함께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이다. 헐리우드의 영화제작사들이 선호할 만한 음악가가 아니겠는가? 음악을 통해 자신의 존재는 사라지고 오직 영화만이 남게 되는 것. 이것이 어떤 의미에서 진정한 영화음악가의 재능이자 자질이 아닐까?
그런데 판타지 어드벤처인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은 그가 지금까지 작업한 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작품이다. 때문에 그의 개성과 장점은 이번 영화음악에서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놀랄만하다.
이번 영화음악에서는 그가 지금까지 해왔던 작업들에서 보여준 섬세하고 감성적인 선율의 곡들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리듬과 음향적인 효과를 이용해 영화의 각 장면과 상황을 묘사하는 음악들이 중심을 이룬다. 본 음반의 2번째 트랙인 ‘Chez Olaf’나 7번째 트랙인 ‘An Unpleasant Incident Involving A Train’, 그리고 14번 트랙의 ‘Concerning Aunt Josephine’ 등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이런 곡들은 OST 음반을 통해 듣기 보다는 영화를 통해 듣는 것이 훨씬 생동감 넘치게 전해질 것이다.
판타지 영화인 탓에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은 영화 자체의 분위기가 팀 버튼의 <가위손>과 무척 닮아 있는데, 음악도 대니 에프만의 음악과 유사한 성격을 지닌다. 그 예가 아마도 오르골 멜로디를 이용한 3번째 트랙 ‘The Baudelaire Orphans'일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OST에서 가장 추천할 만한 곡들로 잔잔할 피아노 선율이 아름다운 ‘Resilence’, 흥겨운 리듬을 지닌 ‘The Reptile Room’, 여성 보컬들이 흥겨운 분위기로 부르는 노래인 ‘Lovely Spring’, 그리고 아름다운 선율과 서정적이고 분위기를 지닌 ‘The Letter That Never Came’ 등을 빼놓을 수 없다.
글 / 김경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