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로 타오르는 근성의 록 [글. 권석정]
록밴드에게서 소포모어 징크스가 나타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데뷔앨범보다 나은 앨범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 변화를 줘야 한다는 욕심, 기존의 개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조바심. 이 모든 것을 이루려 하거나, 또는 어느 하나를 의도적으로 쫓다 보면 배는 산으로 갈 수 있다.
사실 1집보다 나은 2집을 만든다는 것은 매우 곤란한 일이다. 1집은 뮤지션이 음악을 듣기 시작할 때부터 쌓인 내공이 발현되는 것이고, 차기작은 1집을 낸 후 단기간에 토해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데뷔앨범보다 더 나은 차기작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뮤지션 내부에 쌓인 것이 많아 첫 작품만큼이나 보여줄 것이 많다면 말이다. 록밴드 거츠(Gutz)는 새로 발표한 1.5집 [Push]에서 데뷔앨범을 통해 보여준 여러 스타일 중 일정한 방향성을 짚어내고, 그것에 집중하는 명민함을 보인다. “모든 것이 첫 앨범에 있으며, 그 다음은 그것을 어떻게 키워나가느냐에 있다”라는 지미 페이지의 경구처럼 말이다.
거츠
2005년 리더 전두희(기타, 보컬)를 중심으로 결성된 거츠는 현재까지 홍대, 인천, 부산 등지의 라이브클럽 및 일본 원정공연,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여오고 있다. 거츠는 2010년 6월에 1집 [Gutz]를 발표하며 주목 받기 시작했다. 전두희 김선미(드럼), 한두수(베이스) 3인조 체제로 녹음한 이 앨범은 거츠의 5년 역사가 결집된 결과물이었다. 셋은 2004년에 이규영(보컬, 루비살롱 대표)과 차승우(기타, 문샤이너스)가 이끌던 밴드 하이라이츠의 멤버로 함께 활동을 시작했다. 군대에서 갓 제대한 전두희는 차승우를 대신해 하이라이츠에 가입했다. 이규영, 전두희 2인 체제로 재편된 하이라이츠에 김선미, 한두수가 합류해 2집 [Crazy, Drunken Rock N' Roll]을 녹음했다. 그러던 중 전두희는 자신의 음악을 하기 위해 하이라이츠를 탈퇴하고 거츠의 전신인 3인조 밴드 그루피69을 만든다. 이때 김선미와 한두수는 ‘Painkiller’, ‘Cult Movie’, ‘날 흔들어줘’ 등의 거츠 초창기 데모를 녹음하지만 하이라이츠에 잔류하고, 전두희는 다른 멤버들과 함께 2006년 팀 이름을 거츠로 바꾸고 활동을 이어나갔다. 이후 다양한 경력을 쌓으며 실력파 연주자로 성장한 원년멤버 김선미, 한두수가 다시 거츠의 정식멤버로 합류해 1집 [Gutz]를 만들었다.
1집으로 처음 명함판을 내민 거츠는 평단과 팬들 사이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인디신의 숨은 실력자들이었던 세 멤버의 탄탄한 연주 실력, 추구점이 확실한 음악, 그리고 올곧은 메시지가 담긴 가사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보여준 음악은 ‘진짜’였다. 특히 말랑말랑한 음악들이 유행하던 2010년 인디 신에서 근성과 분노, 복고와 관능이 살아있는 거츠의 음악은 더욱 특별한 존재로 다가왔다. 1집 [Gutz]는 ‘네이버 명예의 전당’에 올랐으며 웹진 ‘백비트’, 월간지 ‘재즈피플’ 등의 전문매체를 통해 평론가들의 찬사를 얻어냈다.
블루스부터 사이키델릭, 그런지 록, 일렉트로니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능숙하게 소화한 거츠는 라이브 진검승부를 통해 인기를 얻어갔다. 거츠는 홍대를 벗어나 지방에서도 꾸준히 공연을 이어나갔다. 부산의 경우 무몽크, 락하우스 등의 클럽에서 3~4개월 단위로 정기공연을 해나갈 정도로 팬 층을 확보하기도 했다. 성실한 라이브 활동이 가져다 준 결과였다. 2010년 11월에는 첫 일본 클럽투어를 통해 현지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았다. 거츠는 신주쿠의 명문 라이브하우스 ‘와일드 사이드 도쿄’를 포함해 ‘오레바코’, 요쿄하마의 ‘세븐스 에비뉴’에서 열띤 공연을 펼쳤다. 특히 요코하마에서 처음 거츠를 보고 반한 팬들이 신주쿠 공연까지 일부러 관람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외에 각 멤버들의 활동도 돋보였다. 베이시스트 한두수는 2011년의 명반으로 꼽히는 들국화 전 멤버 조덕환의 솔로 1집 [Long Way Home]에 밴드 디렉터 및 연주로 참여했으며, 드러머 김선미는 코어 드럼 엔도저로 세계 3대 악기박람회 중 하나인 ‘상해 악기 쇼’에 참가하는 등 각자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Push
거츠는 1.5집 [Push] 발매를 기점으로 4인조 체제로 멤버를 강화했다. 기존 멤버인 전두희, 김선미에 20대 초반의 젊은 연주자들인 김나하비(건반)와 이현재(베이스)가 합류했다 (특히 김나하비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차식, 문샤이너스, 요조, 더 핀 등의 세션 키보디스트로 활동하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로써 거츠는 라이브에서 더욱 완성도 높은 사운드를 구사하게 됐다.
4곡이 담긴 [Push]에서 거츠의 음악은 하나로 수렴되는 모습을 보인다. 5년의 산물이었던 1집 [Gutz]에서 밴드의 발전사를 볼 수 있었다면, [Push]에서는 거츠의 현재가 보인다. 1집에서 거츠가 영향 받은 블루스, 그런지 록 등의 장르적인 특징이 잘 드러났다면, 새 앨범 [Push]에서는 장르에 갇히지 않고 팀 색깔이 보다 뚜렷해진 것이 인상적이다. 1집에서 시도한 다양한 음악들 중 자신들에게 어울리는 옷만 골라낸 느낌이랄까? 이러한 수렴으로 인해 거츠는 자신들의 오리지널리티에 한발 더 다가섰다. ‘분노와 음울함’의 조화. 그리고 사운드는 마치 지미 헨드릭스가 플라시보와 협연을 하는 듯하다.
직선적으로 몰아치는 타이틀곡 ‘Push’는 거츠의 분노를 잘 보여준다. 록킹하면서도 밀도감 있는 사운드가 돋보이는 곡으로 기득권에 대한 분노를 노래하고 있다. ‘Go Away’에는 록의 원초적인 에너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김선미의 막 달리는 드럼과 전두희의 거친 기타연주가 찰떡궁합을 보이고 있으며, 특히 라이브에서 빛을 발하는 곡이기도 하다. 상처를 노래한 ‘She’에서는 거츠가 가진 관능을 느껴볼 수 있다. 어두우면서도 질펀한 분위기 속에서 블루지한 기타연주가 복합적인 감성을 전한다. ‘Remember Me’는 거츠 특유의 음울함이 잘 나타나있다. 트립합 스타일의 다운템포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히 기타리스트 김형욱(포헤르츠)이 전동칫솔로 만들어낸 FX 기타 사운드가 환각을 더한다.
거츠는 KBS [탑밴드]를 비롯해 각종 오디션의 힘을 빌어야만 비로소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척박한 밴드 신에서 묵묵히 실력으로 승부하는 팀이다. 그 ‘척박함’ 때문일까? 거츠의 분노는 더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분노를 창작의 원동력으로 삼는다는 거츠의 음악은 1집에 비해 더욱 단단해졌다. 진정한 바위(Rock)가 되 가고 있는 거츠의 음악은 착하고 예쁜 음악에서 감흥을 못 얻는 이들에게 ‘찬가’가 되어줄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