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hime(아침) [Overcome]
‘achime'이라 쓰고 '아침'이라 읽는다. 권선욱(보컬/기타), 김수열(드럼), 이상규(기타), 김정민(베이스), 김경주(키보드)로 구성된 5인조 록 밴드다. 뒤로 엎어지나 앞으로 깨지나 삶은 비슷하게 지속된다는 비관적인 인생관을 가지고 있던 권선욱과 김수열은 그래도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어보려는 생각으로 밝은 이름을 가진 밴드를 만들어보겠다며 2008년 ‘아침’을 결성했다. 결성 이듬해인 2009년 첫 EP [거짓말꽃]을 발매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그들은 환상과 일상을 오가는 독특한 세계관을 프로그레시브 록에서 뉴웨이브에 이르는 다양한 스타일로 풀어내 한국 인디 음악계의 전도 유망한 신인으로 주목 받기 시작했다. 이후 지산 벨리 록 페스티벌 ‘락앤롤 슈퍼스타’, EBS 스페이스 공감 ‘헬로루키’, 쌈지 싸운드 페스티벌 ‘숨은고수’ 등 각종 페스티벌 무대와 오디션 프로그램을 석권하며 가능성을 검증 받았다.
2010년에는 첫 번째 정규 음반 [Hunch]를 발표한다. 머리로 생각하기 보다는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음악, 들을 때는 즐겁지만 다 듣고 난 후에는 눈물 한 방울 찔끔하게 만드는 음악을 지향하며 만든 이 음반을 통해 achime은 열렬한 팬덤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이처럼 인디 음악계에서 도드라지는 존재감을 드러내며 활동을 지속하던 achime은 2011년 EP [Hyperactivity]를 통해 보다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담아냈다. 그리고 이제 2012년 9월, 그 성장의 성과를 갈무리한 결과물로 두 번째 정규 앨범 《Overcome》을 발표한다.
붕가붕가레코드 대중음악 시리즈 No.15
achime(아침) 2집 [Overcome]
1. Villain 2. Overcome 3. 02시 무지개 4. DOH! 5. 피핑 톰 6. 와이파이 7. Hyperactivity
8. lowtension 9. 아는 여자 10. 스포트라이트 11. 2호선 12. 2012
새로 만든 노래들이라며 들려줄 때 권선욱은 새 앨범의 테마는 ‘세계 멸망’이 될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세상이 끝난다는 2012년이 되어 멤버 중 몇몇은 서른이 되었고, 2집을 내게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의미심장한 것은 이 앨범을 열고 닫는 두 노래다. 첫 곡인 ‘Villain’, 슈퍼 히어로를 괴롭히면서 세계 멸망을 획책하는 악당을 지칭하는 제목의 이 노래에서 achime은 세계를 시끄럽게 만들겠다며 경쾌한 어조로 읊조린다. 하지만 결국 대단원의 ‘2012’에 이르러서는 세계의 끝이라는 사실마저도 지금보다 그렇게 나쁘지 않을 거라며 무력하게 토로한다. “달라질 게 있을까 / 더 나빠질 게 있을까 / 그 어느 때보다 못 된 / 우리들을 이길 수 있을까” 절망을 위악으로써 덮어 보려 하지만 결국 다시 절망으로 돌아가고 만다. 이게 바로 우리가 익숙하게 알아왔던 그 achime의 정서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해서 나온 2집의 제목은 [Overcome], ‘극복하다’는 뜻이다. 종말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긍정적인 느낌의 제목이다. 더욱이 앨범의 알맹이는 꽤나 경쾌해서, 앨범 제목과 같은 이름을 가진 ‘Overcome’은 직설적으로 희망을 노래한다. “그대의 노랫소리에 / 세상이 움직이네 / 미래가 태어나려 하네”라는 이 노래는, 맞은 편에 있는 미래를 두려워하던 1집 때에 비하면 사뭇 다르다. 뭔가 변화가 있었음이 느껴진다.
그 변화는 그 사이 그들은 열렬한 관객들을 마주하면서 밴드들끼리 호흡을 다져 온 수많은 무대를 경험한 것으로부터 초래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듣는 이들과 보다 적극적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게 됐고 그러한 의지를 고스란히 담은 것이 바로 이 앨범이다. 그리하여 다양한 장르와 복잡한 구성을 시도했던 1집과 달리 2집은 일관적이고 보다 간결해졌다. 지난 EP에 이어 좀 더 강력한 편곡으로 보다 댄서블해진 ‘02시 무지개’나 achime이 갖고 있는 박력을 여지없이 담아낸 ‘2호선’은 물론, 스토킹이야말로 이상적인 사랑이라 노래하는 ‘피핑 톰’에서는 능청스러움마저 느껴진다.
물론 변화무쌍함은 achime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 다만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절제하고 있는 것이다 직선적으로 나아가고 있던 분위기를 ‘와이파이’를 통해 전환하고 ‘hyperactivity’에서 유례없는 화려함으로 가득하게 절정을 채운 후 ‘lowtension’으로 모든 것을 비우는 앨범의 중반부의 구성이 바로 이러한 기획의 산물이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 보다 긴밀해진 밴드의 호흡이다. 밴드의 두 축인 권선욱(보컬/기타)와 김수열(드럼)이 멜로디와 리듬 양쪽으로 받쳐주는 가운데 ‘lowtension’을 작곡한 김경주(건반), ‘스포트라이트’에서 1분에 이르는 기타 솔로를 선보이는 이상규(기타), 그리고 밴드의 그루브를 주도하는 김정민(베이스)은 각자 자기의 영역을 확실하게 주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앨범의 백미는 ‘잘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고 주위엔 아무도 내 편이 없으며 뭔가 잘 안 풀리다가 결국엔 실패하고 말 것’이라는 얘기를 경쾌한 리듬과 아름다운 멜로디에 얹어 표현해내는 achime 특유의 ‘반어법’이다. “이 앨범의 주제 의식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는 ‘DOH!’는 노래를 만든 권선욱이 매일 밤 자기 전에 시청한다는 애니메이션 ‘심슨스’의 유명한 감탄사를 제목으로 우리가 망해버렸다는 사실을 더할 나위 없이 귀엽게 노래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정서는 주변의 누군가를 모델로 해서 만든 ‘아는 여자’와 30세를 맞이한 심정을 담았다는 자전적인 노래인 ‘스포트라이트’로 이어져 이 앨범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을 만든다.
앨범의 마지막곡 '2012'가 끝나면 모든 소리가 사라진 가운데 단조로운 전자음이 4분여 동안 이어진다. 인류가 멸망한 다음에도 인류가 지구 바깥으로 송신한 전파는 50억년 이상 우주를 유영한다는 사실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사연을 듣고 들으니 어쩐지 스산해지는 가운데 한편으로 실없는 농담이 떠오르는데... 과연 achime은, 그리고 이 앨범은 얼마나 오래 남아서 지속될 수 있을... 역시 실없다.
붕가붕가레코드 대중음악 시리즈 열다섯 번째 작품이다. 권선욱을 중심으로 achime 멤버들이 직접 프로듀싱했다. 녹음은 김상혁(석기시대)과 조윤나, 강현희(토마토스튜디오), 믹싱은 김종삼(토마토스튜디오)와 김상혁(석기시대), 마스터링은 전훈(소닉코리아)이다. 커버 디자인은 붕가붕가레코드의 수석 디자이너 김 기조가 맡았다. 매니지먼트는 김설화, 홍보는 강명진, 회계는 김면경. 유통은 미러볼뮤직이 맡는다.
글 / 곰사장 (붕가붕가레코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