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 김용우의 새 앨범 <어이 얼어자리>
<용천검>, <임진강> 등의 노래로 사랑받은 전작 <질꼬냉이>에 이어
2년만에 선보이는 신작.
한번도 맛보지 못한 새로운 음식을 내놓는 것.
이것이 소리꾼 김용우가 우리에게 말을 거는 방식이다.
이번 앨범에서는 12가사, 12잡가, 고가신조 등 민요를 벗어난 다양한 장르의 전통음악을 소재로 크로스오버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어이 얼어자리> - 조선남녀의 농염한 신비가 가장 모던한 스타일과 만난다.
찬 바람이 부는 겨울.
남자는 준비 없이 길을 나섰다. 여자가 있는 곳에 이르러 찬바람과 함께 눈인듯 비인듯 날은 궂어지고 몸은 얼어붙었다. 그는 짐짓 여자의 마음을 떠본다.
여자는 무심한 듯 그러나 그만큼 더 농염하게 화답한다. 여기 아름답고 호사스러운 이부자리가 있으니 언 몸을 녹여주겠노라고.
“어이 얼어자리 무슨 일 얼어자리 원앙침 비취금을 어데 두고 얼어자리”
타이틀곡 <어이 얼어자리>가 보여주는 풍경은 관능적이다. 그러나 “조선남녀상열지사”라 불리는 질펀하고 노골적인 가사들에 비하면 매우 은근하고 세련되었다. 그도 그럴것이 남자는 시를 지으며 유랑하는 조선의 선비 ‘임제’이고 이에 질세라 여자는 시, 서화에 능한 기생 ‘한우’이다.
재즈보컬 김여진과의 협연
2005년 가을,
소리꾼 김용우가 이년만에 발표한 신작의 음악적 풍경 또한 사뭇 색다르다.
김용우의 목소리와 만난 것은 가수 ‘이소라’를 연상시키는 매력적인 허스키 보이스의 재즈보컬 김여진이다. 수양버들과 같이 목에 힘을 빼고 능란하게 넘나드는 김용우의 목소리는 김여진의 목소리와 겹쳐지며 강렬한 보색대비를 이룬다. 재즈트리오와 대금소리를 배경으로 수 백년전 조선남녀가 나누었던 세련된 구애의 노래가 가장 모던한 스타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지구상에서 한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던 음악, <어부사>
음반 녹음에 참여했던 한 기술 스탭은 김용우의 신작 <어부사>를 가리켜, 여태껏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음악이라고 표현했다. 어부사는 정가인 12가사 중의 한 곡이다. 국악전공자가 아니라면 평생 한번 접하기도 힘든 음악이니 그럴만도 하다. 피리소리에 이끌려 나오는 창법부터가 현대음악은 물론, 이전의 민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기묘한 것이다. 그러나 김용우의 재기는 낯선 음악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사람들도 매력을 느낄 수 있게 변용해 내는데 있다.
스캔들, 조선남녀악흥(!)지사
이재용 감독의 영화 <스캔들>의 한 장면,
바람둥이 선비로 분한 배용준이 정씨부인 식구들과 함께 연못에 배를 띄워 놓고 노니는데 연못가에서 누군가 유장하고 아름다운 가락의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가 바로 <어부사>와 같은 12가사 중의 한곡인 <춘면곡>이다.
이재용 감독이 영화 <스캔들>에서 조선양반들의 섬세하고 세련된 문화의 아이콘들을 사용하여 매우 현대적인 멜러물을 만들었듯이 김용우는 <어부사>의 유장한 가락위에 재즈피아노와 우드베이스, 드럼의 박자를 얹어 또한 매우 현대적인 음악을 만들었다. 이 음악의 느낌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매우 힘든데 왜냐하면 감상적인가 싶으면 적막하고, 단조롭다 싶으면 순간, 다채로와지는 다소 기이하다 싶은 화성 때문이다.
다르게 말해 보자면, 12가사의 유장하면서도 미묘한 굴곡이 심한 곡조가 커피의 진한 향이라면 프림과 설탕처럼 부드럽게 녹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재즈트리오의 화성이다. 그러나 당신은 이 곡을 자꾸 듣게 되면서 프림과 설탕보다는 12가사 본연의 매력에 천천히 빠져들게 될 것이다. 특히나 5분을 살짝 넘기는 이곡의 백미는 곡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순간에 있다. 마지막 몇개의 음을 살짝 끌어올리는 김용우의 창법은 12가사와 재즈가 얼마나 미묘하게 어울릴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장르의 또다른 확장, <유산가>
지난 앨범 <질꼬냉이>에서 동아시아와 러시아의 민요들을 선보였던 김용우는 이번에는 우리음악내의 미지의 영역들로 자신의 음악적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고가신조인 <어이 얼어자리>, 12가사 중의 하나인 <어부사>에 이어지는 것은, 12잡가 중의 하나인 <유산가>이다. <유산가>또한 <어부사> 못지않게 낯선 메뉴가 될 터인데 이 두곡을 연달아 배치한 것은 김용우 음악의 뿌리가 변용 그 자체에 있지 않고 전통에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음을 웅변하는 것 같다. 김용우가 중요무형문화재 제41호 12가사의 이수자인 것을 생각하면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많은 이들이 김용우를 만나 처음으로 민요와 우리음악의 맛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했듯이 이번 앨범을 통해서 우리는 처음으로 <가사>니 <잡가>니 하는 교과서에서나 보던 낯선 음악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는 고백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주목받는 재즈하모니카 연주자 전재덕과의 협연,
새로운 아카펠라 민요<붕기풍어소리>
맹인연주자로서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 이미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재즈하모니카 연주자 전재덕.
<바람불고 눈비 오랴는가>는 전재덕의 하모니카에 12가사중 하나인 수양산가의 일부를 얹었다.
첫 녹음의 느낌이 좋아 그대로 녹음을 끝냈다는 두 사람의 하모니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두 젊은 예술가의 감각이 어떻게 어울리는지 보여준다.
김용우의 전작들에서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주었던 아카펠라.
<군밤타령>, <개타령>, <풍구소리> 등은 다소 어려운 음악일수도 있는 김용우의 앨범 속에서 가볍고 친숙한 느낌으로 다가와 가장 먼저 귀에 들어오는 곡들이었다. 고가신조와 12가사, 12잡가 등을 전진 배치한 이번 앨범에서도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전체의 분위기에 활기차고 화려한 화성의 아카펠라 곡들이 밟고 화사한 느낌을 더한다.
이미 수년간 김용우와 함께 공연했던 국내최고의 아카펠라 그룹 더 솔리스트는 한층 진보한 아카펠라를 선보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