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청춘의 모든 낮과 밤
바이바이배드맨(이하 BBB)의 음악 한 가운데엔 늘 청춘이 있었다. 너도 나도 부르짖는 통에 이젠 좀 식상해져 버린 단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청춘은 유독 빛나 보였다. 그건 아마도 이들의 삶이 그 하고 많은 청춘의 한가운데 실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추억보정필터를 거치거나 억지로 박제된 것이 아닌, 끝 없이 분열하는 세포의 정기를 한 가득 머금고 사방천지로 지치는 줄도 모르고 뻗어나가는 젊음의 기운, 바로 그 한가운데였다.
스물 목전에 밴드를 결성하고, 그 밴드가 갓 돌을 지날 무렵부터 쌈지 페스티벌 숨은 고수, CJ 아지트 튠업 신인 아티스트, EBS 올해의 헬로루키 연말 대상, 한국 대중음악상 올해의 신인상 등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상이라는 상은 모조리 휩쓴 것도 그 절절 끓는 기운의 덕이 컸다. 당시 세간은 오아시스나 라디오헤드 같은 대표적인 영국밴드들의 이름이나 매드체스터 사운드를 들먹였지만, BBB의 음악은 결국 BBB의 음악으로 남았다. 스타일이나 계보와는 상관 없이 튕기고 소리치고 뜀박질하는 젊은 기운이 가진 매력은 무엇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BBB의 젊음의 가진 매력이 서서히 밴드의 중심축으로 자리하게 된 건 2013년 발표했던 EP [BECAUSE I WANT TO] 부터였다. 멤버들의 어린 시절과 그 시절 살았던 동네, 기억에 남아있는 장소 등을 직접 찾아 다니며 촬영한 사진으로 꾸민 앨범 커버는 레이블로부터의 독립 후 자체적으로 활동하겠다는 밴드의 패기와 맞물리며 꽤나 인상적인 순간을 남겼다. 독립의 결과로 제작 역시 최소한의 장비만을 사용한 홈 레코딩 방식을 택할 수 밖에 없었지만, 덕분에 우리는 거추장스러운 감투와 평가 아래 숨겨져 있던 BBB의 속내를 더 가깝게 만날 수 있었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던가. BBB의 두 번째 정규앨범 [Authentic]은 그렇게 한 꺼풀 벗어 던진 자신들의 젊음을 분출하는 데 거침이 없다. 일반적이라면 ‘이전과 너무 다른 접근은 아닐까’ 조금쯤 눈치를 보았을 법도 하건만, 앨범의 첫 포문을 여는 ‘Young Wave’부터 느껴지는 ‘이것이 지금의 우리’라는 기세가 놀랍다. 블러와 프란츠 퍼디난드를 커버하던 밴드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찬란히 쏟아져 내리는 섬세한 멜로디와 그루브의 색채. 기타를 잡은 록 밴드의 음악이라기 보다는 신서사이즈를 들이고 비트에 눈을 뜬 드림 팝 밴드의 작업처럼 느껴지는 이 곡이 이번 앨범의 시발점이라는 사실만으로 이미 많은 것이 추측 가능하리라.
‘Young Wave’라는 타이틀마저 앨범을 대표하는 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 곡은, 그 돋보이는 존재감과 함께 이번 앨범의 프로듀서인 글렌체크의 김준원과 그와 함께하는 크루이자 랩(Lab)인 “베이스먼트 레지스탕스(THE BASEMENT RÉSISTANCE)”를 자연스레 소환한다. 음악가의 작업실이라는 단어가 연상시키는 어두침침한 지하 연습실이나 갑갑한 녹음실과는 다르다. 서울 한복판에 자리하며 도시의 낯과 밤 모두를 머금은 이 장소와 친구들의 존재는 이 앨범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것이라 해도 좋다. 음악은 물론 패션과 영상 등 다양한 소재에서 영감을 나누는 새 친구들, 생의 한가운데 가장 빛나는 젊음과 도시를 끌어안은 장소, 그리고 결코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시간. 앨범에 수록된 대부분의 곡들이 간단한 아이디어나 드럼 머신, 심플한 루프의 반복실험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음악에서 느껴지는 이런 공간적 환상을 꽤나 그럴싸하게 뒷받침 한다.
순간의 분위기와 공기를 스케치하는 데 전력을 다하는 11곡의 노래들은 그렇기 때문에 일견 흐릿한 인상으로 비춰질 오해의 소지를 안고 있다. 최선을 다해 느릿하게 리듬을 타는 것 밖에는 할 줄 모르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은 앨범을 전체의 덩어리로 바라 보는 순간 씻은 듯 사라진다. 하늘에서 봐야 비로소 형상을 알아 볼 수 있는 나즈카 평원의 유적이나 오랜 집중 끝에 의도한 문양을 알아 볼 수 있는 매직아이가 이런 느낌은 아닐까. 이것은 작은 청춘의 드라마다. 패기 넘치는 젊음의 외침으로 포문을 연 (“Young Wave”) 친구들은 소소한 사건에 휘말리며 새로운 삶의 문을 열게 되고 (“Birthday”) 꿈 꿔 오던 새로운 만남과 장소를 지나 (“Moon”, “Island Island”) 믿을 수 없는 청춘의 환영과 조우한 뒤(“Celebration”, “Stranger”) 결국 새벽의 밤거리로 뛰쳐 나간다. (“Invisible”)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나지막이 부르며 대망의 문을 닫는 (“Love Life”) 일견 진부한 이 드라마는 데뷔 시절부터 세상만사에 무관심한 창법으로 밴드의 독특한 색깔을 규정해왔던 보컬 정봉길의 목소리로 BBB 음악으로서의 설득력을 얻는다. 다시 돌아온 영어 가사와 어느 때보다 강한 에코 속으로 흐릿하게 녹아 들어가는 그의 목소리는 이 앨범이 M83이나 워시드 아웃이 아닌 BBB만의 오리지널임을 새삼 환기시킨다. 잠시 길을 잃을 만 하면 별 사탕처럼 후두둑 쏟아져 내리는 객원 여성보컬 임혜경(CHEEZE)의 목소리나 예전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는 작은 선물 같은 기분을 선사할 넘버 “Lovelouse”의 존재도 반갑다.
이 음악들이 울려 퍼질 장소들을 상상한다. 사시사철 눅진한 기운이 사라지지 않는 친구의 반 지하 자취방, 한낮의 후끈한 기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아스팔트 도로, 빈 맥주병이 굴러다니는 여름 밤 테라스, 충동적으로 잡아 탄 밤기차가 데려다 준 어렴풋이 해가 떠오르는 새벽 바다. ‘진짜’와 ‘진짜와 꼭 같게 모사한’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앨범 타이틀 ‘Authentic’은 이 풍경들이 당신의 삶에 실제로 존재한 것이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 말한다. 우리의 몸은 이 음악들과 함께 그 때의 소리를, 냄새를, 온도를 기억할 것이다. 이것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청춘의 모든 낮과 밤이다.
"AUTHENTIC"의 직접적인 출발은 2년전 이맘때인 2013년 5월경 "BYE BYE BADMAN"의 두 번째 EP "BECAUSE I WANT TO"가 발매된 시점 "GLEN CHECK"의 "김준원"이 건낸 한 마디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또래 친구였던 우리들은 서로 밴드를 시작한지 얼마 안됐을 무렵부터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고
"GLEN CHECK"의 작업실인 "THE BASEMENT RÉSISTANCE"에서 자주 모여 음악 얘기와 서로의 고민 등을 나누며 점점 가까워졌다. 시간이 흘러 두 번째 EP "BECAUSE I WANT TO"가 발매 된 시점에 우리는 작업실에서 새로운 DEMO들을 들려주었고 그 자리에서 "김준원"은 우리에게 다음 앨범의 프로듀싱을 맡고 싶단 제의를 하였다. 새로운 앨범의 계획이 고민과 지체 없이 바로 시작되었고 여러 명의 젊은 창작가들이 모인 작업실이자 하나의 음악 레이블인 "THE BASEMENT RÉSISTANCE"에서의 작은 움직임들은 2년의 시간 동안 끊임없는 시너지를 내며 마침내"AUTHENTIC"을 탄생시켰다.
"앨범"을 단순한 음악만이 아닌 패션, 영상 등 다양한 종류의 예술과 함께 연결시키고 그 연결을 통해 문화의 움직임을 추구하는 "THE BASEMENT RÉSISTANCE"의 시각은 우리 모두에게 끊임없는 아이디어를 제공해주며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었고 평소 작업실에서 함께 즐겨 듣고 공유한 음악, 영화 뿐만 아닌 사소한 모든 것들의 영감으로부터 "AUTHENTIC"에 수록된 11곡들마다의 아이디어는 더 구체적으로 발전 될 수 있었다.
도심 속 한가운데 자리잡은 작업실에서의 생활 또한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낮엔 사람들로 붐벼 시끌벅적했던 곳이 밤엔 서늘하고 고요한 곳이 되는 "도시"라는 큰 틀 안의 양면성을 직접적으로 경험 할 수 있었고, 우리가 느낀 이 양면적인 느낌들은 앨범에 수록된 곡들에게 다양성을 부여하는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SO FAR" 뮤직비디오의 배경이기도 한 홍콩에서의 여행을 통해서도 우리는 보다 더 구체적이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해가 지고 다시 뜰 때마다 비춰지는 도시의 각기 다른 모습 속에서 경험했던 다양한 감정들로 인하여 가사나 곡의 분위기를 결정지어주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했고, 앨범의 시각적인 이미지를 구상하는데 있어서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우리는 이 모든 경험들을 토대로 앨범의 콘셉트를을 관통하는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고자 노력했고 우리가 생각했던 시각적인 분위기가 잘 묻어나는 독일의 사진작가 "MATTHIAS HEIDERICH"의 작품을 통해 이러한 느낌들을 앨범 아트와 커버에도 표현해낼 수 있었다.
기존의 우리의 작업 방식이 록 밴드의 송라이팅과 레코딩에 기반 했었다면, "AUTHENTIC" 을 작업할 때엔 완전히 새로운 시각과 방식에 기반했다. 음악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색다른 방법으로 표현하고, 이것들을 구조물처럼 조합하여 결국에는 "듣기 끝내주게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이 이번 우리 앨범 작업 방식의 핵심이었다. 대표적으로 첫곡 "YOUNG WAVE"의 시작을 알리는 보컬 LOOP은 작업실 구석에 뒹굴던 낡은 테이프레코더에 장난으로 녹음한 목소리를 악기처럼 여기게 되면서 생긴 아이디어가 기반이 되었고 그 위에 다른 악기와 작업실에서 녹음한 음원들을 얹어가며 하나의 곡으로 완성시켰다.
90년대 유행하던 디지털 신디사이저, 드럼머신 등의 사용 또한 곡의 방향성과 다양성의 스펙트럼을 넓히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SO FAR"나 "STRANGER"에서 드러나듯 아날로그 악기와 디지털 악기의 균형을 통한 새로운 느낌의 사운드 추구도 우리가 놓칠 수 없는 부분이었다. "MOON"과 "LOVELOUSE", "LOVE LIFE"에선 키보디스트 "고형석"이 속해 있는 또 다른 팀인 "CHEEZE"의 보컬 "임혜경"이 함께하여 기존의 "BYE BYE BADMAN"의 색깔에 새로운 방향성을 입히는 시도를 하였다. 이렇게 기존의 곡 작업 방식과 새로운 차원의 작업방식이 적용된 시너지는 우리가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컸고, 이 또한 앨범전체의 구체적인 컨셉과 방향설정에 있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마침내 모든 곡들은 차츰차츰 각각마다의 색깔과 방향을 추구하며 프로듀서"김준원"의 믹스를 통해 완성되었는데, 또 하나의 새로운 시너지라고 얘기할 수 있는 그의 믹스는 그간의 "GLEN CHECK"작업을 통해 겪은 그의 음악적 연구와 고찰의 적용이었다. 같은 공간에서 지내며 항상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끊임없이 피드백과 조언을 주고받으며 작업은 진행되었고 이것을 통해 우리가 추구하고 설정한 한곡한곡 마다의 이미지들을 더 완벽하게 표현해낼 수 있었다.
"AUTHENTIC"은 우리가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과 같은 앨범이다.
그 안에 녹아있는 "젊음"과 "신선함"을 담아내려 노력하였고, 이러한 노력들은 "BYE BYE BADMAN"이 앞으로도 나아갈 행보에 있어서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