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이와 수경이, 1984년생 스물다섯살 서울아이들의 음악놀이
그들이 들려주는 우리들의 이야기들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난 우리의 운명
아무도 없는 창가의 오후,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스무 살 여자아이의 일기장을 몰래 넘겨 보는 일. 바로 ‘1984’의 데뷔 앨범의 트랙 하나하나를 넘길 때마다 느끼게 되는 오랜만의 감정이다. 두근거리는 초조함과 호기심 사이의 갈등, 그리고, 피식 웃다가 예상치 못했던 속 깊음에 바보같이 혼자 코끝이 찡해지는……
같은 서울에서 같은 1984년에 태어난 김정민과 오수경의 즐거운 음악 놀이, ‘1984’.
주로 노래와 노랫말, 공동 작곡과 편곡을 맡고 있는 김정민은 스무살부터 콘서트 영상 및 뮤직비디오 등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문학동네’라는 출판사에 출근하고 있는 끼 있는 소녀이다. 공동 작곡과 편곡, 키보드 및 앨범의 모든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담당하는 오수경은 허밍어반스테레오, 캐스커, 스완다이브 등의 공연과 커피프린스1호점 O.S.T 등에서 연주를 하며 경험을 쌓고 있는 꿈 많은 뮤지션이다.
이 두사람이 만들어내는 스무살의 노래들은 꼭 스무살 또래들만의 노래는 아니다. 이 시기가 지난 이들에게도 향 좋은 섬유유연제처럼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스무살의 감정들을 다시 피어오르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스물다섯살의 그녀들은 속 깊은 사춘기다. 넉넉치 않은 스무살, 힘겨워하고 있는 남자친구에게 작은 우산이라도 함께 쓰자고 내밀어 보고(우산), 서로 먼 곳에서 블로그나 핸드폰 문자메시지로 감정을 전달하고, 마주 보지 않고 화면을 통해 읽다가 생기는 오해의 상처를 아쉬워하기도 하다가(한동안 멍하니), 창문 너머 서울 밤하늘의 달을 바라보며 그 나이에 있을 질투나 미움을 기특하게 다스리기도 한다(지구별에서 태어난 너의 운명). 그러나, 그녀들은 갓 고등학교을 졸업한 듯 여전히 발랄하고 개구지다. 그들이 태어나고 자란 삭막한 서울에서 따뜻함과 고마움을 발견해 그들의 아련하고 행복한 고향으로 인정하기도 하고(서울아이), 자신의 성장배경이었던 꽃집과 꽃집의 딸인 본인을 소재로 장난스럽게 노래(꽃집 아가씨의 봄날) 하기도 한다.
‘1984’의 노래들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들의 음악이 재능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기보다 따뜻한 경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귀에 잘 들어오는 노래를 만들기 위한 고민이 아니라 삶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애정이 자연스럽게 배어나온 과즙을 닮은 음악이다. 마치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주인공이 모든 퀴즈를 지식이 아닌 삶의 기억으로 맞춰가듯 그들의 음악도 소소한 삶의 기록이기 때문에 더욱 와닿게 되는 것이다.
이번 데뷔 EP의 제목은 ‘청춘집중 - 난 우리가 좀 더 청춘에 집중했으면 좋겠어’. 2009년, 서울에서 살고 있는 그녀들이 스스로에게 그리고 동시대를 함께 걷는 또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이제 시작하는 ‘1984’는 지금은 스물다섯살의 노래들을 불러주지만, 앞으로 아줌마가 되고, 엄마가 되어서도 이렇게 조미료맛이 나지 않는 삶이 축적된 노래를 우리에게 들려주면 좋겠다. 우리에게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서울 아이들의 이야기보다는 꾸준히 삶을 같이 얘기할 수 있는 오랜 친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