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은 올 해로 쉰 아홉 살 먹은 한국 남자다. 쉰 아홉 살 먹은 한국 남자에게 젊은 사람들은 선입견을 가진다. 말 안 통하는 아저씨, 고집스런 할아버지, 박근혜를 당선시킨 세대라는 원망도 떠오른다. 전후 혼란기에 태어나 젊은 시절 한국사회의 격변을 온 몸으로 겪었으니 견고한 몽니같은 게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글쎄, 조금 과장된 말인지도 모르지만 정형근은 젊은 세대들이 그 완고한 세대들에게 가진 해묵은 불신을 눈 녹듯 풀어준 뮤지션이다. 2011년 여섯 번째 앨범인 [효도탕]에서 그는 섹스를 “다음 세대를 캐스팅하고, 욕망과 희망을 전달하는 시스템”(‘Sexing’) 이라고 규정하거나, 카드 빚 천 만 원을 남기고 떠나려는 여자에게 “딱 한 대만 맞고 가”(‘딱 한 대만 맞고 가’)라고 말하고, “순결 정조 그런 것들 중요한 거 아냐”(‘딸에게’)라고 읊조린다. 무엇보다 “죽도록 사랑하자. 사랑하다 죽자”(‘나의 각오’)를 2분 동안 소리쳐 부르기도 했다. 단언하건대 이런 유연한 사고는 지금 쉰 아홉 살 먹은 한국남자들에겐 좀처럼 찾아 볼 수 없는 것들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문제적 앨범 [효도탕] 이후 정형근의 행보는 정말 연구대상이다. 서른 살 어린 음악인들도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는데, 벌써 일곱 번째 앨범을 만들고도 남을 곡들을 쟁여 놓고 있을 뿐만 아니라 차고 넘쳐 이렇게 환장하게 꽃이 피는 봄날에 어울리는 노래를 싱글로 내놓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효도탕] 이후 정형근 노래의 시선은 젊은 세대로 향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2013년 봄날의 디지털 싱글 ‘나 삼겹살이야’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 노래는 쉽게 보기 드문 쉰 아홉 살 짜리 한국 남자가 젊은 세대에게 전하는 쿨한 위로의 건배주라고 할 수 있다.
“헤어지고 한잔하고 날 사랑해봐 난 삼겹살이야”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해 가슴 아픈 사람이라면 이런 노랫말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지을 것만 같다. 그 누가 자신을 삼겹살로 규정할 수 있겠는가? 지글지글 끓는 삼겹살이 되어서라도 그들의 아픔을 위무하고 픈 진심이 느껴진다. 이런 게 바로 오랫동안 컬트로 회자되었던 싱어송라이터 정형근의 특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조금 더 유연하고 부드러운 사회가 오면 정형근의 진가가 드러날 거라고 30년 전부터 말했던 음악평론가가 있었다. 자신은 삼겹살이니 자신을 사랑해보라는 정형근의 사랑스러운 노래를 들어보니 그 때가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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