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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느낌은 어떻게 오는가
꽃나무에 처음 꽃이 필 때
느낌은 그렇게 오는가
꽃나무에 처음 꽃이 질 때
느낌은 그렇게 오는가
종이 위에 물방울이
한참을 마르지 않다가
물방울 사라진 자리에
얼룩이 지고 비틀려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있다
(이성복 / 그 여름의 끝 1990)
대고모가 집에 오면 집안 분위기가 든든해진다. 보름날 밤이면 마당이며 옥상이며 한길가가 다 흥성흥성하다. 때아닌 맞선이라도 보자 하여 못이기는 척 나설 때 길가의 가로수들은 갑자기 꽃봉오리를 매달고 있는 듯하다. 그렇게, 무엇이라고 딱히 말할 수 없는 것이 있어서 우리와 우리를 둘러싼 사물들을 부풀게 한다. 그 분위기, 그 귀하디 귀한 느낌에 이름을 붙이고 나면 그것은 다 달아나 버리고 만다. 그러니 우리들 인생에 대한 '설명'이란 얼마나 수가 낮은 것인가. 나아가 제 설명이 정답이라고 우기는 자 앞에서는 우리는 얼마나 허망한가.
꽃나무에 꽃이 필 때, 그것도 '처음' 꽃이 필 때 무엇이 왔다고 말하는가. 오랜 기도의 응답이라고 해도 되리라. 그 꽃이 질 때, 신은 처음으로 뒷모습을 조금 보이시리라. 흰 종이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남은 얼룩, 어느 느낌이 다녀간 비틀린 얼룩, 우리 모두의 자서전이 그러하리라.
장석남 / 가슴으로 읽는 시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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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을 만드는 일이
또 하나의 얼룩을 만드는 일이라면
기꺼이 얼룩져야지
나의 마음에
당신의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하나의 얼룩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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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_ 이 밤, 우리들의 긴 여행이 시작되었네
비로소 끝에서 부를 수 있었던 노래, 그 어떤 노래도 마침표가 될 수 없었는데
이 노래가 시작된 순간, 비로소 끝이 났다.
모든 녹음이 마무리된 후에 만든 노래, 끝에서 만들어진 시작 노래.
2_ 두 눈에 비가 내린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듣지 마세요 이별한 친구에게 양보하세요.
이 노래를 듣고 헤어지고 싶어질지도 모르니까.
처음 Earth, wind & fire의 after the love has gone을 들었을 때
이별해도 이런 노래가 있다면야 뭐 어때 했었다.
그런 노래를 쓰고 싶었다. 헤어짐도 잊힐 노래, 그걸로 된 노래.
조정치가 반주를 만든 후 노래는 다시 만들어졌다 선 반주 후 노래로 태어난 곡,
드럼에 베이스 신스 일렉기타 반주가 슬프지만 담담한 노래를 풍성하게 감싸준다.
3_ 등산
산에 올라야만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에 대한 노래.
이른바 '등산 예찬'
4_ 뒷일을 부탁해
작년 초에 쓴 곡으로 이 노래를 만든 후 새 앨범이 구상이 끝났을 정도로
'다시 시작하자'는 이번 앨범의 밑그림이 되어 준 곡.
이호석이 편곡한 후렴부의 발을 구르는 것 같은 피아노가 인상적이다.
조금은 이기적일 수 있지만 인생의 아주 중요한 순간에는 이런 대사가 불가피하지 않을까.
"내가 나 자신이 될 배짱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대신 대가를 치러준다는 거야."
존 업다이크의 '달려라 토끼'의 한 문장으로 설명을 대신한다.
5_ 바람을 일으키다
살랑 살랑 왈츠풍의 바람이 분다.
6_ 우린 곧 알게 될 거야
짐자무쉬 영화 '다운 바이 로down by law'의 엔딩 장면을 떠올리면서 만든 노래.
유일한 락 넘버로 만들고 싶어 피터에게 편곡을 맡겼는데 멜로우한 팝이 되어서 돌아왔다.
어쨌든 반갑다. 이 길도 내 길이다.
7_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공기로 만든 노래 때 쓴 곡으로 공연때만 부르던 곡인데
은근 사랑받는 넘버여서 앨범에 싣게 되었다.
편곡은 믹싱과 마스터링의 임진선이 해주었다. 그 어디에도 이런 엔지니어는 없을 것.
8_ 서라벌 호프 (Feat. 강아솔)
서라벌 호프는 상징적인 제목이다.
동네마다 하나씩 있는 호프집, 하루의 일과를 마친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잔을 부딪치며 희망을 외치는 곳, 호프(HOF)에서 꿈꾸는 호프(HOPE)들.
헤어질 것을 아는 남녀가 단골 호프집에서 만나 마지막 건배를 나누며 시작된 노래,
(서로에게) 끝이지만 (우리에게) 끝이 아닌 노래.
9_ 사랑의 내비게이션
좀처럼 알 수 없는 너의 마음,
그곳을 찾아가는 데 필요한 사랑의 내비게이션,
10_ 리버 피닉스
내 음악의 시작에 영화 '허공에의 질주running on empty'의 리버 피닉스가 있다.
'난 뭘 하지?'가 그 영화를 보고 난 후 나의 질문이였고
'음악을 하자!'가 바로 그 대답이였다.
어떤 질문은 인생이 되기도 한다.
내가 음악을 하는 이유는 이 질문에 대답이 되기 위해서가 아닐까.
ps.
처음으로 스스로 써보는 곡 설명이다.
6월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이게 ver.7쯤 되려나.
어떻게 써도 설명이 되고 어떻게 써도 설명이 안되는
곡 설명 같은 바보짓이 있을까 싶지마는
그 바보짓이 하고 싶다.
2013년 여름,
이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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