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여는 달리기에서 새벽 세시까지
2005년 한국전쟁발발 55년을 맞이하여 대중가요사상 최초의 '전쟁과 평화'를 주제로 3집 '촛불의 바다'를 발표했던 손병휘가 이번에는 4집'삶86'을 냈다.
굳이 386을 쓰지 않은 것은 80년대를 기억하고 6.10항쟁의 이상을 공감하는 이라면 나이는 그야말로 숫자에 불과하다는 의미이다.
‘삶86’은 80년대를 경험했던 2007년을 사는 우리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점, 그리고 하루의 흐름에 맞춰 곡이 진행된다는 두 가지 의미에서 ‘Concept Album'이라고 할 수 있다.
음반을 열면, 반복되는 통기타의 경쾌한 리프가 마치 달리기를 하듯 경쾌한, ‘내 인생의 마라톤이 맞는다.
다음은 손병휘가 좋아하는 만화의 캐릭터를 따와 직장인의 하루를 그린, '무 대리를 위하여'가 뒤를 잇는다.
본인이 8차례 오버더빙한 코러스와 리듬의 변화로 단조로움을 벗어나려했다.
3번 ‘그때를 아시나요?’는 1절에서는 왕년의 오렌지 족, 2절에서는 왕년의 운동권 이야기를
하며 현재에 충실하지 않은 삶은 부질없다는 내용을 셔플리듬의 Rock&Roll로 풀어냈다.
트럼펫 전주로 시작되는 ‘386’은 담담한 어조로 87년의 이상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이야기한다.
1절엔 친일 변호, 2절엔 유신 망령, 3절엔 5공화국의 잔재에 대한 분노를 담고 있는 오래된 정원은 일렉트릭 기타의 리프가 인상적이며 황석영의 소설제목을 인용했다.
6번 곡 “강물은 똑바로 가지는 않지만 언제나 바다로 흐른다.”는 제목만큼이나 긴 8분이상의 대곡으로 이 음반의 주제를 담고 있으며, 물결치는 멜로트론소리로 손병휘가 ‘Art Rock'의 세례를 받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3번부터 6번곡까지, 노래사이에 여백을 두지 않는 메들리형식으로 이 앨범의 주제를 표현하고자했다.
7번 ‘나의 노래가’는 노래의 길을 걷고 있는 손병휘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고 다소 애잔한
음색으로 불러주었다. 이 노래는 보너스 트랙인 13번에서 과거 ‘노래마을’ 동료였던 이정열,이지상, 정은주(피아노)와 함께하는 버전으로 다시 등장한다.
이제는 저녁으로 넘어간다.
친구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만든 ‘동창생’을 지나면 ‘가족 찾아주기’ 프로그램을 보다가 만든 ‘더 늦기 전에’가 맞아주는데 약간 재즈풍이 풍기는 이 노래에서 피아노(정은주)와 아코디언(신지아)의 연주가 돋보인다.
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묵직하기도 하고 부드럽기도 한 바이올린, 첼로의 연주가 편안한 ‘니베아 향기처럼’은
학창시절을 생각나게 하는데 후주의 첼로 2중주가 백미이다.
11번이면서 이번 앨범의 정규 마지막 트랙은 잠 못 이루는 새벽을 노래하는 ‘다시 새벽 세 시’인데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잠이 들 수 있도록 단조로운 편곡을 사용하였다.
보너스 트랙의 ‘다시 살아오는 고구려’는 이미 고구려를 주제로 한 2004년 ‘국립극장’,
2005년 ‘문예회관’의 공연에서 선보인바 있으며 노래패 ‘우리나라’의 코러스와 고동치는 ‘북’과‘징’소리로 서사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이상이 손병휘 4집 ‘삶86’의 개요다.
주류와는 거리가 먼 장르와 활동방식으로 나만의 달리기(내 인생의 마라톤)를 하면서도 시대와, 삶과 함께하려는 그의 신보...... 이제 공은 넘어갔다. 이 음반을 들을.., 아니, 어쩌면 존재조차 모를 당신에게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