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선물 받은 장난감 기타에서 이제 어엿한 한 개의 붓이 된 그의
어쿠스틱이 그리는 여명의 노래들"
"상념과 끈기의 마법 ‘추상 음악’의 신호탄, 어쿠스틱 퍼퓸 'Tale'"
시간을 잡으러 가는 한 남자의 환상적이고 누추한 에피소드:
'시간을 잊게 하는 초공간적 추상화'
정작, 다시, 잡은, 어쿠스틱 기타는 작고 평범하다.
아마 꿈일 수도 있다는 객체적인 시선이 잠시 그의 가슴에 성호를 긋는다. 올바른 선택이 아닐 것이라는 의혹이 그 옆에서 합장을 하며 더는, 그가 나아가지 못하도록 보조를 한다.
매일 새벽의 일이다.
하지만 더 이상 두려움에 떨며 사는 것에 지쳤다. 그에게 있어 두려움은 단지, 과거에 미혹된 숨소리가 호소하는 어지러운 두통이다. 그것을 견디며 사는 것은 이젠 이력이 들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그 자체가 재차 두렵고 어리석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두려움은, 과거는- 달이 태양으로 되는, 진실이 메아리로 번지는 수많은 여명의 시간들, 그가 혼신으로 찾아 헤맨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그려진 추상에 反하는, 그의 환상이기 때문이다. 그라면 충분히 환상에 질렸다.
환상을 지워가는 어쿠스틱의 향기 속에 추상을 채워가는 그의 목소리
그가 음악적 영감으로 밝혀온 뮤즈로서의 '그녀'가 실제 여성으로 그의 추억 속에 있는 이성(들)인지, 아니면 1집에서부터 자주 언급되는 '이상과 꿈'들의 집합인지, 혹은 '음악: 어쿠스틱 퍼퓸 자체'인지 속 시원하게 그는 드러내질 않는다.
다만 그는 추상화가와 같은 면모를, 1집에서보다 보다 확장, 응집하여 이번 EP에서 깍아지른 듯한 덧칠에 덧칠을 더한 이미지들의 연속으로 그려내고 보이고 있다.
지난 앨범에서보다 말수-언어의 구상성을 추상성으로, 마치 하나의 시와 같은 이야기들로서-를 줄인 것은 재고의 여지 없는 성과로, 그가 브뤼쉘과 니스를 거친 공연여행에서 영감을 받은, <최소 표현에 의한 최대 여백의 음악>이라는 앨범적 목표는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그의 이번 4편의 시(혹은 음악, 그림, 노래 무어라고 불러도 좋다)들은 그가 오랜 시간 정성스레 다듬어 표현한 언어들이기에 더욱 무시한 채 들어도 무방하다. 당신 또한 느낀대로 그의 이번 앨범 사이사이 그려 논 '숨김 여백'들은 타세계에서 당신의 세계로 진입하는 무색무취의 추상적 화폭이 되어준다. 그의 음악에서 미국의 추상화가 '마크 로스코'의 지극하디 지극한 단순한 색의 공간들로 표현된, 배경(여백)인 동시에 가득 채워진 콘텐트 자체인 '숭고한 색면'들이 떠오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 숭고하다. 그가 오랜 세월 지켜온 음악적 양심과 고결함이 이번 앨범에 드러나는 꿈이고, 끊임없이 마주하는 벽으로서의 절망이며, (스스로 부족하다는 자각에 의한)양심적 거짓일수도, 찰거머리 같은 대중성의 현실일 수도 있다. 그가 펼친 음의 캔버스-차라리 백치의 세계를 그려놓은 듯한 배경과 이미지들-은 당신이 당신의 '귀'로써 마음껏 당신의 이야기를 채워 그릴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단순히 치밀한 의도라기엔 수세월 그간 지켜오려던 진정성을 향한 지조에 이끌린다는 것이 가당한 이야기일 것이다.
이러한 여백으로서의 음악(혹은 백치로서의 노래), 예술적 표현은 여타의 수많은 아티스트들 또한 시도해왔으나 아직 크게 기억에 남게 성공한 예는 많지 않다. 굳이 '성공'이라고 말할만한 뮤지션이라면 안타깝게도 한국이 아닌 영국과 아이슬랜드의 그룹, 라디오헤드와 시규어로스 정도가 떠올려진다. 우리들은 대개 아티스트가 지정하고 주장하는 '세계관과 음, 선, 글 등의 의도적인 배열'에 따라가는 수동적 존재로서 작품감상에 만족해온 편이다(동시에 우리들의 오래되고 정다운 감상법으로서!). 그는 이에 대해 1집에 이어 다시 한번 反하는 시도를 이번 EP에서 더욱 깎고 깎아낸 정갈한 여백들로 최근 음악계의 전염병 같은 '인상 높은 후렴지상주의 뮤직'의 유혹을 '과잉된 선의 축'으로 규정, 그 특유의 나직한 목소리로 매일 치열하게 '음악적 양심과의 전쟁'을 치루어내고 있다. 그렇다, 그의 음악엔 당신에게 '강요하는 멜로디의 공간'이 없다. 다만 공간이라면, 당신이 침범하길 끊임없이 바라고 속삭이는 향기를 제조, 발효시키는 공간, 그 어쿠스틱 향수-와인과 위스키가 익는 창고처럼-가 당신을 이번 앨범 속으로 유혹하고 있다.
글 / 무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