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란, ‘모던 포크/어쿠스틱 팝 밴드 멤버로의 변신.
기술의 발전과 함께 대중음악계엔 수많은 장르가 탄생했다. 첨단 전자악기를 이용한 일렉트로니카와 각종 아웃보드 이펙터를 이용한 록음악들이 주류를 점령한지 오래 됐다. 하지만 첨단 오디오 장비를 테스트하기 위해 레퍼런스 앨범으로 걸리는 음악들은 보통 여성 보컬의 어쿠스틱 팝인 경우가 많다. 오디오 파일러라면 거의 모두가 가지고 있는 ‘레베카 피죤’을 비롯해 1970년대의 ‘리키 리 존스’로부터 출발해 ‘나탈리 머천트’, ‘애니 디프랑코’를 거쳐 최근의 ‘캐런 앤’,‘파이스트(feist)’를 잇는 여성 모던 포크의 전설은 계속되고 있다.
일렉트로니카의 화신처럼 군림하고 있는 클래지콰이의 여성 보컬리스트 호란이 그런 모던 포크의 감성을 한껏 담은 어쿠스틱 프로젝트의 멤버로서 대중 앞에 나섰다. 세션계에 이름난 드럼 연주자이자 섬세한 감성의 어쿠스틱 기타리스트 ‘거정’과 팝과 재즈를 넘나드는 베이시스트이자 기타리스트인 ‘저스틴 킴’과 함께 만든 밴드 ‘이바디’의 첫 음반이 바로 그것이다.
일렉트로니카 음악에서의 보컬 운용 방식과 어쿠스틱 음악에서의 그것은 발성 그 자체부터 달라진다. 일렉트로니카의 보컬이 다른 악기들과 단단히 포옹하고 있는 느낌이라면, 어쿠스틱 음악에서의 보컬 사운드는 다른 악기들과 손을 잡고 있는 느낌이다. 그만큼 자연스러운 발성이 필요하고 악기들과의 조화를 처음부터 신경 써야 한다. 빡빡한 컴프레서로 작은 성량을 커버할 수 없게 되고 거대한 리버브로 여운을 길게 만들 수도 없다. 한마디로 보컬계의 ‘쌩얼’이 바로 어쿠스틱 음악이라고 보면 된다.
호란은 그 매력적인 목소리의 ‘쌩얼’을 드러냈다. 클래지콰이의 음반에서는 좀처럼 듣기 힘든 속삭임이 등장하고 호흡의 소리가 그대로 스피커를 공명시킨다. 그 발성의 시작으로부터 솔직하고 그 호흡의 마무리까지 리얼하게 내고 있다. 프로듀서 ‘거정’과 ‘Justin Kim’ 이 기타 두 대로 분위기를 스케치하고 그 위에 호란이 목소리를 얹는 방식의 미니멀함으로 시작하는 그들의 작업은 그렇게 만들어낸 밑그림 위에 ‘거정’과 ‘Justin Kim’ 의 다양한 악기들에 대한 관심으로 색칠을 하는 느낌이다. 호란은 뛰어난 기교를 가졌지만 소박한 붓터치를 지닌 화가처럼 청아한 그들의 반주 위에 그림을 그린다.
이러한 앨범의 특징은 타이틀곡인 "끝나지 않은 이야기“ 한 곡으로도 충분히 나타내어진다.
피아노, 기타, 브러쉬 드럼 위를 한 마리 나비처럼 날아다니는 호란의 소박하면서 솔직한 보컬은 클래지콰이 와는 또 다른 프로젝트인 이바디를 통해 세상을 향해 읍조리는 결코 끝나지 않을 이야기의 시작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