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김서릴 정도의 차갑고 투명한 공기가 부유하는 ‘겨울의 봄’.
억을 모두 토해내는 것처럼 울컥한, 이장혁의 두 번째 목소리.
숙제검사를 위한 어린아이의 일기는 해가 지날수록 비밀을 간직한 은밀한 작은 통로가 된다. 매일같이 지나치는 버스정류장에서 보는 어떤 아이가 마음에 들어 말을 걸어 보고 싶어 다가갔지만 입은 쉽게 떨어지지 않더라는 기록, 당당히 문을 박차고 나왔다고 떠들어 댔지만 사실은 회사에서 짤렸다는 고해성사까지... 그것을 뒤돌아보면 청춘이었다고, 사랑이었다고 회고하며 치열한 삶을 살았노라 스스로 위안한다. 그리고 이장혁 은 다소 불편했지만 특별했던, 그래서 꽁꽁 얼려두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무려 4년 만에 꺼내놓았다.
지난 90년대 인디씬의 선각자로 고군분투 해왔던 기록(아무밴드와 독립음반‘인디’, 이.판.을.사등)의 연장선들이 2004년에 발매된 1집 [vol.1]이었다면, 2008년 12월 음악씬의 대미를 장식 할 두 번째 앨범 [vol.2]는 1집 발매 이후 ‘차’와 ‘포’를 땐 '진짜 이장혁 '의 이야기를 담아낸 앨범이다. 꾸준한 기간 동안 그의 홈페이지를 통해 Demo작업들을 연재하며 많은 네티즌들과의 정직한 대면으로 엄선된 곡들을 담았다.
새 앨범 [vol.2]에서의 주된 정서는 그가 가진 작은 상처와 봄에 관한 이야기다. 마냥 행복한 나날을 보내기만 했다면 지난날을 돌아보며 '청춘'과 '살아있음'을 노래할 수 있을까!. 이장혁 이 만들어낸 봄이란 건, 작고 예쁜 것들이 피어 오르기 보단, 입김서릴 정도의 차갑고 투명한 공기가 부유하는 ‘겨울의 봄’이다. 새 초록 언덕을 향해 가속을 높여 뛰어올라도 쓰라린 추억을 가지고 있는 봄. 그래서 마음속에 오롯이 스며든 감기를 치유하듯 개인적이고 비밀스런 이야기들로 여전히 일기를 써 내려가듯 가사를 쓰고, 옆에 있는 고양이를 달래주듯 노래한다. 새 앨범 발매까지의 4년이라는 아름답고 느긋한 시간의 간극이 느껴지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가슴에 묻어둔 상처를 헤집는 듯한 기타에 아교처럼 철썩 달라붙는 희미한 목소리, 그러나 절망을 벗어날 치유의 처방전과 같은 멜로디는 앨범의 깊이를 가늠하게 한다.
깔끔한 포크사운드를 기반으로 곡과 곡 사이를 채워주는 현악기들의 배치, 세심하게 배려 된 베이스사운드, 가늘게 떨리는 리프들은 앨범이 가진 ‘겨울과 같은 봄’의 짠한 느낌을 극대화 시킨다. 첫 곡 ‘백치들’의 너무나 깨끗하지만 쓰라린 가사에서는 그 정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어지는 재즈의 풍광을 짙게 담아낸 ‘오늘밤은’은 다양한 악기의 배치와 극적인 피아노연주의 몽환이 돋보인다. 시작되는 순간부터 단조의 처연함과 이장혁 특유의 훅이 가슴을 압도하는 ‘봄’은 푸르디푸른 강 바닥에 가라앉은 느낌이다. 앨범에서 가장 실험적인 트랙 ‘나비’는 나비의 날갯짓을 슬로우 모션으로 담아낸 듯 사이키델릭 하며, 깨질 것 같은 실로폰연주로 시작되는 ‘얼음강’은 그의 비밀에 한껏 다가 선 듯 유난히 아프고 엄숙한 울림이 강하다.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과 아이언 앤 와인(Iron & Wine)을 뒤섞어 둔 것 같은 방대한 스펙트럼의 ‘아우슈비츠 오케스트라’는 50년대 살롱 음악들처럼 거룩하기까지 하다.
이장혁이 바라보는 일상은 ‘어쩌면 이렇게 처연할까’ 하며 가슴 아픈 의문을 가지곤 했다. 하지만 그것이 신이 지어주신 운명이라면, 얼어버릴 것 같은 하얀 감성으로 그 분노를 승화시키는 능력 또한 함께 주셨다고 믿는다.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일상의 소중함을 잊고 살아가곤 한다. 그것은 손에 잡히지 않고 매일 반복되기 때문에 더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의 기록을 엿보거나 전해 들으며 지극히 개인적인 남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추억을 떠 올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우리가 이장혁 의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잠들 때 옆에 두는 이유는 우리에게도 호호 불어 치유하고픈 마음 속 폐허가 한 두 군데쯤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이장혁 이란 뮤지션이 존재한 다는 것은 얼마나 행운인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