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던 매혹적인 마스터피스 디지털 리마스터링 재발매!
All That Masterpiece Series (올 댓 마스터피스 시리즈)
올 댓 마스터피스, 김수철(황천길)
* 디지털 리마스터링 / 초호화 가사집 포함
작은 거인, 김수철
한국가요계의 진정한 뮤지션 김수철, 그는 1978년 광운대학교 재학시절 『작은 거인』을 결성하면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한다.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파워풀한 목소리와 시대의 조류를 읽는 그의 눈은 보컬은 물론이거니와 작곡, 작사에서도 그 빛을 발한다. 대학시절 발표한 『작은 거인』의 음반은 특별한 홍보도 없이 조용히 대학가와 당시 문화의 한 부분을 차지했던 다운타운 음악다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일곱 빛깔 무지개> 는 그 당시의 상당한 히트곡. 이후 솔로로 전향한 그는 <못다핀 꽃 한송이>, <내일>, <별리> 등을 발표하면서 싱어 송 라이터로서의 인기는 물론이거니와 음악적으로도 서서히 인정 받기 시작한다. 이런 1984년부터 86년까지 그의 작품 활동은 각종 방송국의 챠트를 휩쓰는 최고의 인기를 보여줌은 물론이고 음악적 성과 역시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물론 그 사이에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영화 <고래사냥> 작업은 김수철에게 있어 빼 놓을 수 없는 작업 중 하나. 영화 음악 데뷔작인 <고래사냥>은 준비기간이 겨우 3일 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15곡을 만들어야 하는 여건이었지만 그 속에서도 발표된 음악은 당시 영화의 인기만큼이나 각광 받는 음악으로 남았으며 그의 천재성에 대한 또 하나의 증거로 남아있다. <고래사냥>은 음악을 맡음과 동시에 함께 출연까지 해, 연기자로서의 능력을 인정받는 계기를 주기도 했다. 영화 <고래사냥>의 음악작업은 그에게 있어 김수철 개인의 영화음악사를 따로 쓰게 할 만큼 많은 영화음악 활동의 시작임을 알리는 작업의 시작이 된다. 이런 영화 속의 음악 역시 그의 개성을 아낌없이 보여주며. “국악을 중심으로 한 양악의 조화”라는 그의 장기는 영화와 맞물려 그 진가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이련 일련의 음악활동과 함께 1986년 아시안 게임 휘날레 음악, 1988년 올림픽 게임 전야제 음악 등 행사를 위한 창작곡을 맡아 세계 속에 우리 음악을 담는데 주력했으며, 방송 타이틀 음악, 시그널 음악 등 음악에 관한 장르를 나누기가 힘들 정도로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KBS 미니시리즈 ‘형’의 타이틀 음악, 영화 <서편제> <태백산맥> 등의 음악을 통해 그의 깊이를 표현하는 “김수철 음악의 진수”는 영화를 더욱 빛내면서 그의 이름을 우리 문화 전반에 침투시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런 우리 음악의 세계화를 느낄 수 있는 일련의 과정은 급기야 1997년, 이런 그의 진가를 대내외적으로 평가를 받는 결실이라도 되는 듯 그만의 체취가 느껴지는 앨범 <팔만대장경>을 발표하기에 이르게 된다. 이 시기 김수철의 활동은 장르파괴에 음악적 자기정신의 확립이라는 놀라운 음악적 성숙과 함께 많은 음악인들과 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된다. 이는 가요 속에서 우리 음률을 느끼게 한다는 것인데 그가 보여준 이러한 노력과 성과는 여느 국악을 연구하는 학자보다 못하다 할 수 없는 최고의 경지임을 보여준다.
황/천/길(1988)
1980년대 중반 <못다핀 꽃 한송이>, <내일>, <나도야 간다>, <젊은 그대> 등의 연속히트로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싱어송라이터 김수철은 이러한 성공에 안주 하지 않고 국악의 영역을 잠식하기에 이른다. 그는 이미 그룹 『작은 거인』시절인 81년, <별리>와 같은 곡을 통해 국악과 가요의 접목을 일찌감치 시도한 바 있다. 엄청난 인기와 명성을 만끽하는 순간에도 우리 것에 대한 음악적 자부심을 잊지 않았다. 낮 시간에는 방송과 연주활동을, 밤에는 짬을 내어 거문고, 가야금, 아쟁, 피리 등 국악기를 연마하는 주경야독의 시간이 이어졌다. 이렇게 김수철은 서서히 소리에 눈을 떠가기 시작했다. 그러한 노력은 2년 뒤의 앨범 《황천길》로 결실을 맺는다. 《황천길》은 인간이 죽을 때 들어가는 길이며, 이를 음반 타이틀로 내건 것은 우리 전통의 정서인 한(恨)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84년 겨울, 생전에 그토록 자신의 음악을 반대하던 아버지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는다. 부친의 한을 소리로 풀어주려는 의도로 86년부터 이듬해까지 황천길 테마의 국악을 쓰게 된다. 86 아시안게임 전야제의 피날레로 사용된 <풍물>을 포함해 그 무렵 만든 8곡을 묶어 발표한 앨범이 바로 《황천길》이었다. 곡마다 우리의 대표적 전통악기인 태평소, 아쟁, 대금, 피리 등이 중심에 서서 다양한 사운드를 만들어 냈다. 앨범의 시작을 여는 <황천길>에서 태평소의 강한 음색은 어떤 가수의 보컬보다도 더 애절하고 감동적인 중심 선율을 선사한다. 국악인 성창순 (무형문화제 제 5호 판소리)의 감동적인 창 <슬픈 소리>도 필청 트랙.. 동양과 서양 사람들에게 모두 감동을 줄 수 있는 음악을 작곡하고자 한 김수철의 꿈이 뚜렷한 모습을 드러낸 앨범이다. 참담한 상업적 실패와는 별개로 이 음반은 이후 ‘명반’의 대열에 오른다. - 대중음악기고가 성 시 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