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남은 인류처럼 우린 사랑을 하네. '눈뜨고코베인' Single [종말의 연인]
사실 2015년 초에 눈코의 리더 깜악귀가 올해 계절마다 한 곡의 "러브송" 을 발표하겠다고 했을 때 과연 그렇게 될까 싶었다. 거듭 밝히는 바지만 '눈코' 는 3년마다 앨범 한 장씩을 내왔던, 좋게 말하면 과작이요 나쁘게 말하면 태작인 밴드. 하지만 약속은 지켜졌다. 5월의 "새벽의 분리수거", 8월의 "변신로봇대백과" 로 이어지던 싱글 시리즈는 이제 11월 가을의 막바지에 "종말의 연인" 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일단 '눈코' 하면 생각나는 것은 가족에 대한 냉담한 조소(2집 수록곡 "납골묘") 와 지구를 멸망시키려는 과학자의 과대망상 (3집 수록곡 "일렉트릭 빔"), 그리고 호랑이가 살던 마을에서 사람들이 호랑이를 잡아먹었다는 의미 불명의 이야기 (4집 수록곡 "타이거 타운") 같이 일상과 환상의 경계에 있는 얘기들이 아무렇지 않게 섞여있는 환상적인 세계관. 개중에도 사랑 혹은 연애를 소재로 한 노래들이 있었지만 워낙 센 이야기들의 와중에서 정작 제대로 주목 받지 못했다. 그런 까닭에 지난 4집에서도 수록을 위해 만들어졌던 몇몇 곡들, 특히 "러브송" 의 테마를 가진 곡들이 다른 노래들과 어울리지 않아 유보된 바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묻어놓기에는 아까운 노래들이라, 이른바 "4계절 프로젝트" 를 통해 싱글의 형태로 발표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눈코' 는 '눈코' 다. "새벽의 분리수거" 는 아파트 분리배출 현장에서 투닥 거리는 연인의 상황에서 불연소화합물 같이 사랑 노래에는 절대 등장하지 않을 것 같은 단어들이 서슴지 않고 나오는 노래였고, "변신로봇대백과"는 연인을 위해 강해지려고 변신 연습을 하는 화자가 등장했다. 이처럼 '눈코' 특유의 상상력은 이 사랑 노래들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나는데, 그런 발상은 "종말의 연인" 에서도 마찬가지다.
얼핏 제목에서 관계의 끝에 처한 연인을 연상하기 쉽지만, 여기서 종말은 말 그대로 종말이다. 세상의 종말. 알지 못할 이유로 세상이 끝나버린 후 남은 두 사람은 연인이 되어 사랑을 시작한다. 아시모프로부터 테드 창에 이르는 수많은 세계 종말에 대한 SF -그렇다. 결국 이번 노래도 SF인 것이다- 를 떠오르게 하는 설정이지만, 설정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그들 산문에 집중하는데 비해 이 노래에서 중요한 건 그 상황에 남은 두 사람의 반응이다. 오히려 종말은 시작을 야기하고 지속을 도모하게 한다. 의표를 찌르는, '눈코' 다운 역설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눈코' 가 의표를 찌르는 것은 이러한 내용을 정말 아무렇지도 않고 흔한 "러브송" 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도입부를 지날 때까지만 해도 그러려니 싶었던 것은 "터지는" 후렴구에 이르면 눈코의 기존 음악을 알았던 사람으로서는 당황스러움까지 느낄 듯. 물론 깜악귀의 시니컬한 톤이 전체 노래의 분위기가 마냥 그렇게 흘러가진 않게 하지만, 그마저도 전체의 분위기 안에서는 능청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더할 나위 없이 평범한 스타일이 의외로 와닿게 되는 것. 이 역시 눈코스러운 역설이다.
이 싱글의 발매와 함께 '눈코' 는 단독 콘서트를 갖는다. 봄, 여름에 이은 가을의 단독 콘서트 제목은 "종말의 가을". 11월 29일(일) 저녁 6시 KT&G 상상마당에서 진행될 이번 공연에는 최근 인디씬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신인인 ' 실리카겔 (SILICA GEL)' 이 게스트로 함께 한다.
붕가붕가레코드의 22번째 디지털 싱글이다. 작사, 작곡 깜악귀. 편곡 '눈뜨고코베인'. 믹스와 마스터링은 '나잠 수' (쑥고개III 스튜디오). 녹음은 '깜악귀와 박열'(던바 스튜디오). 커버 사진은 '이주호' 가 촬영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김기조' 가 디자인을 마무리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