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을 위한 거대하면서도 소박한 멜로디
-송은지, 루싸이트 토끼, 호란, 이아립, 이효리, 소이, 연진 등 장르와 영역을 뛰어넘는 여성 뮤지션들의 하나의 목소리
-이제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화제의 음반 “이야기해주세요” 두 번째 앨범 발매
지난해 발매된 컴필레이션 앨범 [이야기해주세요]는 우리나라 음악 역사에 있어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음반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에 대한 내용을 담은 이 앨범은 이른바 ‘홍대씬’에서 활동하는 뮤지션, 그 중에서도 오로지 여성 뮤지션들만이 참여해 여성이 내는 목소리라는 점에서 사회적으로도, 그리고 개성 강한 뮤지션들이 한데 뭉쳤다는 점에서 음악적으로도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어느 누구도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었던 다소 무거운 주제, 그리고 불편한 진실을 노래하는 이 음반을 두고 사람들은 신기해 했고, 고마워 했으며, 궁금해 했다. ‘착한 일’ 한다고 칭찬도 더러 받았지만 그녀들은 결코 우쭐하거나 그런 사실들을 앞세우지 않았다. 그저 흘러가듯 노래를 부르고, 들려줄 뿐. 그리고 [이야기해주세요]는 2013년 조금 더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가 이 비극적 역사에 대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침묵을 지켜왔는지 다시 한 번 조용한 일침을 가한다.
앨범은 전작보다 조금 더 어쿠스틱한 경향을 보여준다. 기타와 건반, 그리고 여성 보컬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편안함을 전면에 배치한 데에는 음악이라는 도구를 통해 앨범에 담긴 메시지가 대중들에게 조금 더 쉽게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 타이틀곡으로는 클래지콰이의 호란&싱어송라이터 시와의 ‘첫 마디’와 투스토리의 ‘도사리 카페’ 두 곡이 선정되었는데, 두 곡 모두 처음 들으면 이 노래들이 과연 ‘위안부’라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지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대중적이다. 전작은 부드럽고 애잔하며, 후자는 밝고 경쾌한 에너지가 넘쳐난다. 멜로디가 곡의 첫인상을 결정한다고 했을 때, 타이틀곡의 선정만으로도 앨범은 대중들과의 소통에 성공한 셈이라 할 수 있다.
멜로디가 편해진 만큼 노랫말 내용도 쉬워졌고, 의미는 한층 깊어졌다. 어린 시절 ‘위안부’들이 여자라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고통이 수많은 세월이 지났음에도 아동성폭력이라는, 별다를 바 없는 형태로 계속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루싸이트 토끼의 ‘돌을 없애는 방법’을 비롯해 강렬한 사운드가 마치 절규하는 듯한 적적해서그런지의 ‘꿈 같은 꿈’, 다정한 목소리로 더욱 애잔함을 자아내는 이아립의 ‘책장을 넘길 때마다’ 등 총 15개의 트랙들은 저마다 다른 개성으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여념이 없다. 특히 일부 곡들에서는 ‘영문도 모르고 만주로 갈 때도 온전히 난 살아 있었네 / 살아있고 앞으로도 살아있게 되겠지, 기억되는 한, 잊지 않는 한’, ‘다시 태어난다면 여자로 태어나고 싶어, 시집도 가고 애기도 낳고 다른 여자들처럼 그렇게 / 다시는 전쟁하지 마라’와 같이 적나라한 돌직구 위로를 건네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너무나 솔직해서 이들이 겪어야 했던 지난 세월에 대한 송구함과 동시에 분노하기만 할 뿐 행동하려 나서지 않은 데 대한 깊은 반성까지 불러일으킨다.
이번 앨범이 더욱 특이한 의미를 지니는 건 너무나 익숙한, 그래서 의외인 이름들이 눈에 띈다는 점이다. 타이틀곡을 부른 클래지콰이 호란을 비롯해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라고 할 수 있는 이효리, 현재 라즈베리 필드로 활동하고 있는 걸그룹 티티마 출신의 소이가 그렇다. 송은지와 오랜 친구 사이인 호란은 송은지의 부탁에 흔쾌히 앨범 작업에 착수했고, 이효리와 소이는 첫 번째 앨범 발매와 후원 공연 소식을 듣고 자발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혀 왔다. 이들의 참여로 인해 [이야기해주세요]는 두 번째 앨범을 시작할 수 있었다. 노래에는 화려함을 덜어내고 진심을 가득 담았다. 오로지 여성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감정들과 알 수 있는 문제에 대한 공감이 뚝뚝 묻어난다. 메이저와 인디, 뮤지션과 연예인의 경계 따위를 가볍게 허물어 버리는 이들의 참여가 부디 조금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지난 해 발매 당시 60명이었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일년이 지난 지금 56명이 되었다. 시간은 점차 흐르고,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이 모두 우리의 곁을 떠날 날도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잊어서도 안 되고, 잊혀져서도 안 될 일. 노래의 힘을 믿는다. 그리하여 결국 제자리를 찾게 될 것임을, 그 시작에 이 음반이 있을 것임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