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ony re:work-1 안효진
익숙한 노래라고 쉬우리란 법은 없지만. 다정하고도 건조한 목소리에 기대어 어쩐지 내 얘기인가 싶은 노랫말을 따라 한음 한음 소리내어 마음담아 불러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나같은 사람도 온전히 느끼고 말하면서 그럴듯하게 살고 있는 것 같지 않을까. 살면서 한 번은 세게 부딪치고 감당해야할 온갖 감정들의 연소가 여기 있다. 그 앞에서 안간힘을 쓰다 소용돌이가 지나가고 남은 자리가 있다면 그 자리에 기어코 남게 될 음악. 장필순의 ‘수니 리워크’는 모두에게 가만히 머물다 가는 소리이고 마음이다. 우연인양 흥얼거리고 싶었다.
또 다시 물결치는 마음, 드물게 일렁이는 순간마다 반짝이는 소리들. 각 트랙마다 앰비언스와 보컬의 행간에 바람이 들고 난 흔적이 묻어있다. 어쩌면 세월일지도, 자신일지도 모를 어떤 소리들. 아름다운 아우성이다. 다정한 위로와 긍정을 넘어 마뜩치 않은 이야기를 할 때에도 거친 어조의 날선 비판보다는 가만히 바라보고 안아주는 고요한 위로가 서려있다. 움트는 아지랑이처럼 곳곳에 단단하게 자리잡은 사운드의 생명력이 차분한 에너지를 선사한다. 차례대로 듣고 있자면 후미진 골목을 돌고 돌아 안개가 자욱한 숲길을 지나면 만나게 되는 햇빛처럼 가만히 들여다보는 마음들이 서려있다.
이제껏 수년에 걸쳐서 발표된 자신의 리메이크작 ‘수니 리워크’를 집대성한 이번 앨범은 많은 이들에게 ‘명반’을 추앙되며 ‘좋은 음악’의 답을 켜켜이 쌓아온 장필순의 저력을 느낄 수 있다. 전곡을 편곡하고 믹스 마스터한 조동익의 촘촘한 사운드 디벨롭과 원초적이고 열정적인 에너지를 잘 세공된 사운드 안에 녹여낸 트랙리스트는 불확실성만이 가득한 현재에서 무엇인가 ‘정확하게 좋았던 것’에 대한 기억을 기꺼이 현실로 환원하는 힘이 있다.
새롭게 ‘리워크’된 각 노래들의 원곡이 발표되었던 그 세대 안에서만 통용되는 향수가 아닌, 그 때를 경험해보지 않았던 세대들에게도 확실한 감각의 희열을 안겨다 줄 이 앨범은 모두가 절대적으로 ‘좋다’고 입을 모으는 것들에 대한 ‘레트로토피아’의 바이블로서 또 다른 상호작용을 기대하게 한다. 지금도 장필순의 ‘어느새’,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의 언오피셜 오디오가 몇백만의 조회수를 올리고 매일 새로운 리스너가 등장하는 시대에 ‘수니 리워크’의 의미는 리메이크 그 이상이다. 2005년 처음 시작된 이 프로젝트의 피날레를 알리는 앨범의 타이틀 트랙은 장필순의 히트넘버 ‘어느새’. 시티팝과 뉴트로 열풍을 선도하는 트랙으로 손꼽히며 다양하게 재해석 된 바 있는 이 곡을 조동익이 새롭게 편곡하고 거친 사운드와 건조한 보컬, 꿈꾸는 듯 아련한 정취로 우리 곁에 다시 머물게 한다.
트랙마다 다정하고 묵직하면서도 무심한 절망과 긍정. 그래도 된다, 너여도 된다, 이대로도 괜찮다고 긍정해주는 마음이 전해져 절망과 희망이 자연스러운 연결고리를 갖고 끊임없이 순환하고 연쇄작용을 일으킨다. 아픈 것들에 대한 기억을 그대로 두고 그 아픔까지 긍정한 뒤에 전복되는 마음의 정화가 이 앨범에 있다. 장필순과 그녀를 둘러싼 소리들은 새로운 것들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고 다 품는다.
1988년 첫 앨범 이후 한국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의 표상으로 자리잡은 장필순은 긴 시간 많은 밀물과 썰물 속에서 한국 대중가요 100대 명반에 두 장의 음반으로 이름을 올린 데 이어 지난해 16회 한국 대중음악상에서 8집 음반 ‘수니 8- 소길화’로 올해의 음반, 최우수 팝음반을 수상하며 새로운 기록을 적어나갔다. 또한 그리즐리, 밀릭, 원(ONE)과 같은 세대와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을 통해 음악팬들에 부지런히 듣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장필순은 오늘도 자신의 무늬를 새긴다. 바람에, 파도에, 흔들리는 숲 사이에 시간과 시간이 모여서 한몸을 이루는 순간을 다정하게 숨겨둔다.
놀라우리만치 건조하면서도 순도높은 사운드의 질감은 다양한 버전으로 편곡된 트랙들의 가치를 더하며, 기존의 트랙을 둘러싼 다양한 소리들을 전복해 분절하고 분절한 사운드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다. ‘수니 리워크’의 전곡 편곡과 건반을 제외한 거의 모든 악기 연주, 믹스와 마스터링에는 20년 넘은 음악과 삶의 동반자 조동익이 함께 했다. 마치 트랙 완성 순서에 따라 번호를 매긴 것처럼 무심하게 느껴지는 트랙리스트도 새로울 것 없다고 생각했던 것에 기어코 새로움을 부여한 1번 트랙 ’어느새’를 지나 마지막 ‘그대가 울고 웃고 사랑하는 사이’까지 오게 되면 장필순의 너르고 너른 풀밭에 앞에 다다르게 된다. 그 텃밭에는 드문드문 꽃이 피어있다. .... ....