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하거나 울지 않고 우아하게 설득하는 노래.’
<Champions>, 이제 왕관을 지우고 얼굴을 바라보는 시간
왕관을 쓴 사람은 그의 얼굴보다 왕관으로 기억된다. 어떤 사람들은 왕관의 힘을 빌리고 싶어 안달하는 반면 누군가는 왕관을 다른 용도로 바라본다. 예컨대 당신은 The Specials 같은 밴드가 그 거창한 이름을 과연 왕관으로 사용했던가를 기억해낼 필요가 있다. Champions란 이름도 그와 같은, 일종의 유머다. ‘스팽글’도 사라지고 회고담만을 부를 수 있는 시간, 하지만 그마저도 ‘잊혀질까 두려워 마음을 지워버린’ 시간, 그들이 알고 있던 유머가 사라진 세상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유머다.
그래서 챔피언스의 첫 번째 음반 <Champions>에서 그 단어의 첫 인상으로부터 그들의 음악으로 향하는 당신은 계절풍과 같은 전환을 맞이한다. 마치 서정과 격정을 양 손에 올려놓고 저울질하는 이 음반은 풍문이나 짐작이 아니라 비로소 플레이 버튼을 누르는 순간이 당신의 출발점이라고 이야기한다. 국내 인디록의 입지전적인 존재인 델리스파이스와 Puredigitalsilence와 같은 전설적인 노이즈-익스페리멘틀 밴드에서 활동한, 밴드의 프론트맨 양용준의 이질적인 두 가지 경력이 가이드가 될 것이다.
Ride나 Charlatans의 초기 음반에서 목격할 수 있었던 사운드 스케이프를 담은 이 음반은 90년대 모던록이 무의미한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작품이다. 우리에게 기타 사운드의 쾌감을 알려준 직선적이고도 분열적인 기타 사운드에 겹겹이 쌓아올린 코러스와 미지의 꿈결 같은 소리들은 자연스럽게 드림팝과 같은 90년대의 유산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이는 음악이란 난데없이 솟아난 하나의 탑이 아니라 이전 세대와의 연관 속에서 쌓여진 구조물임을 깨닫게 한다. 바로 챔피언스가 자신들을 돌연변이로 위치시키기보다는 음악사의 긴 흐름 가운데 어느 지점에 놓인, 연속성을 지닌 밴드가 되기를 선택한 결과다. (이것은 또한 석기시대 밴드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다.) 물론 돌연변이가 나쁘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다만 돌연변이라는 위치를 적당히 ‘왕관’으로만 활용한 밴드들이 그 내실은 텅 비어있었던 예를 상기시켜 주고 싶을 뿐이다. <Champions>에서 챔피언스는 기꺼이 옛 유산들의 수혜자라고 공표하는 대신 사적이고 내밀한 감정들을 아주 꾹 눌러 담는다. 그리고 노래한다. 챔피언스의 섬세하고 우아한 멜로디는 그렇게 탄생한다.
“유원지”의 브릿지에서 코러스로 이어지는 멜로디의 흐름은 그들이 얼마나 팝송을 잘 알고 있는가를 짐작케 하는 예지만 본 작은 잘 만들어진 팝송의 미덕,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장황한 멜로디의 수식보다 더 설득력를 지니고 있는 여백, 멜로디 못지않게 직관적인 소리의 장점들을 간직한 노래는 좋은 팝송 그 이상의 아름다운 순간을 선사한다. 이 노래들을 듣고 있자면 ‘화창한 날에 가슴이 에려오는’ 경험이 어떤 것일지 알 것도 같다. 그 가운데에서도 “스팽글”로부터 “남하”까지의 믿을 수 없을 만큼 우아한 네 곡의 흐름에 주목하길 바란다. 잠시 다른 일은 모두 내버려 두고 음악에 집중해야 할 시간이다.
이제 그들에게 어떤 왕관을 씌우느냐 하는 것은 당신들의 손에 달렸다. 반복하지만 풍문과 짐작에 휘둘리지 말기를.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그들의 얼굴을 똑바로 보아주기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