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바다에서 줍고 건진 노래들 [바라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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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갈 때 들으면 좋은 노래
제주 바다에서 들으면 더 좋은 노래
비치코밍 하면서 들으면 바라던 바다 되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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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두, 조동희, 재주소년, 김목인, 사우스카니발, 박혜리, 장필순, 시와, 권나무, 세이수미가
음악으로 기록한 비치코밍의 결과물
여기, 노래가 된 바다가 있습니다.
재주도좋아는 2013년부터 제주도를 기반으로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과 건강한 바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바다에서 이것저것을 줍는다는 뜻의 비치코밍 개념을 이용하여 단순하게는 바다 쓰레기 속에서 재료를 구하는 것부터 시작해, 바다 자체가 가진 색, 질감, 소리, 냄새, 크기 속에서, 혹은 바다가 주는 즐거움, 두려움, 겸손함, 생명력 등에서 창작의 소재를 찾아냅니다.
쓰레기는 악기가 되고, 소리가 되고, 노래가 되며, 시가 되고 춤이 되고, 연극이 되고, 빛이 되고, 그림이 되고, 보석이 됩니다. 이 모든 일들은 우리 모두가 지치지 않고 바라던 바다를 만나러 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바라던 바다 LP에 수록된 노래들은 그동안 뮤지션들이 바다에서 함께 비치코밍 하며 주워담은 노래들입니다. 지난 5년간 일주일 제주바다 레지던시를 통해 바다와 비치코밍을 주제로 만들어진 김일두, 시와, 조동희, 재주소년의 노래 4곡과 프로젝트에 공감해주신 김목인, 사우스카니발, 박혜리, 장필순, 권나무, 세이수미의 곡을 보태어 이 음반이 완성되었습니다.
조각난 마음을 버리고, 허전한 빈자리를 바다에 부유하는 것들로 채우는 행위가 비치코밍이었습니다. 바다를 빗질하며 내 마음을 정돈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노래들이 거친 바다를 거닐 당신에게도 위로와 환기가 되길 바랍니다.
이 프로젝트는 우연히 LP 제작 영상을 보고 바다를 노래한 곡들을 바다의 플라스틱쓰레기를 사용하여 LP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는 버려진 쓰레기는 쓰레기가 아닌 것으로, 소비되고 마는 음악은 소장하는 음악으로 만들고자 하는 바람이 들어있습니다. 제작 테스트 중 노력과 실패를 반복했고 결국 바다쓰레기는 함유되지 못했습니다. 대신 버려지는 재생 플라스틱을 섞어서 LP를 제작하였고, 음반 종이의 선택부터 제작까지 환경에 해를 끼치는 부분을 줄이고자 노력하며 제작하였습니다. 제작 과정에서 좋은 마음을 가지고 함께 협업하고 노력해준 분들 덕분에 이 음반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음반에 담긴 노래들이 제주 바다를 더 사랑할 수 있는 방법, 제주 바다를 건강하게 만드는 방법들을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바라던 바다], 바다에서 줍고 건진 노래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음악은 어떻게 올까. 이 문장을 써놓고 찬찬히 들여다본다. 그러니까 어떤 음과 리듬과 노랫말과 소리들이 찰랑거리며 밀려드는 순간을. 귀로 흘
러들어 마음을 적시는 순간을, 그 음악을 만든 이들에게 가장 먼저 도착했을 찰나를 헤아려본다. 알지 못했으리라. 그 음악이 언제 자신에게 도착할지 미처 몰랐으리라. 항상 안테나를 올리고 귀를 열어 신호를 보내더라도, 등대처럼 멀리멀리 빛을 쏘아 올리더라도 알지 못했으리라.
음악은 바람처럼 온다. 햇살처럼 온다. 비처럼 파도처럼 온다. 이미 있었다는 듯 오고, 돌연 쏟아지거나 은근하게 온다. 기다려야 오고, 피할 수 없도록 온다. 우리도 그렇게 왔다. 우리는 미리 알지 못한 채 세상으로 밀려왔다. 누군가 우리를 보냈고, 우리는 밀려온 세상에서 우연처럼 살아간다. 우리가 어리둥절하게 도착한 지금 이 곳에서 하루하루를 주워 담듯, 음악가들도 삶의 해변으로 밀려온 음악을 주워 담는다. 날마다 소리의 바다에 나가 높은음자리표 같은 포자를 뿌리는 음악가들조차 어떻게 자라고 언제 다 자라는지 알지 못하는 음악이 예고 없이 도착할 때마다 음악은 번번이 신비로워진다. 그래서 오늘도 음악가들은 해변을 서성이고, 바다를 향해 하염없는 눈길을 던진다.
[바라던 바다] 음반에 담은 10곡의 노래도 그렇게 줍고 건진 음악들이다. 제주도 애월에 있는 문화예술단체 재주도좋아는 끊임없이 밀려와 쌓여가는 제주바다의 쓰레기를 외면하지 않았다. 제주에 살다 보니 일부러 보려 하지 않아도 볼 수밖에 없었다. 보게 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피할 수 없었다. 매년 전 세계 바다에 버려지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800만 톤이라고 하니, 이제 지구의 바다에 1억 5000만 톤의 플라스틱이 떠다니고, 51조 개의 미세플라스틱 조각이 해수면을 떠다닌다고 하니 제주 바다라고 맑고 푸르기만 할까. 날마다 바다를 바라보고 바다를 숨 쉬며 살아가는 이라면 눈에 밟힐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많은 이들이 바다 앞에서 한숨을 내쉬며 안타까움으로 삶을 돌아볼 때, 재주도좋아는 바다에 밀려온 많은 것들을 주워 담았다. 언제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필요하고 쓸모 있고 소중했으나 버려지고 잊혀진 물건들을 쓰다듬었다. 사람이 만들었지만, 사람이 버렸으니 사람이 다시 주워 담아야 했다.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 재주도좋아는 끊임없이 밀려오는 물건들을 오래 전부터 했던 일처럼 기꺼이 주어 담았다. 그리고 원래 그 물건이 꿈꾸었던 이야기를 듣고, 바다에 버려졌으나 끝내 사라지지 않은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재주도좋아의 손길로 되살아났다. 바로 비치코밍이다. 바다 위를 부유하다 해안선과 조류의 방향을 따라 해변에 표류하게 된 물건들을 줍는 일, 재주도좋아는 그 비치코밍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 2013년부터 유리, 나무, 플라스틱, 스티로폼, 폐그물을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바다쓰레기로 선정했다. 그리곤 년차별로 비치코밍 공연, 교육, 레지던시, 워크샵, 전시, 캠페인을 벌였다. 제주 바다를 찾은 이들과 함께 떠밀려온 물건들을 주우며 함께 밀려온 이야기까지 담았다. 소리로 밀려온 이야기, 문장으로 밀려온 이야기, 동작으로 밀려온 이야기를 담았다. 그 이야기는 자연스레 시가 되고, 노래가 되고, 음악이 되고, 연극이 되었다. 미술작품 조형물이나 바다쓰레기 쥬얼리 금속공예 작품이 되기도 했다. 전시회를 열고 캠페인을 하고 페스티벌을 여는 동안 작품으로 새 생명을 얻게 된 물건들은 흘러온 물건의 생명과 버려진 물건을 보내준 바다의 생명을 들여다보게 했다. 그 사이 어디쯤에 있을 사람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물건들은 바다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의 삶에 대해, 바다가 죽으면 함께 저물 수밖에 없는 사람의 삶에 대해 말했다. 소중하다고 생각했으나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은 생명에 대해, 살아있으나 죽어가는 생명에 대해, 겨우 다시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 인연에 대해 말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했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아름다움으로 물었고, 남아있는 아름다움에 대해 물었다.
쓰레기가 되거나 바다를 병들게 할 뻔했던 물건들이 되살아나며 되살아나는 것은 물건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이야기, 그리고 바다의 평화와 안녕, 사람의 미래가 희미하게 맑아졌다. 누군가 예술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해야 할 질문과 답을 감당한 덕분에 예술이 자연과 만나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갔다. 재주도좋아는 한반도의 남쪽 끝, 지구의 한 섬에서 조용히 묻고 대답하며 움직였고 지금도 움직이고 있다.
음반 [바라던 바다]는 재주도좋아가 음악으로 기록한 비치코밍의 결과물이다. 이 음반에는 권나무, 김목인, 김일두, 박혜리, 사우스카니발, 세이수미, 시와, 장필순, 조동희, 재주소년이 바다를 주제로 만든 10곡의 노래를 담았다. 장필순의 노래 ‘탈출’을 제외한 다른 노래들은 모두 이번 음반을 위해 새로 만들었다. 이 가운데 김일두, 시와, 조동희, 재주소년은 재주도좋아에서 진행하는 일주일 제주바다 레지던시에 직접 참가한 다음 노래를 만들었다. 레지던시에 참여하지 않은 권나무, 김목인, 박혜리, 사우스카니발, 장필순도 재주도좋아가 매년 해변에서 진행하는 캠페인 페스티벌 ‘바라던 바다’에 참여했다. 말로만 듣고 만든 노래가 아니다. 책으로만 읽고 만든 노래가 아니다. 직접 제주 바다에 떠밀려온 무언가를 줍고 담은 뒤 그 울림과 기억을 품어 만든 노래다. 자신의 삶을 통과해 나온 노래는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음악가들 안에 이미 존재하는 바다와 제주의 바다, 그리고 비치코밍이 몸을 섞어 만든 10곡의 노래들.
이번 음반에 참여한 이들의 노래는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바다가 그러했듯 고요하고 깊고 살랑이다 때로 휘몰아친다. 싱어송라이터 김일두는 어쿠스틱 기타 하나와 자신의 목소리에 바다의 일렁임을 더해 노래한다. 바다를 바라보며 떠올리는 그리운 사람들, 파도가 토해낸 추억들이 노래가 되었다. 바다는 버려진 기억과 버려진 생명들을 다시 살게 한다. 담담하면서도 우수 어린 노래는 많은 이들의 추억과 맞닿아 있다. 우리 안의 바다, 바다 안의 우리.
싱어송라이터 조동희는 몽환적으로 조율한 사운드의 물결 안에서 바다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다. 내가 좋아하는 책이고, 숨겨두고 싶은 그림이고, 방해받지 않는 시간이었던 바다. 심장을 다해 춤추는 방법을 배우게 해준 바다는 그러나 지금 아프다. 그래서 조동희는 아직 시간이 있다고 속삭인다. 단지 바다를 위로하기 위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바다에게 받은 만큼 지켜주겠다는 약속이고, 스스로의 다짐이다. 이 노래를 듣는 이들도 함께 속삭이게 되는 약속을 우리는 지킬 수 있을까.
제주도에서 대학생활을 보낸 재주소년은 제주 바다에서 함께 했던 순간을 끄집어낸다. 바다가 있어 완성할 수 있었던 추억이다. 몽롱한 일렉트릭 기타 연주는 추억으로 미끄러지게 하고, 호른 연주는 그해 봄 아지랑이처럼 아득하다. 서울에 사는 싱어송라이터 김목인은 아예 비치코밍을 노래 제목으로 삼았다. 거창하지 않아도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바다의 헝클어진 머리를 빗겨주는 일이라 근사하다고 경쾌하게 노래한다. 함께 해보자는 권유이다.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노래는 산들거리는 바닷바람처럼 선선해 지금 당장이라도 제주 바다로 날아가고 싶게 한다. 제주에서 살고 있는 스카 밴드 사우스카니발은 관악기가 주도하는 이 박자의 리듬감으로 바다가 만들어준 추억의 날들을 복기한다. 바다의 추억이 없는 삶이 없고, 바다만큼 그리운 사람이 없는 이도 없다. 바다에 감사해야 할 이유이고, 바다를 지켜야 할 이유이다.
LP 음반의 또 다른 면을 여는 곡 ‘넌 깊고 넓은 물’은 바다를 닮았다. 제주 바다에 온 물건들을 닮았다. 박혜리가 만들고, 아이리쉬 휘슬, 아코디언, 피아노를 연주한 곡은 부드럽고 순한 바다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바다에 버려진 죄 없는 물건들의 마음을 따라간다. 사람에게 버려졌지만 바다는 버리지 않고 품으며 말한다. 이제는 우리가 품을 차례라고, 우리가 되살릴 차례라고. 드라마틱하게 뻗어가며 낙관에 이르는 곡은 비치코밍이 만들어내는 변화, 앞으로 가능할지 모를 더 큰 희망을 노래하듯 감동적이다. 오래 전 노래를 다시 다듬은 장필순의 ‘탈출’은 삶의 탈출을 탁 트인 바다로 이어 평온한 안식의 소리 안에서 쉬게 한다. 날마다 제주의 하늘과 바다를 숨 쉬며 살아가는 목소리. 한편 시와는 베이스와 드럼의 스윙감으로 어느새 홀딱 반해버린 바다를 노래한다. 일렉트릭 피아노를 더하고, 시와 자신의 목소리를 겹쳐 더 살가워진 노래는 많은 이들에게 손
짓한다. 더 많은 바다의 이야기를 만들라고, 너의 바다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눈짓한다.
반면 진지하고 진실한 싱어송라이터 권나무는 ‘우리만 알던 바다’에서 과거와 현재의 바다를 비교하며 담담하게 기록한다. 어느새 사람들이 많아져 버린 바다, 멀어져 버린 마음을 대조한 다큐멘터리 같은 노래다. 가장 냉정한 목소리는 밴드 세이수미의 몫이다. ‘길 끝에서’를 실은 세이수미는 B면의 다른 곡들처럼 경쾌하게 바다의 매력을 노래하면서도 “우린 망칠 줄만 알지 / 버리고 부시고 뭉개고 더렵혀 모른 척 하네”라고 인간의 실체와 진실을 숨기지 않는다. 오늘도 바다에 끊임없이 버리는 존재는 오직 인간뿐이다.
추억으로 남은 바다, 오늘 만나는 바다, 바다에 깃든 사람의 모습이 10곡의 음악에 들어있다. 익숙하고 친근하며 부정할 수 없는 바다 이야기이다. 지금 망가지고 병들어가는 바다를 강하게 고발하거나 비치코밍을 권유하지는 않는 노래는 아파도 아프다 말하지 않는 바다, 없으면 어떤 생명도 존재할 수 없지만 생색내지 않는 바다를 닮았다. 바다쓰레기를 담아 LP를 만들려 했지만 불가능해 재생PVC를 넣어서라도 비치코밍의 정신을 이으려 한 재주도좋아의 노력도 다를 바 없다. 노래가 바다를 되살리지는 못하더라도 듣는 이의 마음을 바꾸고 삶을 변화시킬 수는 있지 않을까. 지금 이 노래를 듣고 있는 자신부터 버리는 대신 줍고 간직하고 되살릴 일이다. 노래의 마음으로, 바다의 마음으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