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훈의 [오페라]를 김장훈보다 먼저,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을 김현식보다 먼저, 이문세의 [그대와 영원히]를 이문세보다 먼저 불렀던 비운의 가수 문관철, 그가 18년 만에 옛 추억을 꺼내 들었다.
■ 김장훈의 ‘오페라’를 김장훈보다 먼저,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을 김현식보다 먼저, 이문세의 ‘그대와 영원히’를 이문세보다 먼저 부른 가수가 있다면?
■ 김현식, 유재하, 봄여름가을겨울, 빛과 소금, 들국화, 어떤날, 김광민, 한상원 등과 80년대를 함께 보낸 문관철이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낸 4집 [Boot from Memory]
■ 18년 만의 음반, 그는 무엇을 하고 살았을까?
■ 80, 90년대를 추억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문관철의 따뜻한 메시지
김장훈의 ‘오페라’를 김장훈보다 먼저 부른 가수가 있다면?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을 김현식보다 먼저, 이문세의 ‘그대와 영원히’를 이문세보다 먼저 부른 가수가 있다면? 유재하가 이 곡을 이문세보다 먼저 준 가수가 있다면? 김장훈과 전인권이 리메이크해 유명해진 ‘다시 처음이라오’를 그들보다 먼저 부른 가수가 있다면?
있다. 실제로 이런 가수가 있다. 누구보다 먼저 이 노래들을 불렀지만, 정작 본인은 이 노래들을 히트시키지 못한 비운의 가수 문관철이 그 주인공이다. 사람들은 이 노래들은 기억하지만, 문관철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그 시대를 살았고, 그 노래들을 불렀던 실존의 가수다. 문관철이 오랜 공백을 깨고 새 앨범 [Boot from Memory]를 들고 돌아왔다. 80년대와 90년대 초반의 노래에 추억을 가지고 있는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이 담겨있다.
문관철의 [Boot from Memory]는 그의 네 번째 음반이다. 3집을 냈던 때가 1993년이니 그 사이 1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는 무엇을 했으며, 왜 다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일까. “제 음악처럼 삶도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고 느껴졌을 때 어떤 울림 같은 게 있었습니다. 다시 음악을 해야 한다는.”
문관철은 중고등학교 친구들과 ‘시나브로’라는 팀을 결성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했다. 이때의 친구들이 김광민(피아니스트, 동덕여대 교수), 이훈석(전 난장 대표), 안지홍(작곡가) 등이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대학가요제, 국풍가요제 등에 출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팀에서 기타와 보컬을 맡았다.
대학 4학년이던 1983년 그는 방배동에 ‘시나브로’라는 이름의 카페를 운영하기 시작했고, 이곳은 뮤지션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김현식, 유재하, 들국화, 시인과 촌장, 빛과 소금, 봄여름가을겨울, 김광민, 한상원, 해바라기, 조하문, 권인하 등이 이곳을 들락날락했다. 이들은 그의 음악 인생에 있어 좋은 동반자들이었다.
이 시기에 그는 데뷔 앨범을 준비했다. 프로듀싱은 이장희의 동생인 이승희가 맡았다. 84년에 이미 모든 곡 준비를 완료했지만, 본인이 직접 제작을 하느라 발매가 더뎌졌다. 이때 모은 곡이 ‘오페라’ ‘다시 처음이라오’ ‘그대와 영원히’ ‘비처럼 음악처럼’ 등이다. 녹음을 하고 발매를 준비하는 사이 김현식은 ‘비처럼 음악처럼’을 냈고, 이문세는 ‘그대와 영원히’를 냈다. “강탈당한 느낌”이었다.
“당시 한양대 작곡가를 다니던 유재하가 친한 후배여서 그 친구가 쓴 곡을 받았는데 그 곡이 바로 ‘그대와 영원히’입니다. 음반 발매가 더뎌지는 와중에 매체에서 이 노래가 들리는 거예요. 이문세의 목소리였습니다.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렇지만 먼저 받은 곡이고, 이미 녹음을 끝낸 상태였기 때문에 제 음반에 그대로 실었죠.”
그렇게 해서 1987년 1월 데뷔 앨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나왔다. ‘오페라’ ‘다시 처음이라오’ ‘비처럼 음악처럼’ ‘그대와 영원히’ 등이 실렸다. 1990년 조동익이 편곡을 맡은 2집, 1993년 박호준이 편곡을 맡은 3집도 큰 소득 없이 끝났다.
“내는 음반마다 실패하니 막막했습니다. 마침 친형이 사업을 해보라고 권유하더군요. 그렇게 사업을 시작했고 한동안 부침 없이 승승장구했으나 이후 뜻하지 않은 시련들로 인해 결국 사업에 실패하게 되었어요. 모든 것을 털고 피아노와 기타만을 가지고 무작정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거죠.”
산 속에서 그렇게 몇 년을 보냈다. 자연과는 가까워졌지만, 세상의 소리에는 귀를 막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로부터 소식을 들었다. 2004년 개봉한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의 OST에 그가 부른 ‘다시 처음이라오’가 실렸다는 얘기였다. 문관철은 깨달았다. “노래를 다시 해야겠구나.”라고.
악보를 구하려고 피아니스트 임인건을 만났다가 뜻밖의 권유를 받았다. “아예 재즈 피아노를 제대로 배워보는 게 어떠냐고.” 그렇게 재즈 피아노 공부를 시작하면서 매주 산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건반을 만지고, 목소리를 다듬어가면서 “안으로만 가뒀던 것들을 이제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고 싶었다.”
그는 신보에서 본인이 한창 음악 생활을 했던 때의 음악들을 현재의 모습에서 노래하고자 했다. “절망적인 인생이 저를 더 성숙하게 한 것처럼 음악도 그만큼 키가 자란 듯싶다. 그 동안 노래를 정식으로 부르진 않았지만 말이다.” ‘오우동동가’ ‘다시 처음이라오’ ‘아름답게만’ ‘오페라’ 등 과거 자신의 음반에 실렸던 음악들을 재즈적인 어법으로 편곡해 수록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김현식, 유재하, 들국화, 빛과 소금 등 80년대, 90년대 초반의 음악에 추억과 미련이 있는 이라면 이 음반은 큰 선물이 될 것이다. 정감 있는 멜로디와 가사, 문관철 고유의 창법, 세련된 재즈 편곡이 어우러진 이 음반은 사람들의 시간을 잠시 과거로 되돌아가게 한다. 문관철의 18년 만의 앨범 [Boot from Memory]는 본인이 프로듀싱을 맡고, 이원술(베이시스트, 백제예술대학 교수)이 편곡을 맡았다. 오랜 지음들도 도움을 줬다. 박호준은 앨범의 마무리 작업에 큰 역할을 했고, 친구 한상원도 ‘오우동동가’에서 기타를 쳐주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