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새롭고, 강렬함을 지닌 극강 밴드 Sacrifice
2장의 정규 앨범을 통해 국내외에서 수많은 마니아를 형성했고, 음악 관계자들에게까지 각광을 받아왔던 밴드 새크리파이스(Sacrifice). 지금 마주한 앨범은 성숙과 성찰의 시간을 거쳐서 완벽한 모습으로 돌아온 새크리파이스의 싱글 앨범이다. 2011년 [Breed For War] 이후 5년만이다. 공백기 동안 그들이 지닌 고유의 멋과 맛은 늘 큰 그리움이었다. ‘강렬함’, ‘폭발적인 그루브’, ‘꽉 물린 리프’, ‘심도있는 메시지’. 새크리파이스의 음악하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느낌들이다.
새크리파이스는 한국 헤비메탈밴드로 우뚝 선 메써드(Method)의 초기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였던 권오상이 2005년 결성한 밴드다. 초기 활동 당시부터 기대 속에서 꾸준하게 그 가치를 인정받았던 새크리파이스가 3집 앨범을 위한 중간 단계의 의미를 지닌 싱글 앨범 [탈]을 발표했다. 역시나 기대 이상의 거친 호흡을 토해내게 하며, 숨통까지 조일 정도로 매섭다. 새크리파이스에 의해 가면이 벗겨지고 다듬어져 청자들의감성 곳곳을 채워줄 이번 앨범 [탈]의 기원을 거슬러 가보자.
시작된 순간부터 국내외에서 인정했던 Sacrifice
새크리파이스의 리더 권오상은 아시아에서 보기 드문 넓고 깊은 성량과 스타일, 그리고 거대한 창법을 지니고 있다. 권오상은 그러한 보컬리스트이자, 감각적인 연주자이며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새크리파이스는 1집 발매 이후 2009년 동두천록페스티벌에 참여했던 유럽을 주무대로 활동하는 데스메틀밴드 세이타(Seita)와 교류를 맺어 왔으며, 일본 램페이지 페스티벌과 대만 포머즈페스티벌에 참가, 서바이브(Survive)와 유나이티드(United) 등 다양한 헤비메탈 밴드와 협연 무대를 가져왔다. 또한 2010년에는 오즈 페스트에서 화려함을 더했던 헤이트브리드(Hatebreed)와 블랙메탈 밴드 그레이브웜(Graveworm), 2011년에는 세계적인 밴드인 네이팜 데쓰(Napalm Death)와 헤븐 쉘 번(Heaven Shall Burn)의 내한공연 당시 서포터 및 게스트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여러 과정과 분명한 역할 속에서 새크리파이스가 발표했던 두 장의 정규 앨범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찬사를 이끌어 내왔다. 이런 이유로 근 몇 년 동안 새크리파이스의 새로운 음악에 대한 마니아들의 갈증은 깊어만 갔다. 그리고 그 갈증의 완벽한 해소를 위해 새크리파이스는 숙고와 심혈이 깃든 시간 속에서 싱글 앨범 [탈]을 내놓았다. ‘탈’은 껍질을 벗다는 뜻의 ‘脫’과 상실의 의미를 지닌 ‘奪’, 그리고 ‘얼굴의 모양을 만들어서 쓰는’ 우리말 고유의 ‘탈’의 의미를 모두 포함한다. 여러 메시지가 교차하는 ‘탈’의 의미를 새크리파이스의 싱글앨범 [탈]은 교묘한 맥과 파격적인 음악으로 담아내는데 성공했다.
결성 이후 10년 동안 더욱 방대해진 음악적 호흡
충격적이었던 데모CD를 통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던 새크리파이스는 2007년 평단과 마니아들의 환영을 이끌었던 1집 [Burning Rage]를 발표했다. 발매와 동시에 새크리파이스의 음악은 많은 헤비 마니아들에게 확고한 인지도를 형성시켰다.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걷어 올린 데뷔작 이후 새크리파이스는 여러 음악적 시도를 감행하며 다음 단계를 준비했다. 또한 라이브 무대에서의 배가된 패턴을 완성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도 해나왔다. 이 사이 몇 차례 멤버 교체가 이루어졌고, 리더 권오상은 활동에 중심을 잡기 보다는 ‘다음 앨범에 대한 구상과 실행이 더 낫겠다’는 생각에 2집 정규 앨범에 임하게 된다.
다음 단계에서 새크리파이스는 자신들의 순연한 사운드를 담아내고자 브로큰 발렌타인(Broken Valentine)의 김안수를 세션으로 초빙했고, 마침내 2011년 충격적인 사운드의 집합체로 평가를 얻었던 [Breed For War]를 발표한다. 그리고 오랜 준비 끝에 새크리파이스는 신보에 대한 제작을 결심하게 되었고, 자신들의 음악적 비전까지 시사하고 있는 싱글 [탈]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이번 앨범은 일단 살 떨리는 리프와 한층 격해진 보컬 라인, 그리고 완벽한 리듬 파트의 연결된 팽창이 눈에 띈다. 신곡 2곡과 과거 1집에서의 1곡을 리메이크한 새크리파이스의 [탈]을 만나보자.
국내 코어 사운드의 결정체, 그리고 한민족의 한을 한데 뭉친 Sound [탈]
이번 앨범이 제작되면서 새크리파이스는 숙련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명석함이 더해진 과정 속에서 [탈]에는 새크리파이스와 인연을 맺었던 몇몇 뮤지션이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먼저 드럼 파트는 오래 전부터 새크리파이스 밴드운영에 조언과 방향을 채워줬던 명그룹 나티(Naty)의 드러머 김태수가 드럼 피처링과 디렉팅을 담당했다. 그리고 2집 앨범에서 리드 기타를 담당했던 김안수가 '탈'과 '무자비한'에서 솔로 파트에 특별히 참여해서 앨범의 색채를 보다 더 날카롭게 덧입혔다. 새크리파이스의 리더 권오상은 전곡에서 기타와 보컬을 담당하고 있으며, 베이스는 정승범, 드럼에는 조현진이 참여했다. 무엇보다 이번 앨범에서 권오상의 보컬은 막강하다. [탈]의 전곡에서 권오상은 이전 앨범은 물론 근래 발매된 여느 헤비메탈 앨범의 보컬리스트보다 월등한 그로울링과 날카로운 스크리밍으로 청자를 압도한다. 권오상은 “보컬 파트의 녹음을 위해서 컨디션을 타고 색채를 미리 만드는데 노력했다”고 전한다. 또한 이번 앨범에는 기획실장을 맡고 있는 김지원이 보컬 피처링을 담당해서 이채를 더한다.
비트와 리프를 통한 독특한 그루브는 새크리파이스 음악의 기본 틀이다. 이번 앨범은 이러한 기본적인 테두리에 더한 음의 분모와 분자, 그리고 리듬감이 더해졌다. 과거 새크리파이스는 ‘꾸미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리고 솔직한 음악적 표현’을 위해 스스로를 ‘정글 메탈’이라 지칭하기도 했다. 그 틈바구니 속에서 인도와 라틴의 멜로디와 작법까지 차용했던 새크리파이스의 독특했던 음악은 [탈]에 이르러 ‘한국적인’ 한과 ‘민족적인’ 정서까지 포용했다. 이처럼 이번 싱글 앨범의 주요 컨셉은 ‘가장 우리다운’, 그리고 그 안에서 ‘새로운 헤비메탈’을 완성하는데 중심을 잡고서 진행되었으며, 수록곡 '탈'과 '무자비한'에서 흥미로운 연주로 녹아내려 있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정세, 사람들이 느끼는 관계에 대한 분노와 아쉬움이 배인 가사 역시 이전작보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첫 곡 '탈'은 사운드적으로 새크리파이스 고유의 묵직하고 헤비한 겹겹의 전개가 인상적이다. 이 곡은 오랫동안 회자될 정도로 국내 헤비메탈을 대표하는 명곡이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곡 중반까지 고르게 흩뿌려져 있다가 후반부에 몰입해서 조여 오는 김태수의 빠른 투베이스 테크닉으로 통렬하게 매듭지여 있다. 뛰어난 작법이 빛나는 '무자비한'은 하나의 에피소드가 존재한다. 이 곡은 권오상이 3년 전 강원도 동해를 갔을 때 두타산 자락 밑의 바위 사이로 흐르던 ‘전천강’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서 그 사연을 소재로 만들었다. ‘전천강’은 왜구의 침입에 맞선 조상들의 순결한 피가 넘쳐흐르는 강을 의미한다. '무자비한'은 가야금을 뜯고 태평소를 수려하게 불어대는 과거 예인들의 여러 모습이 연상되며 그중 반복되는 화음멜로디는 마치 빗발치는 왜적의 화살이 그려진다. 그렇게 '무자비한'은 국악 고유의 음계를 기타 솔로와 리듬군으로 연출한 넘버이다. 각 연주 파트의 유니크한 흐름은 서럽도록 아름답다. 또한 중반부의 클린톤 보컬과 무자비했던 역사 속 외침에 대한 후세의 절규는 한 편의 대작 속에 위치한 클라이막스를 마주하는 듯 격정적이다. 1집 앨범의 타이틀곡 '불타올라'는 각 마디의 연결을 새롭게 조율해서 수록되었다. 밴드를 결성한지 만10주년을 맞이하는 새크리파이스가 기존 팬들과 밴드 스스로를 기념하는 의도로 완벽하게 다듬어서 수록한 곡이기도 하다.
이번 앨범은 음악 서비스 사이트와 CD까지 발매되는 것은 물론 아이튠즈 등 해외 음악 서비스 사이트에서도 스트리밍과 다운로드를 받을 수 있다. 새크리파이스는 [탈]의 출시를 기념하고 자신들의 행보를 다지기 위한 음악감상회를 준비 중에 있다. 오랜 과거와 자신들이 지나쳐 온 어제, 그리고 현재와 미래를 모두 함유하는 새크리파이스의 싱글 앨범 [탈]은 한국 헤비메탈의 모든 시점을 되짚고 웅비의 계기가 될 음반임에 분명하다.
글/고종석(월간 Paranoid. 한국대중음악박물관 사무국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