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새는 어느 날 갑자기, 내 몸 속에 생겨났다. 내 몸 속에서, 새는 마음으로 여행하고, 그 여행을 내 꿈을 통해 보여주었다.
- "내 몸 속에 새가 있다" 일부
itta는 드림 팝 뮤지션이자 멀티플레이어입니다.
스스로가 만든 시와 음악을 그 자신의 보이스와 오르간, 피아노, 신디사이저 등의 건반 악기, 장난감 악기들, 미니어처 악기들로 연주하고, 대개는 즉흥으로 연주합니다. 가끔 그림을 그리거나 물건을 만들기도 합니다.
있다의 음악은 그레고리안 성가, 국악, 사이키델릭, 아트 록, bjork, kate bush, 등등의 여성 뮤지션들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스스로가 쓴 가사로 음악을 처음 만들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생이었던 1995년부터였지만, 그때는 데모테잎을 만들어 친구들에게 선물한 정도였습니다. 1997년 말부터 가족의 생계를 위해 펍에서 노래하며 연주하는, 속칭 로비 음악가로서의 일을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조금씩 스스로의 음악을 공연하기 시작했고, 2000년부터는 팬 커뮤니티가 생겨났습니다. 생겨난 팬들을 위해 솔로 콘서트를 만들었고, 스스로의 음악을 위해 고향을 떠나 상경합니다.
2002년 하자센터에서 녹음하고 처음 발매한 EP 앨범 [나는....있다]는 100% 수작업으로 제작한 독특한 패키지를 텀블벅이 없던 시절에 스스로의 팬 커뮤니티를 통한 사전예약, 전시와 거리 공연, 이벤트성 일대일 판매 등을 통해 당시 완전한 인디 체제로 앨범을 발매했습니다. 뮤지션과의 교류보다는 마임이스트, 퍼포먼스 아티스트, 미술가, 연극, 인디 영화 관계자 등등의 음악 외의 작업자들과 함께 작업하는 일이 많았던 있다는, 그 이듬해부터 홍대에서 활동을 시작하며 드디어 인디 뮤지션들과 만나게 됩니다.
노이즈/아방가르드/즉흥/프리 뮤직/실험 음악 씬의 뮤지션들과 조우한 이후로 있다의 음악은 변환기를 맞이하고, 그 때부터 국내에서 무당같은 뮤지션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리미티드 에디션 앨범들을 간헐적으로 전시와 함께 발표해 오면서, 한국의 팬 커뮤니티는 소원해졌으나 해외활동은 활발해졌습니다.
특히 2005년 일본인 노이즈 크리에이터 마르키도와 만나 듀오 (((10))) 을 결성하고부터는 노마드 음악가가 되었습니다.
있다는 마르키도와 2010년 결혼하고, 계속해서 노마드 음악가로 2개월 이상 연속적으로 한국에 체류한 적 없는 생활을 해오다 2012년 5월에 제주에서 '라아이(RAAI)'를 출산했습니다.
*앨범"내몸속에새가있다"
라아이가 스스로의 몸속에 있을 당시의 기록을 짧은 글과 음악, 그리고 그림으로 고스란히 "내 몸 속에 새가 있다" 라는 제목의 그림책과 음원으로 만들었습니다.
라아이가 태어나게 된 것을 기념하며 있다의 음악은 다시, 크나큰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스스로의 음악을 위한 키워드 [관계]에서 도달하지 않는 관계를 배제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래서 있다의 음악은 이전의 것들 보다 좀더 간결하고 완곡한 표현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앨범은 그림책과 음원으로 발매하기 위해 제작했습니다. 그림들은 상자 뒷면을 재활용하여 자른 것을 수채화 물감으로 리터칭했습니다. 판화 형식의 입체 작품입니다.
프린팅 비용은 텀블벅과 오프라인을 통해 지원받았습니다. 200장 한정 그림책 앨범입니다.
여러분이 이 그림책을 사시게 되면 프린팅 비용을 제외하고, 있다가 이 음반을 제작하기 위해 보낸 시간과 노력에 대한 가치를 만들어주시는 게 됩니다
아래의 글은, 라아이를 출산하기 직전의 기록이에요. 이 기록은 책이나 음원에는 언어 그대로 존재하지 않으나 느낌은 앨범의 것과 닮아 있습니다.
뭔가에 취한 것처럼 아파도 마냥 기쁘게만 느껴지기 시작했다.
또 한번의 통증이 시작되고,
이제는 다 커버려서 더 클 수도 없는 키가 갑자기 부쩍 커져버린 기분,
언덕을 하나 넘어 새로운 곳으로 들어서는 기분.
아메바도 되었다가 이름모를 풀꽃도 되었다가 바람도 되었다가...
처음에는 내가 무엇인가가 되는 것만 상상하다가 몇번의 진통을 넘기고 나니
그 주체들을 만나러 내가 어디론가 다니고 있거나,
그들이 나를 만나러 오거나 하는 상황의 싸이키델릭적인 반복.
병원으로 가기 전, 샤워를 하면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본다.
지금처럼 예쁜 내 모습이 더는 없을 것 같다는 주책없는 생각도 잠시 해보고.
뭐가 이렇게 자꾸 기쁜지...
이 아이의 기운은, 정말이지 해와 같다.
에너지가 마구 넘치고 있다.
내 어두운 기운을 송두리채 빨아들여 버릴 것만 같다.
임신 출산 육아는 육체적으로 피로할 수 있지만, 아이는 정말이지 무한한 기쁨을 안겨주고 있어요.
새로운 크리에이션의 영역에 들어서서, 세상의 모든 부모에게 감탄하고 있는 요즈음입니다.
부디 이 기분을, 여러분과 공유할 기회를 얻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있다 [내 몸 속에 새가 있다]
음반을 재생하면, 신디사이저와 딜레이 걸린 먹먹한 피아노가 먼저 인사를 건넨다. 1분이 지날 때쯤부터는 비 내린 바로 다음의 길가를 걷는 듯 한 노이즈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에 맞춰, 피아노는 신디사이저로부터 주제를 넘겨받아 가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피아노가 보폭을 좁힌다. 다시 신디사이저가 돌아온다. 천천히 상승하는 신디사이저에,피아노는 무작정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종막. 이 노래의 제목은다. 보컬은 나오지 않는다.
는 이 음반에 대한 성실한 안내자다. 두 가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전작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단순해진 사운드와 보다 드라마틱해진 전개.
첫 번째 : 그간의 작업들. [11]과 [Re:POPS!]. 그리고 marqido와의 콜라보레이션을 기억하고 있는 이라면 그녀가 소위 ‘익스페리먼틀’한 쪽으로 분류되는 사운드를 만들어내는데 재능 있는 음악가라는 점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 작에서도 있다는 itta. 하지만 전작들에서 그녀가 ‘이리저리 뒤섞인 감정’을 표현하는데 주력했다면 이번 작에서는 선굵은 신디사이저와 명확한 코드진행을 전면에 배치, 그녀의 음악을 보다 ‘노래’처럼 들리게 하는데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두 번째 : 특히 [11]에서 주로 선보였던, 곡의 얼개는 유지하되 즉흥적인 변주를 통해 순간순간의 감정을 과감하게 드러냈던 전작들에 비해 새로운 음반은 잘 정련되어, 의도적인 불편함보다는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을 중점에 두고 있다. 안정된 흐름은 안정된 드라마를 보장한다. 그 결과, 있다의 음악은 더욱 ‘팝적’으로 들린다. (굳이 장르로 분류하자면, ‘익스페리먼틀 팝’이나 ‘싸이키델릭 팝’에 가깝게 들린다.)
이러한 변화는, 아마 관심사의 변화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그녀가 텀블벅 후원을 위해 개설한 페이지에 적어둔 “스스로의 음악을 위한 키워드 [관계]에서 도달하지 않는 관계를 배제하기로 결심한 것”은 일종의 manifesto로 읽힌다. 선언에는 늘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있는 법. 어떤 이들은 ‘잃은 것’에 대해 주로 고민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저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초기의 작업부터, 있다는 굳이 자신을 ‘무엇’이라 한정짓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그때 관심사의 변화에 따라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만들어왔다. 그녀가 성실했던 덕분에, 만든 것들은 모두 차곡차곡 쌓여왔다. 그것을identity라거나 signature라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음악가들에겐 identity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런 음악가들 중에선 살아가는 것, 그러니까 삶 자체가 음악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게 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있다의 음악은 그렇다. 처음부터 그래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녀의 기대수명은 아직 몇 십 년이 더 남아있기 때문이다.) 음악을 거부할 순 있어도 한 인간의 삶 자체를 거부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있다의 음악은 (어떤 관점에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음악이다. 내겐 그것이 가장 중요하게 느껴진다.
- 단편선 (음악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