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의 경계에 서서 부르는 노래. 이아립 5집 망명(亡明)
3년만이다. 봄이 아직 먼 겨울의 한가운데 이아립의 다섯 번째 음반 [망명(亡明)]이 발표되었다. 6곡이 수록된 [망명(亡明)]이 나오기까지 여러 변화가 있었다. 스웨터 이후 자체적으로 음반을 만들고 활동해 온 이아립은 레이블 일렉트릭 뮤즈와 함께 하게 되었고, 싱어송라이터이자 기타리스트로 활동 중인 홍갑의 프로듀싱으로 신보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일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곡을 쓰고 지우며 음반의 윤곽을 그려갔다.
“유일한 희망이었던 빛이 사라지고 절망적인 암흑의 시간을 견디다 보니 사위가 밝아진 것이 아님에도 어둠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것이 있다. 그 때 보게 된 것, 느끼게 된 것을 이 음반에 담게 되었다.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것들을.”
모던록 밴드 스웨터의 프론트로 활동하고 2005년 열두폭병풍을 만들어 솔로 활동을 이어온 이아립은 목소리의 결만으로도 누구인지 알 수 있는 특별함이 있는 싱어송라이터이다. 스웨터 1집이 2002년이니 15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활동해왔다. [망명(亡明)]을 준비하며 시간의 흔적에 대한 긍정을 이야기했다. 지난 시간만큼의 생각, 목소리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빛과 어둠의 경계에 서서 부르는 6곡이 완성되었다. 그래서 [망명(亡明)]은 어조를 높이지 않고 상처를 드러낸다. 악곡은 이야기를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홍갑(프로듀서, 기타), 이동준(베이스), 신동훈(드럼), 박진영(피아노), 정용재(키보드)의 연주는 인화된 흑백사진 같은 감정을 군살 없이 담아냈다.
타이틀곡 ‘계절이 두 번’은 [망명(亡明)]의 단초가 된 곡이다. 프로듀서 홍갑의 편곡으로 완성된 이 곡은 어떠한 상실감에서 출발한 곡이다. 단조의 멜로디가 밴드의 연주와 만나 쓸쓸한 감정을 신파처럼 풀어간다. 음반의 시작을 여는 ‘1984’는 조지 오웰의 동명소설에서 영감을 얻은 곡이다. 빅브라더와 비밀경찰 대신 빅베이터와 SNS의 무수한 말들 속에서 피로한 사회가 되어버린 지금, 우리 스스로 돌아간 악취나는 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번 음반에서 가장 밝은 곡인 “그 사람”을 지나 “조언”은 홍갑의 기타와 이아립의 목소리만으로 채워진다. Ex-보이(걸)프렌드의 옆에 서 있는 누군가에게 보내는 애정 어린 조언이다. 한 때 원더랜드를 꿈꿨던 우리들의 산산이 조각난 미래를 노래한 ‘원더랜드’, 그리고 음반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끝’은 살기 위해 떠나야 했던 순간에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길에 대해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생각해보면 노래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사랑이 끊긴 적도 수입이 끊긴 적도 관계가 끊긴 적도 있었지만, 그 사이에도 노래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노래는 이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망명(亡明)”은 제가 지금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담았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기다렸던 음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Discography
1집 [반도의 끝 (END OF THE BANDO)] (2005)
2집 [누군가 피워놓은 모닥불] (2007)
3집 [공기로 만든 노래] (2010)
하와이 1집 [티켓 두 장 주세요] (2011)
4집 [이 밤, 우리들의 긴 여행이 시작되었네] (2013)
5집 [망명(亡明) (201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