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을 새롭게 알리는 가슴 벅찬 한국 디바의 음악
리메이크, 비정규 앨범을 제외하고, 2006년 5집 앨범 이후로 2년여 만에 발표되는 화요비의 정규 6집 앨범. 2000년 화려한 데뷔 이후로 그녀를 따라다니던 디바의 수식어를 잊지 않게끔 모든 정성을 들인듯 그녀의 8년간의 역사를 집약한 새롭고 자유스러운 느낌의 음반이다.
CD를 받아 들고 오디오에 넣으면서 많은 팬들이 걱정했던 농양 제거 수술 후, 당연히 기존에 발표된 노래들과의 비교가 첫 단어로 떠오를 수 밖에 없었다. 더구나 1년여의 녹음기간 동안 치명적일 수 있는 목 수술도 있었고, 앨범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이미 녹음을 마친 트랙들 중 무려 절반 가량의 곡을 정리한 후, 신곡들로서 전면 수정해 처음부터 다시 녹음했다는 소리를 듣고 우려와 궁금증이 함께 했다.
하지만 마지막 트랙까지 들고난 후, 그녀가 성대수술을 딛고 재기했단 표현은 그다지 적절치 않단 느낌이다. 그간의 공백을 느낄 수 없을 만큼, 타고난 목소리의 소유자답게 항간의 우려가 기우였음을 증명하듯 훌륭한 목소리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화요비' 그녀의 잠재력은 어디까지일까?
이젠 브랜드화 되어진 하나의 '화요비'표 소리를 담은 앨범을 탄생시키기 위해 그토록 힘들고 오랜 숙성기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만큼이나 잘 익은 훌륭한 음악들이 이번 음반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 동안 그녀의 음악을 구성해온 소울과 어쿠스틱, 블루스 외에도 일렉트로니카, 팝에 이르는 더욱 다양한 재료들이 이번 음반에는 녹아 들어 있다.
이번 앨범은 각 트랙의 제목이 나타내는 바처럼 '사랑'에 관한 그녀의 생각들이 주제를 이루고 있다. 데뷔부터 각 앨범에 자신의 소중한 곡과 가사를 수록해 온 화요비는 일정 이상의 완성도를 인정받았지만 이번에는 그리 큰 욕심을 부리지는 않았다. 그래도 줄곧 이어져 온 자기고백적인 노래 스타일은 이번 앨범에 와서 정점을 이루고 있는데, 감성을 기분 좋게 중독시키는 리듬과 섬세한 멜로디, 무르익은 매혹적인 커피향 보컬은 듣는 순간부터 우리를 멜랑코리(melancholy)의 포로로 만들어버린다. 가수로서 또 개인으로서 살아오며 겪은 상처와 아픔, 화해의 감정들이 고루 배어 있다.
굳이 가창력의 부분을 말하자면, 이미 검증되고도 남을 만한 노래 잘하는 가수의 경력과 인기의 그녀이건만, 바로 쏘아 올리는 시원한 가창과 흉내내기 힘든 독특한 음색은 데뷔 당시, '머라이어 캐리'로 대표되던 알앤비에 상당부분 기대었단 소리를 들었지만, 탄력적이고 음을 마음대로 쥐락펴락하는 맛깔스런 보컬만큼은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인 든다.
프로듀서 이상준과의 만남..
사실 작곡가 이상준과 화요비는 초면이 아니다. 가요계에 있으며 이미 서로에 대해 알고 있었고 실제로 화요비의 음반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녹음 스케쥴상의 문제로 번번히 다른 작품자와 작업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오랜 숙원의 기간 동안 화요비와 화요비의 기획사는 이상준 프로듀서와 새 음반에 대해 상의하게 되었고, 그가 새 앨범의 프로듀서로서 낙점되었다.
프로듀서 이상준은 버즈, 김경호, 메이비, 한경일, NRG, 박효신,각 방송사 인기드라마 OST 등을 만들어낸 인기 작곡가로 이미 버즈 등의 그룹과 가수들을 최고의 경지로 끌어낸 대중의 코드를 잘 읽어내는 작곡가로 대중과 평단에 각광받고 있는 스타 프로듀서이다.
화요비 음반을 만들기에 앞서, 최근 들어 가요계에 회자되는 너도나도 식의 고정된 창법에 대한 부정적인 부분을 그도 충분히 고민한 듯 하다. 일차적으로 고도의 테크닉을 필요로 하는 부분보다 듣기 좋고 흔들림 없는 노래의 전달에 주안점을 둔 것이다. 종합선물세트처럼 과도한 실험적인 요소보다는 대중적인 곡과 좋은 노래 만들기에 집중하였다.
그 결과 이번 음반을 위해 국내 유명 작곡가들을 통해 무려 70여 곡을 준비했던 열정만큼 대중에게 친절해지고 한결 더 친숙한, 일보 아니 십보 이상 진보된 앨범을 만들어 내었다. 화요비도 새 소속사에서 도전하는 여러 부담만큼 과감한 센스나 상품적 쿨(Cool)함을 부각하는 곡보단 괜찮은 '웰-메이드'의 곡들로 마치 교통정리가 잘 된 거리를 달리는 느낌의 위화감 없는 대중 요소를 택했다. 앨범의 트랙들은 질서를 갖추고 과거보다 탄탄해진 사운드 안에서 제 모습을 다져간 느낌이다.
화요비는 현재 과거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과거에 안주하려 하고 있다는 뜻이 아닌 초창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신선함과 그녀만의 서정성이 데뷔시절의 10대를 지나 20대 중반을 넘으면서도 여전히 그대로임을 증명하고 있다. 달라진 점이라면 그녀가 부르는 노래는 더 이상 흑인 감성의 목소리가 아니라 그녀 자신의 가슴으로 외치는 마음의 목소리다. 확실히 예전보다 보컬이 부담 없어지고 힘있지만 발전된 창법의 기교가 숨어있다. 곡 전개 속에서도 흐름을 잃지 않는 탄탄한 보컬과 수제식 연주, 그리고 흉내 낼 수 없는 48인조 오케스트라의 섬세한 음색의 조화는 대중 앨범이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조합이 아닐까?
타이틀 곡 '남자는 모른다(화요비 작사/ 이상준 작곡)'는 기존의 화요비 음악과는 묘하게 다르다. 프로듀서이자 작곡가인 이상준은 형식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소울, R&B 등의 요소는 버리고자 했나 보다. 과감히 살점을 다 발라내고 남아있는 뼈대에 다시 살을 붙이는 수 작업을 택했다. 기존의 답습처럼 불필요한 군살을 모두 제거하고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자 한 가수와의 충분한 공감대가 느껴지는데 과거 스타일적인 부분으로 화요비를 평가하게 하였던 부분에서 탈피해, 노래는 몸보다 마음으로 먼저 느끼는 것이란 걸 보여주고 있다. 화요비의 장점만을 최고치로 빼내온 듯 중독성 강한 멜로디는 들을수록 빠져들게 만든다. 화요비의 감성이 충만하게 느껴지는 가슴 아픈 작사 실력도 여전히 느껴진다. 옥타브를 넘나드는 선율 속에 묻어나는 풍부한 스트링은 이 곡의 백미. 화요비만큼 이 곡의 엘레지(elegy)한 감성을 잘 표현하는 가수가 또 있을까 싶다…
음반은 전체적으로 전작들에 비해 어쿠스틱한 사운드를 많이 강조해 사용했고 깔끔한 편곡과 몇 곡을 제외하곤 풀 오케스트레이션으로 마무리됐다. 비트와 프로그래밍을 배재해 이어폰용 음악이 아닌 수년이 지나도 어색하지 않을 새로운 '화요비'표 음악을 만들어 내었다. 엉뚱하고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기획상품 음반이 난무하는 가운데, 화요비 음반은 단연 내공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과연 2년이란 기다림이 헛되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