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푸르른 양희은의 휴먼 앨범
막 내놓은 양희은의 신보는 지난 2006년 35주년 기념앨범 이후 8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어떤 곡에 따라선 그때보다 목소리와 분위기가 더 명랑하고 찰 지다. '영원한 싱그러움'이란 수식은 양희은의 것이다. 수록 곡 '나영이네 냉장고', '막걸리' 그리고 1960년대 초창기 한류스타 김시스터즈의 것을 리메이크한 '김치 깍두기'가 여실히 말해준다.
어조가 찰랑찰랑한데도 듣는 사람은 편안하다. 그의 목소리는 저 옛날의 날 선 포크 톤에서 근래는 유유자적 여유로운 스탠더드와 소프트 재즈 톤으로 색조가 이동했다. 나이 들어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아량과 관조가 지배하는, 그리고 이끼와 손때 묻은 인간적인 목소리로 영근 것이다.
'당신 생각'과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말'을 2006년의 노래 '당신만 있어준다면'과 비교하면 즉각 알 수 있다. 고백적이고 더욱 깊어진 무드임에도 듣는 사람을 무장해제하듯 마치 살결을 어루만지듯 부드럽다. '이제야 날 펼친다'도 여기에 속하는 앨범의 수작이다.
그러면서도 곡 하나하나에 서로 다른 콘텍스트와 캐릭터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참 좋다'는 찬란한 여유를, '김치 깍두기'는 우리네 긍지를, '하루만은'은 삶의 애착을, '나는 사랑을 할거야'는 나이 듦을 박차는 포효를 담았다. '봄 그리고 가을', 동생 희경과 호흡을 맞춘 '넌 아직 예뻐'는 삶과 사랑에 대한 회한과 인정이다. 앨범의 방점을 찍는 '아버지'는 뼈저리게 미워하고 아팠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용서하게 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고백록이다.
어디까지나 양희은이란 큰 울타리로 묶어지지만 찬찬히 들으면 목소리, 악기배치, 아이디어, 편곡 등에서 곡 저마다 차별화를 꾀하는 '디테일'에 충실함을 알 수 있다.
양희은은 12곡을 모두 다른 작곡가의 곡을 통해 자신과 주변에 대한, 결코 하나일 수 없는 삶의 다채로운 단상을 그려내려 했던 것 같다. 40주년을 넘긴 활동이력, 환갑을 넘긴 나이에 어찌 그가 사는 세상이 한가지로 보이겠는가.
확실히 새 앨범은 양희은의 시선과 해석이 표현의 '주체'임을 다시금 말해준다. 상상으로 짜내고 상업적으로 선택한 소재들이 아니다. 이 때문에 앨범의 노래들이 실감 나고 공감을 부른다.
같은 세대에게는 툭 터놓고 주고받는 '대화'의 앨범이요, 후배들에게는 삶의 의미를 일러주는 '세대교감'의 앨범이다. 두 세대는 여기서 나이 듦과 젊음은 서로 손잡고 사귀는 사이라는 것을 안다.
-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