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어부 프로젝트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 낙담과 불안, 혹은 농담
어어부프로젝트의 새 앨범이다. 이 앨범은 2010년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이란 제목의 공연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공연은 지금까지 수차례 진행되면서 몇 차례의 변주와 편곡을 거쳤다. 이 앨범은 그 결과다. 공연장에서의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은 영상과 공연이 같은 장소에서 벌어질 때 무대와 객석에서 발생하는 동시적 감각, 일종의 긴장과 그 작동 방식을 탐구하는 실험극이었다. 요컨대 ‘계산된 즉흥성’이 작동하는 공연. 익명의 누군가(탐정)가 쓴 메모를 습득한 화자가 무대에 서서 그의 이력과 삶의 순간을 추적해나가는 과정에 음악과 에피소드가 병렬적으로 개입하는 공연에서 사운드는 미장센처럼 적재적소에 ‘놓여’지고 조명, 연출, 대본, 배우와 관객, 나래이터, 심지어 연주자들의 퍼포먼스까지 무대 위의 ‘이야기’를 만드는데 일조한다. 이때 여기서 사용된 음악장르 혹은 사운드의 특징을 구분하거나 분석하는 건 새삼 무의미해진다. 왜냐면 음악 자체보다는 그 사운드가 바로 그 순간에 전달하는 감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음반은 그 공연에 쓰인 곡들을 모았는데, 단순한 사운드트랙과도 다르다. 공연과 음반의 연결고리는 앨범의 커버다. 그야말로 아무 정보도 적혀 있지 않은 앨범 커버는 우연히 습득한 메모 뭉치와도 같다. 그런 맥락에서 이 수록곡은 공연에서 화자가 읽은 메모들이다. 어어부프로젝트의 의도대로라면 우리는 이 음반을 들으면서 어떤 이야기를 따라갈 것이다. 물론 이것은 약속된 게임, 롤플레잉이다. 우리는 사실 이것이 어어부프로젝트의 새 앨범임을 알고,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이라는 공연의 다른 버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앨범은 두 개의 길을 제시한다.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이라는 표지판을 따라가거나, 그저 소리를 따라 가거나. 물론 어느 쪽이든 거기서 우리가 뭘 만날지는 알 수 없다.
이 앨범, 혹은 메모에는 그 세계에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내가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이 음반을 들으며 그것이, 안타깝고 웃기고 슬프다고 느낀다. 그래서 이 묘사를 따라가며 동의하고 탄식하고 피식 웃는다. 하지만 이때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역설적인 질문이다. 이 사내를 그렇게 보아도 좋을 것인가. 다시 말해 ‘뭐가 옳고 그른지가 사실은 간단치 않다’(“역지사지”). 어어부프로젝트가 만드는 세계는 아이러니가 지배하는 세계다. 데뷔작부터 지금까지 백현진과 장영규는 세계의 보이는 쪽의 다른 면을 탐구하고 묘사해왔다. 이들의 작품을 ‘예술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근거는 이 깨끗하고 맑고 자신감 넘치는 세계가 사실은 비루하고 더러우며 의기소침하다는 사실을 폭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폭로야말로 예술의 소명이다. 한병철의 지적대로, 21세기가 거의 모든 것이 투명해지는 세계라고 할 때 예술은 이 투명성을 거슬러 맨 아래에 깔린 흐릿한 진실에 얼마나 가깝게 접근하느냐로 자신을 증명할 수밖에 없다. 그 점에서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은 한 세계의 진실성에 대한 낙담과 불안, 혹은 농담이고 마침내 이 앨범이 겨누는 것은 하나의 질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무얼 할 수 있을까. 요컨대 우리는 끝장났다, 그런데 그게 뭐 어때서?
글. 차우진 (음악평론가, 웹진 weiv)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